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신문 역사 품은 박물관의 21세기 생존기 
400년 신문 역사 품은 박물관의 21세기 생존기 
[이제, 미디어박물관이다③] 아헨 국제신문박물관, 단순한 신문 전시로 폐관 위기 겪었으나 미디어비평과 미디어리터러시 접목하며 재탄생

미디어는 숨 가쁘게 바뀌었다. 더불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빠르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를 기록하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한국의 신문박물관은 과거에 멈춰있고, 방송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은 찾을 수 없다. 군사 독재 시절 보도지침과 언론계 촌지 문화·오보의 역사 등 ‘언론의 그늘’을 기록해놓은 곳도 없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디지털 미디어로의 변화가 언론계에 끼친 영향을 타임라인과 함께 맥락적으로 설명해주는 공간도 없다. 초 단위의 미디어 소비 속에, 정작 미디어가 궁금한 시민은 갈 곳이 없다. 

해외에는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박물관이 존재한다. 이들 박물관의 공통점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전망케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박물관이 있는 국가들은 언론 신뢰도 및 언론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회도 시민과 소통하는 미디어박물관 건립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디어오늘은 미디어박물관의 공공성·효용성, 그리고 박물관이 등장할 경우 기대되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취재하고자 해외에 있는 다양한 미디어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이번 기획기사는 지면에 10회 연재될 계획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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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아헨시에 위치한 국제신문박물관의 정문. ⓒ정철운 기자 

 

네덜란드·벨기에 국경과 인접한 독일의 중소도시 아헨(Aachen). 이곳은 1850년 로이터(Reuter)가 최초의 뉴스통신사를 시작한 곳이다. 이때도 사람들은 돈을 내며 뉴스를 보길 싫어했다. 로이터는 일정 금액을 내면 약정에 따라 로이터가 제공하는 모든 뉴스를 받아볼 수 있는 모델을 선보였다. 그렇게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쇄된 이름이 됐다. 

로이터가 썼던 사무실 근처에는 국제신문박물관(Internationales Zeitungsmuseum)이 있었다. 아헨에 거주하던 재력가 오스카 폰 포르켄베크의 신문 수집품 8만 부가 모여 1886년 아헨에서 박물관이 탄생했다. 이후 1931년 현 위치로 박물관이 이전했다. 단순히 신문만 전시해오던 박물관은 1990년대 들어 폐쇄 위기에 몰렸고, 급기야 2008년 문을 닫았다. EU의 지원을 받아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 맞게 리모델링 한 뒤 2011년 재개관하며 ‘저널리즘’이란 테마가 본격적으로 추가됐다. 

이곳은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적힌 신문 35만 부를 보유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특별하다. 17세기부터 지금까지 400년 신문의 역사가 담겨있다. 1605년 스트라스부르에서 발행된 최초의 신문 ‘렐라치온’도 볼 수 있다. 1842년 칼 마르크스가 편집장이었던 ‘라인신문’도 있다. 라인신문은 붉은색 잉크로 신문을 인쇄한 것이 특징이다. 7000여권 이상의 신문 관련 도서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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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가 편집장이었던 ‘라인신문’ 1면. ⓒ정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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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졸라의 기고문 “나는 고발한다”가 실린 1898년 1월13일자 ‘로로르’ 1면. ⓒ정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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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쓰임 연표를 나무로 표현한 이미지. ⓒ정철운 기자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 유죄의 부당성을 폭로하기 위해 쓴 기고문 “나는 고발한다”가 실린 1898년 1월13일자 ‘로로르’(L’aurore) 1면도 박물관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에밀 졸라의 글은 현대적 의미의 저널리즘이 현실을 바꾼 사실상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기고 이후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드레퓌스는 무죄를 받았다. 

특정 국가를 터치하면 해당 국가의 신문을 볼 수 있는 세계지도 디지털 스크린도 박물관 관람객들에게 인기다. 한국을 누르면 2009년에 제작된 동아일보 1면이 등장했다. 북한은 노동신문 1면이 등장했다. 인도의 경우 여러 신문이 등장했다. 인도는 영토 내에서 쓰이는 언어가 다양해서다. 

이곳이 더욱 특별해진 계기는 신문 전시를 넘어 저널리즘을 다루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곳에선 ‘뉴스 필터’를 보여준다. ‘사건에서 뉴스로’(From Event to News) 공간은 어떤 과정을 거쳐 뉴스가 생산되는지 단계를 설명해준다. 사건은 역피라미드 필터링 과정을 거치며 뉴스가 되는데, 가장 중요한 주체는 ‘기자’다. 이곳에선 기자들의 근무환경에 대한 자료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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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국가를 터치하면 해당 국가 신문을 볼 수 있는 세계지도 디지털 스크린. ⓒ정철운 기자 

 

박물관은 더 이상 ‘단순히’ 신문만을 모으는 곳이 아니다. 신문을 둘러싼 모든 것을 사유하고자 한다. 박물관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다양한 한국 신문을 수집했다고 했다. 9·11테러, 케네디 암살, 2차 세계대전, 달 착륙과 같은 대형사건에서 다양한 신문의 1면을 모아 각기 다른 지면 배치와 헤드라인으로 솎아볼 수 있는 콘텍스트가 있다는 판단에 이와 관련한 멀티미디어 자료도 구축했다. 

이밖에 소리, 도보 이동, 강물, 새, 문자를 거쳐 인터넷과 스마트폰까지 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정보의 전달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영상, 정보의 디지털화 이후 오늘날 뉴스의 속도에 관한 영상도 상영 중이다. 시간이 흐르며 종이의 쓰임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나무줄기로 묘사한 이미지도 벽면에 자리 잡고 있다. “활자는 기억을 재생하고 확산시켰다”는 각주와 함께 신문 산업화의 출발이 된 구텐베르크 인쇄술 발명도 소개된다. 

6월18일 박물관에서 만난 안드레아스 뒤스폴(Andreas Düspohl) 국제신문박물관장은 세계 유일의 국제신문박물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보였다. 그는 “신문은 사람들이 당시에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다. 신문광고만 봐도 당시 사회상을 알 수 있다”며 “신문은 쉽게 버려져선 안 되고, 보존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오래된 신문의 보존만으로는 박물관의 역할을 다 한다고 할 수 없다. 

예컨대 이곳의 또 다른 테마는 ‘조작’이다. 안드레아스 박물관장은 1920년대 레닌의 대중연설 사진을 소개하며 “원본 사진에는 트로츠키가 있었지만 대중에게 공개될 때는 삭제됐다. 스탈린이 정적을 숙청하며 트로츠키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우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군이 이라크군을 붙잡고 물을 먹이는 사진의 다양한 프레임을 보여주며 프레임이 갖는 편향성도 설명했다. 왜 신문박물관에서 이런 것까지 다룰까. 그는 “뉴스수용자들이 언론에서 사진을 접할 때 항상 비판적으로 보게끔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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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레임의 위험성을 설명하는 전시관. ⓒ정철운 기자 

 

안드레아스 박물관장은 “200년 전에 비하면 언론의 자유가 확보돼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언론이 자유롭지 못하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야 한다. 언론은 왜곡과 편향이 계속될 경우 결국 외면받는다. 드레퓌스 사건의 에밀 졸라처럼 (언론은) 진실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선 뉴스가 등장하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곳에는 나치 시절 신문도 전시되어 있다. “유대인은 우리의 불운이다”, “우리는 시대의 희생자다” 같은 구호가 지면에 담겼다. 1934년 히틀러의 생일을 맞아 “그는 건강하며 앞으로도 건강할 것”이라고 적으며 문장 마지막에 느낌표(!)를 찍어야 하는데 물음표(?)를 찍었다는 이유로 1주일간 발행이 금지되었던 신문의 1면도 있다. 1면에는 이 같은 금지 사유가 적혀있었다. 

안드레아스 박물관장은 “신문은 프로파간다의 수단”이라며 1945년 4월 히틀러 사망 직전 두 개의 신문을 소개했다. “베를린 도심에서 대격전 벌어지다”란 헤드라인이 걸린 신문과, “여성들도 나서서 독일의 승리를 돕고 있다”는 헤드라인이 걸린 신문이었다. 한쪽은 몰락, 다른 한쪽은 희망을 담고 있었다. 이처럼 박물관은 과거에 머무르게 되는 단순 전시를 넘어 현재와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 프로그램을 접목하며 현실과의 접점을 찾았다. 

이 같은 공적 역할을 진행 중인 박물관 운영비 대부분은 아헨시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직원들도 시에서 고용했다. 여기에 기부금과 입장료가 수입으로 더해진다. 연간 입장객은 1만2000여명 수준이다.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소도시라는 점을 고려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이곳에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연령대별 가이드 투어도 진행된다. 박물관은 독일의 언론전문학교와도 협약을 맺었다. 박물관 교육프로그램은 시나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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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뒤스폴 국제신문박물관장이 나치시절 검열된 신문 1면을 설명하는 모습. ⓒ정철운 기자 

“미디어박물관, 한국의 시민의식 반영해야”
“민주주의 위해 모두가 미디어리터러시 갖춰야”

신문박물관장에게 신문의 미래를 물었다. 그는 “텍스트를 읽는 열정은 줄어들 것이고, 신문은 더 이상 광고로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하면서도 신문이 갖는 출처의 신뢰성을 강조했다. 그는 “왓츠앱에서 사진을 볼 순 있겠지만 사진이 어디서 왔는지는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신문은 다르다. 신문은 출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프린트 미디어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안드레아스 박물관장은 두 번이나 한국에 다녀갔을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높은 편이었다. 그는 “한국은 일제 침략을 받고 분단이 되고 독재자가 민주주의를 파괴했던 나라”라고 말한 뒤 “201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세종시에 있는 어느 박물관에 갔는데 한국의 가이드가 박정희에 대해 좋은 면만 설명했다. 내가 반박했더니 그냥 자기 의견이라고 하더라. 내가 알고 있던 박정희와 달라 굉장히 혼란스러웠다”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이후 그는 운 좋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촛불집회 현장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촛불집회를 보면서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이 잘 되어있다고 느꼈다. 시민의식이 발전한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미디어박물관은 한국의 시민의식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는 ‘기레기’라는 단어가 보편화 되고, 주류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떨어지면서 동시에 언론자유가 보장된 매우 특별한 곳으로, 시민들이 촛불혁명 당시 언론개혁을 주장할 만큼 뉴스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일상화됐다. 이 같은 사회적 특성이 미디어박물관에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언론의 긍정적인 면만 소개하거나 현실과 괴리된 언론 인식이 각종 프로그램과 전시에 투영될 경우 박물관은 정작 시민들을 놓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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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뒤스폴 국제신문박물관장. ⓒ정철운 기자 

 

그는 미디어박물관이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가치를 “어떤 방향성을 갖고 갈지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라고 언급한 뒤 “우리 박물관의 경우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란 주제를 중요시하며 어떻게 미디어가 현실에서 기능하는지를 교육하는 것이 주요한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박물관장은 “페이스북은 우리의 정보를 통해 돈을 번다. 네트워크가 얼마나 큰 시장이 되었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빅데이터는 빅 비즈니스”라고 강조하며 적지 않은 시간을 페이스북과 구글에 대한 우려를 전하는 데 썼다. 처음에는 신문박물관장이 참 많은 것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오늘날 미디어박물관 운영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처럼 모든 미디어 환경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총체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국에서 미디어박물관을 짓게 된다면 “가짜뉴스를 비롯해 오늘날 뉴스 조작과 오보에 대한 뉴스수용자들의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게끔 하는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를 생산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민주주의 시대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모두가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박물관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제다. 

※ 본 기사는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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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07-20 15:48:54
개인적으로 미디어 박물관이 수도권에 한곳이 있었으면 한다. 신문은 역사와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본다. 누가 맞는지를 떠나 과거의 신문을 통해,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잘못과 오보/선동은 어떻게 생기는지를 국민이 안다면, 신문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커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