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직고용을 요구하며 100일 넘게 농성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 8월29일에는 ‘톨게이트 수납원 외주화’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대법원의 확정 판결까지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대법원에서 판례를 변경할 수 있는 전원합의체 재판이 열리지 않는 한, 1·2심에서 재판중인 수납원들도 승소가 점쳐지는 상황입니다. 매일노동뉴스 <톨게이트노조-도로공사, 1심 승소자까지 정규직 고용 합의>(10월10일)에 따르면, 실제로 지금까지 재판 결과를 받은 398명(대법원 291명, 1심 107명)중 불법파견 소송에서 패소한 톨게이트 수납원은 단 한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직고용 의무가 있는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 측은 여전히 자회사 전환 안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이에 항의하며 9월10일부터 김천에 있는 도공 본사를 점거하고 농성을 이어가는 중입니다. 

이렇듯, 여권 주요 인사가 사장으로 있는 공기업이 대놓고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무시하여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손해와 불편을 야기하고 소송비용을 낭비하고 있는데도, 보수언론과 경제지가 탈법 기업을 감싸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언련은 모니터보고서 <톨게이트 노동자 농성, 외면하거나 단순화하거나>(9월23일)에서 톨게이트 수납원 농성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노조혐오 보도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반복되는 조선일보의 노조혐오 보도

그러나 조선일보는 오늘, 노조혐오의 종합판과 같은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바로 조선일보 <민노총 점거 37일, 오늘도 아이는 돌담 넘어 유치원 갑니다>(10월15일, 이승규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도로공사 주변 ‘민원’ 수준의 내용들을 종합한 기사였습니다. 조선일보는 도공 농성으로 지역 주민 자녀들이 ‘생존수영 수업’을 못하고 있다며, 익명의 취재원을 ‘김천 시민들’로 묶어 “김천 시민들은 “민노총의 생존권이 아니라 시민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이어지는 내용도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조선일보는 “수영강사들의 급여가 반토막이 났다”며 “본사 사옥에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자 건물 수영장에 등록했던 지역주민 1290명 전원이 환불을 요구하며 회원을 탈퇴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겨레 <도로공사가 만든 섬에 갇힌 톨게이트 해고 노동자들>(10월8일)에 따르면 도공 본사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주체는 민주노총이 아니라 도로공사 측입니다. 심지어 도공 측은 기자들의 출입도 막고 있습니다. 그간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의 ‘조중동 취재거부’가 ‘언론자유 탄압’이라며 비판해 왔습니다.

▲ 지난 10월15일 도공 주변 민원 수준의 내용으로 톨게이트 노조 비판하는 조선일보
▲ 지난 10월15일 도공 주변 민원 수준의 내용으로 톨게이트 노조 비판하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또한, “본사 부지에 들어선 사내 유치원 학생들은 등·하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시위 중 정규직 직원과 자녀에게 야유를 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간 민주노총이 ‘정규직 위주의 기득권 노조’라며 비판해 왔습니다. 조선일보는 “지역 민심도 돌아서고 있다”며, 그 근거로 “도로공사가 위치한 김천 율곡동 혁신도시는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투표자 9461명 중 과반인 4754명(50.2%)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지역민들이 가입한 온라인 카페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고 있는 이강래 현 도로공사 사장을 ‘친문 낙하산’이라고 비판해 왔습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등을 돌렸다는 건지 알 수 없습니다.

노조는 조선일보의 심심풀이 땅콩인가

<톨게이트 노동자 농성, 외면하거나 단순화하거나>에서 집계했던 9월18일 이후 보도량을 집계해 본 결과, 톨게이트 노조 농성을 지속적으로 보도한 언론사는 5개 일간지와 2개 경제지 중 경향신문과 한겨레뿐입니다.

▲ 지난 9월18일부터 10월15일까지 톨게이트 노조 관련 보도량.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지난 9월18일부터 10월15일까지 톨게이트 노조 관련 보도량. 표=민주언론시민연합

 

2주간 경향신문이 22건, 한겨레가 20건의 보도를 낼 동안 다른 신문사들은 한자리수 보도에 그쳤습니다. 보도 내용으로 보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의 보도들은 단순한 이슈 추적에 머물지 않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담아내려 노력했습니다. 

경향신문은 <국제노총, ‘노동존중 정부’에 서한, “톨게이트 수납원 직접고용 나서라”>(9월20일)에서 151개국 노동자 1억 7500만명이 가입한 국제노총(ITUC)이 톨게이트 수납원 사건에 대해 “법원 판결의 불이행은 사법 절차에 대한 접근권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하는 서한을 보낸 것을 보도했고, <우리는 왜 자회사 정규직을 거부하는가>(10월4일)에서는 톨게이트 수납원 100여명이 경향신문에 보내온 글을 분석해 수납원들이 진정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현장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한겨레는 주로 의견기사를 중심으로 노동자들의 요구를 담았습니다. 조혜정 기자의 칼럼 <현장에서-이강래 도공 사장의 ‘폭주’…구경만 하는 김현미·노영민>(9월19일)에서는 “상황을 이렇게까지 꼬아놓은 건 이강래 도공 사장이다”라며, “김현미 장관과 노영민 비서실장이 지금 상황을 그냥 지켜만 보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는 것이다”고 비판했습니다. 10월1일 <이슈논쟁>란에는 노측 <이슈논쟁-직접고용 회피, 급조된 용역회사 거부한다>(10월1일, 주훈 민주일반연맹 기획실장)과 사측 <이슈논쟁-자회사는 정부정책과 노사합의의 결과물>(10월1일, 변상훈 도로공사 영업본부장)의 기고문이 나란히 실렸고, 10월10일에는 톨게이트 노동자 조미경 씨의 칼럼 <우리가 자회사를 거부하는 이유>(10월10일)가 게재됐습니다.

반면, 문제의 조선일보 기사는 조선일보가 9월30일 기자칼럼 <비정규직 ‘제로’라는 환상>(9월30일, 최원우 기자)를 낸 지 15일 만에 낸 톨게이트 농성 관련 보도입니다. 보도량 자체도 많지 않은데다, 조선일보가 낸 3건의 보도 모두에서 당사자 의견은 없고 조선일보의 ‘노노갈등’, ‘주민불편’등의 노조를 향한 프레임만 가득했습니다. 2주간 톨게이트 수납원들을 둘러싼 상황 변화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격주 꼴로 노동 사건 보도를 하면서 언론사가 할 말만 할 거라면 뭐하러 보도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9년 9월18일~10월15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서울경제, 한국경제
※ 문의 : 공시형 활동가 02) 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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