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 사실에 증거불충분 등 이유로 불기소 처분 내지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고 해서 그 자체를 무고했다는 근거로 삼아 신고내용을 허위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는 지난 11일 무고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현정씨의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앞서 1·2심은 무고죄를 인정해 부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거나 증거불충분 등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고 해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사람이 ‘무고’인 것은 아니라는 판결이라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특정인이 일부 신체 접촉을 허용했다고 그 외 동의하지 않은 신체 접촉까지 용인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부씨는 지난 2014년 KBS 파견직으로 재직하다가 KBS 정직원 촬영 기자 최모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부씨 사건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최씨를 기소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재정 신청도 법원에서 기각됐다. 

(관련 기사: “파견직 부씨가 성추행 사실을 알렸을 때, KBS는 뭘 했나”)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사옥.

이후 2016년 1월 최씨는 부씨를 무고죄로 고소했다. 같은 해 9월 검찰은 부씨를 기소하지 않았다. 이후 법원이 최씨의 재정 신청을 받아들여 2017년 8월 부씨의 무고죄 재판이 열렸다.

이후 2심까지 유죄가 선고됐다. 원심은 △최씨가 수사기관에서 강제 추행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부씨가 제기한 재정신청이 기각됐고 △부씨가 최씨와 4시간 동안 술을 마시고 이후 산책도 했고 △최씨와 자연스럽게 신체 접촉을 하는 듯한 CCTV가 존재하고 △부씨가 최씨 행위로 두려움을 느꼈다면 도움을 요청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고 △부씨는 최씨가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아 고소했다는데 최씨는 사건 다음날 무릎 꿇고 사과한 점 등을 이유로 부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대법원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무죄(또는 무혐의 처분)를 받았다고, 성추행을 주장한 사람이 무고인 것은 아니고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사람이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성폭행 등 피해와 신고에 이른 경위 등을 배척해서는 안 되고 △(특정) 신체 접촉을 용인한 측면이 있어도 그 외 다른 신체 접촉도 동의하거나 승인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최씨가 부씨를 무고죄로 고소할 때와 1심 법정에서 한 증언이 다른 점 등을 들어 원심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최씨가 무고죄 고소 당시는 성추행할 시간적 간극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였으나 1심 법정에서는 1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최씨가 부씨를 무고죄로 고소할 당시 강제추행 전에도 서로 감정에 이끌려 입맞춤 했다는 취지로 주장했으나 1심 법정에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다는 등 다른 취지로 증언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강제 추행에는 상대방에게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해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 추행하는 행위뿐 아니라 기습 추행도 포함된다”며 “이 경우의 폭행은 상대방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최씨와 부씨가 손을 잡는 등 다른 신체 접촉이 있었다거나 협박성 발언이 있었거나 강제 추행을 당한 후 공포감을 느껴 주변에 도움을 청했는지 등은 기습추행을 당했는지와 직접 상관이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설령 부씨가 사건 당일 일정 수준의 신체 접촉을 용인한 측면이 있더라도 부씨는 신체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갖는 주체로서 언제든 그 동의를 번복할 수 있고, 자신이 예상하거나 동의한 범위를 넘어서는 신체 접촉을 거부할 자유를 가진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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