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타이타닉’ 검열부터 100년 전 제작사 노동규약까지 
나치의 ‘타이타닉’ 검열부터 100년 전 제작사 노동규약까지 
[이제, 미디어박물관이다②] 베를린 영화방송박물관, 사회문화사 담은 전시와 함께 영상에 대한 비판적 독해까지 다루며 현재와 접점…“영상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삶과 함께하고 있다” 

미디어는 숨 가쁘게 바뀌었다. 더불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빠르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를 기록하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한국의 신문박물관은 과거에 멈춰있고, 방송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은 찾을 수 없다. 군사 독재 시절 보도지침과 언론계 촌지 문화·오보의 역사 등 ‘언론의 그늘’을 기록해놓은 곳도 없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디지털 미디어로의 변화가 언론계에 끼친 영향을 타임라인과 함께 맥락적으로 설명해주는 공간도 없다. 초 단위의 미디어 소비 속에, 정작 미디어가 궁금한 시민은 갈 곳이 없다. 

해외에는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박물관이 존재한다. 이들 박물관의 공통점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전망케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박물관이 있는 국가들은 언론 신뢰도 및 언론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회도 시민과 소통하는 미디어박물관 건립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디어오늘은 미디어박물관의 공공성·효용성, 그리고 박물관이 등장할 경우 기대되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취재하고자 해외에 있는 다양한 미디어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이번 기획기사는 지면에 10회 연재될 계획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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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포츠담 광장 앞 소니센터에 위치한 영화방송박물관. ⓒ정철운 기자 

오늘날 미디어는 ‘영상’이다. 영상의 시작은 영화다.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포츠담 광장 소니센터에는 영화방송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영상의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영화박물관에는 영화의 역사가, 영화도서관에는 영상에 관한 사유를 넓히는 관련 서적과 자료가, 그리고 방송박물관에는 엄선된 양질의 영상이 가득했다. 

지난 6월14일 도착한 박물관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만난 건 필름이었다. 19세기 필름 발명 이후 1895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영화가 상영되고 독일에서도 영화스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박물관은 각종 필름과 고전적인 영화 상영기·영화 포스터를 비롯해 독일의 초창기 영화스타부터 최초의 영화 광고가 실린 신문지면, 100년 전 영화제작현장을 재현한 모형까지 전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1918년 작성된 영화제작사의 노동규약까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에는 독일 영화의 사회·문화사가 담겨있었다.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전쟁의 트라우마가 강했던 독일 사회는 죽음을 소재로 한 괴기스러운 공포영화가 지배했다. 천문학적인 전쟁배상금에 살인적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속에 미래가 보이지 않던 바이마르공화국 시절의 사회상이 영화 전시로 구현됐다. 대표적 작품이 1927년 프리츠 랑 감독의 공상과학영화 ‘메트로폴리스’다. 100년 뒤 자본주의 미래도시를 구현한 영화가 보여주는 계급사회와 암울한 노동자의 삶, 기계 인간의 모습은 100년 전 독일의 세기말적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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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트로폴리스'의 대형 포스터가 걸려있는 모습. ⓒ정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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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림피아'의 포스터와 함께 베를린 올림픽경기장 모형이 설치된 모습. ⓒ정철운 기자 

‘메트로폴리스’만큼 박물관이 전시에 집중한 영화는 프리츠 랑과 함께 또 한 명의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레니 리펜슈탈의 1936년 작품 ‘올림피아’였다. 베를린올림픽의 성공을 나치 독일의 완벽함으로 포장한 대표적 선전 영화였다. 이곳에선 ‘올림피아’의 주 무대였던 베를린올림픽 경기장의 모형도 섬세하게 제작돼 있었다. 박물관은 “영화가 세계대전 이후 군사적 목적에서 선전도구로 사용됐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치시대 영화를 다룬 전시공간은 다른 공간과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마치 차가운 영안실을 전시실로 갖다 놓은 느낌이었다. 대다수 작품은 시체 보관함을 열어보듯 철제 서랍을 열어야 볼 수 있었다. 의도적인 전시 콘셉트로 느껴졌다. 전시는 하되,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역사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사람만 직접 열어서 보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또는 나치시대 독일 영화사는 영화계 입장에서 시체처럼 생명이 없는 역사였다는 은유로 보였다.   

“나치는 유대인 영화인을 몰아내고 국가적 영화를 제공했다. (영화인 가운데) 가해자·피해자·동조자가 나왔다. 당시 영화산업은 웃음만을 주는 상업영화가 지배했다.” 영화계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명확했던 시대, 박물관이 달아놓은 주석이다. 이곳에는 2차 세계대전이던 1942년 당시 나치가 영화 ‘타이타닉’ 시나리오에 대한 검열 결과(평가표)를 담아 제작사에 보낸 공문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공문에는 “타이타닉 침몰을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영국 자본주의 탓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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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영화방송박물관에 위치한 나치 관련 전시공간. 시체보관소처럼 구성됐다. ⓒ정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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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당시 나치가 영화 ‘타이타닉’ 제작사에 보낸 시나리오에 검열 결과 공문. ⓒ정철운 기자 

이밖에도 영화제작사가 나치 선전부에 미리 보낸 촬영허가 요청서, 제국문화협회 가입신청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협회원이 되어야만 독일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어지는 전시공간에선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갔던 영화인들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나는 독일을 사랑한다. 다만 나치를 싫어할 뿐이다”라며 反나치 운동에 앞장섰던 마리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했다. 

영화박물관과 달리 방송박물관은 전시보다 아카이브에 집중했다. 구글과 유사해 보이는 자체 검색엔진에 검색어를 입력하면 영상을 즉시 볼 수 있었다. ‘요제프 괴벨스’를 입력하니 ZDF에서 만든 영상 등 2건이 나왔다. 이곳에선 방송역사와 관련해 선별된 1만 점의 독일 방송 풀 영상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 방송상인 그리메(Grimme Preis)상을 수상한 방송 프로그램도 이곳에서 모두 볼 수 있다. 이 아카이브 공간의 이름은 ‘미디어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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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박물관에 위치한 아카이브 공간 ‘미디어텍’. ⓒ졍쳘운 기자 

박물관에서 교육과 중개를 담당하고 있는 유렉 제어트(Jurek Sehrt)는 이날 기자와 만나 “과거에는 영화와 방송이 구별되어서 전시되었는데, 지금은 연결성을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어떤 물체를 중심으로 전시했는데, 지금은 방송을 볼 수 있는 공간인 미디어텍과 함께 콘텐츠 자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미디어텍은 전시인 동시에 아카이브”라고 설명했다. 

영화박물관에서 영상 아카이브로…‘상업영화 이데올로기와 조작’ 세미나도 
“영상은 보존해야 할 예술작품” 영상에 대한 총체적 사유를 제공하다 

베를린 영화방송박물관은 독일의 영화감독이었던 게르하르트 람브레히트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들기 위한 모든 재료에 관심이 있었다. 영화기술의 발전부터 시나리오, 대본 등을 수집했다. 1963년 베를린시가 그의 수집품을 넘겨받아 오늘날의 영화박물관을 설립했다. 게르하르트는 이 박물관의 첫 번째 관장이기도 했다. 

박물관은 통일과 함께 큰 변화를 맞이했다. 분단 시절 베를린 장벽이 가로지르는 공간이었던 포츠담 광장이 통일의 중심지가 되면서 영화박물관 건립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베를린시가 현재 박물관이 위치한 부지를 소니 등에 매각하면서 건물 일부를 영화 관련 장소로 운영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박물관은 시 소속에서 독일연방 문화미디어청 기관 소속이 되었다. 

온도·단열·스프링쿨러까지 용도에 맞게 설치해 2000년 오늘날의 영화박물관을 열었다. 이때부터 독일 영화사에 대한 상시전시가 시작됐다. 독일연방에서 기본적인 재정지원을 받고 여기에 입장료와 교육프로그램 참가비가 수입으로 더해졌다. 2006년 박물관은 영화방송박물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움직이는 이미지로서의 방송이 영화보다 사회에서 중요한 매체가 되면서 변화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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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포츠담 광장 소니센터에 위치한 베를린 영화방송박물관의 모습. ⓒ정철운 기자 

유렉 제어트는 “최근 영상 분야 발전에 어떻게 따라가고 변화할지 고민이 있다. 유튜브·비메오·넷플릭스·아마존 등 다른 형태, 다른 플랫폼을 통해 영화가 소비되는 등 영상 환경이 다이내믹하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영화와 게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며 “미래의 영상 박물관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선 상설전시 외에도 여러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 국민 드라마 ‘린덴슈트라쎄(린덴거리)’를 주제로 특별전을 한다고 했다. 1985년부터 시작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드라마로, 독일의 시대상이 다 들어가 있다고 했다. 우리로 치면 MBC ‘전원일기’ 특별전을 열고 최불암-김혜자 가족에 담겨있던 사회상을 전시하는 식이다. 바이마르공화국 영화에 대한 특별전, 최근 소금광산에서 발견해 복원된 과거 영화 포스터에 관한 특별전도 기획되어 있다고 했다. 

유렉 제어트는 ‘박물관’ 하면 떠오르는 기존의 시선을 거부했다. 그는 “박물관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한정된다. 좋은 박물관은 소장품을 보존하고 널리 전시하는 것 외에 아카이브가 되어줘야 한다. 방문객들은 전시를 보지만 이곳에 다양한 분야의 아카이브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을 위한 아카이브 접근 가능성 또한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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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박물관 내부의 모습. ⓒ정철운 기자 

무엇보다 박물관은 전시나 아카이브를 넘어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며 스스로 현실과의 접점을 찾고 있다. 현재 박물관 교육프로그램에 연평균 1만2000명~1만500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그가 강조한 오늘날 박물관의 역할 또한 ‘교육’이다. 그는 서랍 속에서 영화 필름을 꺼내더니 “영화 1초 분량을 만드는데 24장의 필름 이미지가 필요하다. 지금 세대는 필름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필름 자체만으로도 좋은 교육 재료가 된다”고 했다. 

이곳에는 학생들을 위한 영상제작프로그램이 있다. 난민 출신의 학생이 자신의 탈출 과정을 바탕으로 짧은 영상을 만들기도 한다. 결과물을 만들어 내 참가자들이 스스로에 만족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목표다. 이곳에선 스마트폰 영화제작프로그램도 있다. 

이곳에선 ‘상업영화에서의 이데올로기와 조작’이라는 주제의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는 “전쟁영화나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영화의 이면을 봐야 한다. 누가 만들었나. 왜 만들었나. 예를 들어 ‘람보’에는 베트남 전쟁과 냉전에 대한 미국 중심의 이야기가 담겼다”며 “우리는 영화가 사고를 조작할 수 있고, 이데올로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 시민들이 영화를 볼 때 비판적 감수성을 갖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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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교육 및 중개를 담당하고 있는 유렉 제어트. ⓒ정철운 기자 

그는 영화 ‘캡틴아메리카’ 등 할리우드 영화를 가리켜 “할리우드 영화 속 독일은 늘 특정한 악센트가 있고, 특정 시기가 주로 묘사된다. 틀렸다기보다는, 현실에서 독일에 대한 인식을 한정시킨다”고 지적했다. “히틀러의 마지막을 다룬 ‘다운폴’이나 ‘쉰들러리스트’는 정말 흥미로운 영화이며 현실을 기반으로 했지만, 드라마틱하게 만든 픽션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할리우드를 특징짓는 견고한 틀이 있다. 이런 것을 인식하며 영화에 비판적인 거리를 두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 같은 세미나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관심과 욕구를 가진 많은 사람이 분별력 있고 유익한 미디어를 소비하게끔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으며 결과적으로 “영화를 예술작품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물관 사무국은 정직원 50여 명을 비롯해 프로젝트 담당자까지 모두 90여 명 정도다. 그는 “내가 일하는 교육 분야에서 15~20명 정도의 프리랜서와 함께 일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정직원은 나 한 명뿐”이라고 전한 뒤 “박물관은 다양한 그룹을 위한 다양한 전달 방법과 콘셉트가 고려되어야 한다”며 “한국에서 새로 박물관을 만든다면 충분한 인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영상 관련 교육프로그램 안에 다양한 영역이 있다”며 “앞으로는 영화학자·문화역사학자·연출자·촬영감독·애니메이션 전문가 등 전통적인 박물관 영역과는 다른 쪽의 인력이 (박물관에)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참 동안 ‘딥페이크’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항상 영화관에서 웃고 울지만, 보존해야 할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은 못 했다”고 지적하며 예술작품으로서의 영화와 영상을 보존하고 그것에 주석을 달고 의미를 부여하는 박물관의 역할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 영상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삶과 함께하고 있다”며 “그 어느 때보다 영상을 다루는 방식과 영상을 대하는 태도를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매일매일 스마트폰 속 영상에 파묻혀 살기 바쁜 우리에게 영상에 대한 총체적 사유를 제공하려는 박물관의 노력과 철학은 여러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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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7-13 17:57:56
개인적으로 역사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역사는 박물관에서 보존돼야 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반성도 하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나쁘다고 너무 배척만 하지 말고 모든 종류의 역사를 포용하는 역사박물관이 한국에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