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UHD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지상파 UHD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과방위 국감 기획④] 아무도 안 보는 지상파 UHD… 지상파 원해 국회가 선물했으나 타당성 검토 소홀에 경영난 악재까지

당신이 지상파 UHD 방송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HD보다 화질이 4배 선명한 정식 UHD방송(4K)을 보려면 조건이 매우 까다롭다. 

첫째, UHD TV를 구입해야 한다. 둘째, 미국식 전송방식을 쓰는 TV여야 한다. 유럽식을 쓰는 TV라면 별도의 컨버터를 구매해야 하는데 현재 보급된 TV 대부분이 유럽식이다. 셋째, 수신 안테나를 따로 구입해 설치해야 한다. 보통 UHD TV를 구입하면 관련 방송을 볼 수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평행우주’처럼 별도로 송출되는 전용 채널로 봐야 한다.

시청자 없고 콘텐츠 부족한 UHD

한국에서 UHD를 시청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김종훈 민중당 의원이 방통위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방통위는 “UHD 방송 시청 가구 수에 대해서는 조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2018 방송매체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UHD TV 보유 가구는 9.5%에 그쳤다. 지상파 TV 직접수신 가구는 4.2%다. UHD TV를 구입해도 지상파 UHD 직접수신을 할 가능성은 낮다. 지상파 직접수신가구는 도서산간지역 저소득층이 다수인 점도 감안해야 한다. 사실상 1%의 국민도 지상파 UHD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청자도 없지만 콘텐츠도 부족하다. UHD 전용 채널을 틀어도 UHD 콘텐츠는 10%대 수준이다. 시청에 진입장벽이 높은데 콘텐츠마저 없으니 시청자가 없고, 시청자가 없으니 수익이 없어 투자할 여력이 생기지 않는다. ‘악순환’이다.

▲ 방송 송출방식 발전 현황.
▲ 방송 송출방식 발전 현황.

지상파 UHD는 매년 순차적으로 비중을 늘려 2027년까지 100% 편성을 해야 한다. 그러나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지상파 3사 모두 편성 조건 15%에 미달한 상황이다. 지난 8월 방통위는 2018년 KBS1과 지역 MBC 2개사에 콘텐츠 편성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앞서 2017년 MBC와 SBS의 UHD 시설투자 이행률이 허가 당시 계획 대비 각각 64%, 50%에 그쳤다. 

편성비율을 곧이 곧대로 믿어서도 안 된다. 2017년 기준 지상파 UHD 편성의 36.4%가 HD방송을 리마스터링한 방송이었다. 원론적으로 보면 리마스터는 UHD가 아니다. 방통위는 독립제작사가 제작한 방송일 경우, 주시청시간대에 편성하는 경우 50% 편성 가중치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를 지키지 못하거나 ‘턱걸이’ 수준이다. 차기 재허가 심사를 앞두고 일부 지상파 방송사는 조건을 못 지키겠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UHD 방송 개국 자체가 차질을 빚는 일도 반복되고 있다. EBS는 2017년 UHD 전파를 받았으나 개점휴업 중이다. 지상파3사의 UHD 개국도 송출일인 2017년 2월에서 3개월이나 늦어진 5월에 이뤄졌다.

▲  지상파 UHD 홍보영상 갈무리.
▲ 지상파 UHD 홍보영상 갈무리.

약속 못 지킨 지상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추진 과정을 돌아보면 지상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지상파 UHD 도입은 박근혜 정부 황금 주파수 쟁탈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력이 좋아 황금 주파수라 불리던 700MHz 대역은 정부가 통신사에 팔 계획이었다. 그런데 돌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서 ‘주파수소위원회’를 만들고 해당 대역을 ‘통신사’와 ‘지상파’에 나눠 쓰라고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주파수를 받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 계획을 공언했다. 그러나 막상 도입하자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효성 당시 방통위원장은 “지상파가 주파수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한 계획을 세운 것 같다”고 했다.

이와 관련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지상파가 이렇게까지 어려워질 줄 예측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흑자 규모가 수십억이 되는 수준이 이어질 거라고 봤는데 지금은 KBS, MBC는 적자 국면이고 SBS도 적자가 예상된다”고 했다. 유튜브 등 OTT, 종편, CJENM 등 위협 요소가 늘어났고 지상파 중간광고 도입은 연거푸 무산되면서 지상파의 추락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UHD 방송을 하려면 UHD 장비를 구입하고, 스튜디오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 제작과 편집에도 비용이 더 든다. 추가로 드는 돈은 많은데 정작 수익은 없다. 기대했던 반향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지금 같은 경영 상황에선 계륵만도 못하다”고 평가했다. 

정부와 국회도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지상파 UHD가 꼭 필요한 정책인지, 도입을 할 경우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주먹구구’식 결정이 이어졌다.

▲ 2017년 5월 SBS 8뉴스 보도. 가전사 협의가 이뤄지지 않자 SBS가 이를 비판하는 보도를 냈다.
▲ 2017년 5월 SBS 8뉴스 보도. 가전사 협의가 이뤄지지 않자 SBS가 이를 비판하는 보도를 냈다.

20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지상파 UHD에 질타가 쏟아지고 있지만 지상파 UHD 도입을 결정한 곳은 19대 국회 미방위다. 당시 미방위 관계자는 “무료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로 양질의 서비스를 한다는 취지에 공감했다”면서도 “방송사에 잘 보여야 하는 의원 입장에서 지상파를 의식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UHD는 꼭 필요했을까. 지상파 내부의 평가는 엇갈린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아날로그의 HD 전환과는 다르다. 시청자는 HD 정도면 만족한다”고 했다. 반면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넷플릭스도 영상을 4K 화질로 만들고 있다. 주춤하고 있지만 방향성은 맞다”고 했다. 지상파 경영난이 심화되는데 UHD에 매년 수백억을 추가 지출해야 하니 회의론이 강해지는 분위기다.

정부 ‘타당성’ 제대로 안 따져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하기 힘들다. 지상파가 요구하고 국회가 결정하긴 했지만 주무부처의 타당성 검토와 사후관리가 미흡했다. 2015년 정부가 만든 ‘지상파 UHD 방송 도입을 위한 정책방안’ 보고서는 올해 UHD TV 판매가 전체 TV의 절반 가량으로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보고서는 지상파 투자비는 모두 지상파 재원으로 한다고 명시했을 뿐 ‘어떻게’가 빠진 점도 문제다. 지상파가 2027년까지 6조7902억원을 투자한다는 건 누가 봐도 비현실적이었다. 방통위 의결 당시 미디어오늘은 “경영난에 처한 지상파가 투자 약속을 지킬 수 있나”라고 물었다. 당시 브리핑을 맡은 이기주 상임위원은 “국민과의 약속이니 지킬 것이라고 본다. 지상파의 의지가 중요하다”고만 답했다. 

▲ 정부가 공표한 지상파 UHD 투자계획.
▲ 정부가 공표한 지상파 UHD 투자계획.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추진하기로 한 협의마저 무산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수신안테나 내장화 검토”를 한다고 했으나 가전사가 제조단가가 올라간다며 반대해 ‘무산’됐다. 안테나 내장 실패로 UHD의 진입장벽은 크게 높아졌다. 미디어오늘도 처음부터 이 문제를 꼼꼼하게 따지지는 못했다.
 
이제 와서 방통위는 ‘사업 재검토’까지 조심스럽게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엎어버리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주요 지상파 방송사들은 UHD 설비 구축을 완료했고 장비를 교체하고 전용 스튜디오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활성화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상파는 중간광고 도입 등 비대칭 규제 개선, 제작지원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다른 지상파 관계자는 “비율만 조건으로 제시하니 뉴스, 스튜디오 토크쇼를 UHD로 만든다. 이런 콘텐츠는 UHD로 봐도 별 차이가 없다”며 “다큐멘터리, 드라마처럼 UHD로 봤을 때 효과가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조건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지상파 UHD 방송을 IPTV와 케이블로 재송신하면 보급률이 급증할 수 있다. 하지만 지상파 직접 수신율을 높여 자체 플랫폼을 다시 세우겠다던 계획과 배치된다. 지상파에겐 UHD를 계기로 무료보편적서비스로서 플랫폼을 강화하고 여기에 자체 IP서비스까지 연계하겠다는 ‘청사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답이 보이지 않는다. 플랫폼으로서 반전의 기회일 것인가. 마지막 몸부림일 것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후자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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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0-15 19:48:54
이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주파수를 받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 계획을 공언했다. 그러나 막상 도입하자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효성 당시 방통위원장은 “지상파가 주파수를 확보하기 위해 무리한 계획을 세운 것 같다”고 했다. <<<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