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미디어의 기원’을 알려주는 곳 
600년 전 ‘미디어의 기원’을 알려주는 곳 
[이제, 미디어박물관이다④] 마인츠 구텐베르크 박물관, 구텐베르크를 넘어 ‘인쇄의 모든 것’을 담아내다…정보전달수단의 역사부터 ‘인쇄물 검열’까지 

미디어는 숨 가쁘게 바뀌었다. 더불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빠르게 달라졌다. 그러나 이를 기록하는 공간은 찾기 어렵다. 한국의 신문박물관은 과거에 멈춰있고, 방송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은 찾을 수 없다. 군사 독재 시절 보도지침과 언론계 촌지 문화·오보의 역사 등 ‘언론의 그늘’을 기록해놓은 곳도 없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디지털 미디어로의 변화가 언론계에 끼친 영향을 타임라인과 함께 맥락적으로 설명해주는 공간도 없다. 초 단위의 미디어 소비 속에, 정작 미디어가 궁금한 시민은 갈 곳이 없다. 

해외에는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박물관이 존재한다. 이들 박물관의 공통점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미래를 전망케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박물관이 있는 국가들은 언론 신뢰도 및 언론 자유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 사회도 시민과 소통하는 미디어박물관 건립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미디어오늘은 미디어박물관의 공공성·효용성, 그리고 박물관이 등장할 경우 기대되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취재하고자 해외에 있는 다양한 미디어박물관을 찾아 나섰다. 이번 기획기사는 지면에 10회 연재될 계획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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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마인츠에 위치한 구텐베르크 박물관. ⓒ정철운 기자  

과거 서독의 중심이었던 프랑크푸르트에서 30여 분 거리에 위치한 마인츠(Mainz)는 1453년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태어나 살아온 곳이다. 금속세공 도제업자로 알려진 쿠텐베르크는 마인츠의 자랑으로, 그의 이름을 딴 기념비와 대학교가 있다. 

구텐베르크는 과장을 보태자면 600년 전 ‘스티브 잡스’다. 그는 ‘인쇄’라는 일종의 신개념을 만들어냈다. 구텐베르크 이전에는 성경 한 권을 만드는 데 무려 3년이 걸렸지만 구텐베르크 이후 책을 펴내는 시간은 획기적으로 앞당겨졌다. 

활판 인쇄술의 핵심은 인쇄기였다. 마인츠는 와인으로 유명했는데, 구텐베르크는 포도즙액을 내기 위해 쓰던 포도 압착기를 이용해 활자를 찍어냈다. 인쇄를 위해선 무엇보다 인쇄기 압력을 견딜 만큼 활자가 튼튼해야 했다. 구텐베르크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다양한 금속재료를 섞은 활자와 금속활자를 만드는 틀(프레임)을 제조했다. 그는 움직일 수 있는 활자, 재활용 가능한 활자를 만들었다. 대규모 투자를 받아 실패와 실패를 거듭한 결과였다. 

금속활자로 조판작업을 마치고 완성된 활판에 잉크를 바르고, 활판 위에 종이를 올려놓은 뒤 압착기를 돌려 눌렀다. 굴뚝에 있는 흑연을 긁어내 색을 냈다. 그렇게 인간의 역사를 바꿀 인쇄술이 탄생했다. 구텐베르크 이후 성서는 대중화됐다. 활판 인쇄술로 책이 대량생산되며 유럽의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신문의 탄생에도 기여했다. 

그의 발명은 지식의 혁명과 함께 결국 근대를 열었다. “구텐베르크가 없었다면 지금의 세상은 없었을 것이다.” 안네테 루드비히(Annette Ludwig) 구텐베르크 박물관장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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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으로 만들어낸 구텐베르크의 모습. 그는 600년 전 위대한 발명을 이뤄냈다. ⓒ정철운 기자  

마인츠 시민들은 구텐베르크의 업적을 잊지 않았다. 1900년 구텐베르크 탄생 500주년을 맞아 시민들은 구텐베르크 박물관설립을 추진했다. 루드비히 박물관장은 “시민들이 구텐베르크를 시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 그의 유산을 보존하고 그를 기념할 수 있게끔 박물관을 설립해야 한다며 시에 청원했다. 시민들이 먼저 박물관 설립기금을 모으고 상당수의 전시품을 수집했다. 시민이 기증한 전시품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들이 박물관 설립을 주도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지난 6월19일 찾은 구텐베르크 박물관은 학생들을 비롯한 관람객들로 붐볐다. 매년 세계에서 14만 명의 방문객이 찾고 있다고 했다. 우연히 일본 취재진도 마주칠 수 있었다. 이곳에는 구텐베르크 작업장을 비롯해 15~17세기 각종 인쇄기와 인쇄 도구들이 모여있다. 인쇄 혁명의 상징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구텐베르크 성서’ 48부 중 2부를 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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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박물관 내부 전시품들. ⓒ정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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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박물관에 전시된 인쇄기 중 일부. ⓒ정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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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박물관에 전시 중인 직지심체요절(모조품). ⓒ정철운 기자 

이곳은 구텐베르크를 위한 곳이면서 동시에 ‘인쇄의 모든 것’을 담고자 했다. 익숙한 사실이지만 구텐베르크보다 앞섰던 인쇄기술의 원조가 고려 시대 선조들이다. 그래 박물관은 1996년 유럽 박물관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실’을 신설해 세계 최고의 목판 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직지심체요절’(1234년) 등을 전시해왔다. 한국이 인쇄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어서 복사본을 장기 임대 계약으로 빌려왔다고 했다. 직지의 인쇄과정을 시간순으로 전시해놓은 모형이 인상적이었다. 

박물관은 한국·중국·일본의 인쇄술을 소개하는 동아시아 코너를 비롯해 이슬람 코너도 마련해놨다. 이밖에도 과거 책 제본을 위한 다양한 도구, 인쇄에 쓰인 물감을 생산 과정부터 물감 재료, 책 겉표지의 역사도 볼 수 있었다. 과거 책을 보호하기 위해 목판이 겉표지로 쓰였다는 사실도 여기서 눈으로 확인했다. 

무엇보다 이곳에선 금속활자 인쇄과정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구텐베르크 기술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인쇄 시연은 1925년부터 진행했다. 인쇄업 종사자를 위한 실무교육프로그램도 있다. 기술만큼 기술을 쓰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일종의 장인 연수 과정이 있다. 옛날 방식의 책 제본 교육프로그램도 있다. 박물관 지하 1층에선 하루 네 번 인쇄술과 관련한 시연 중심 강의가 있다. 기자도 이날 구텐베르크 성서를 활판 인쇄술로 찍어봤다. 

이곳은 겉으로 보기에 하나의 관광상품처럼 보이지만 구텐베르크 홍보에 머무르지 않는다. 구텐베르크를 통해 ‘정보전달수단’의 역사를 설명하고, ‘정보검열’을 이야기한다. 인쇄의 역사를 다루는 이곳에서도 ‘인쇄물 검열’은 놓칠 수 없는 주요한 이슈다. 이곳에는 없을 줄 알았던 나치 괴벨스와 히틀러의 언론탄압이 이곳에서도 3층에 따로 코너로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는 국경없는기자회의 언론자유지수 세계지도까지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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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 박물관 한켠에 있는 인쇄검열 코너. 사진 속 인물은 나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 ⓒ정철운 기자 

안네테 루드비히 박물관장은 “우리는 책이 있기 전부터 현재의 디지털 시기까지 인쇄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루고 있으며 많은 특별전을 기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도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성된 책의 전통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박물관이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루드비히 박물관장은 “구텐베르크의 발명품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인쇄술을 통해 지식은 평등화·민주화됐다. 모두가 지식에 다가가고 앎에 접근할 수 있게끔 했던 발명은 지금도 중요하게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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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테 루드비히(Annette Ludwig) 구텐베르크 박물관장. ⓒ정철운 기자 

스마트폰 화면 속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며 인쇄는 쇠퇴하고 있다. 인쇄술을 다루는 박물관 역시 과거의 유산을 전시하는데 그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루드비히 박물관장은 “구텐베르크의 발명품이 미디어의 혁명을 가져온 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미디어의 혁명을 겪고 있다. 그것들을 같이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에 여전히 박물관의 의미가 있다”고 말하며 “젊은 세대들에게 미디어의 기원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은 마인츠시가 소유하고 있다. 박물관은 각종 기부금을 받고 있으며 박물관에서 이뤄지는 각종 교육프로그램은 시에서 간섭하지 않는다. 46명의 정규직원이 있으며 이 중 4명이 연구원이다. 이들은 자칫 수백 년 전 인쇄기 전시에 그칠 수 있었던 박물관에 ‘미디어의 기원’과 같은 맥락을 불어넣어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학생들과의 접점을 찾고자 했다.   

루드비히 박물관장은 “디지털 시대에 구텐베르크 기술과 같은 아날로그 문화를 후세에 전달하는 것도 우리의 과제”라고 전한 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박물관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의 기원을 찾고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에서 전시품만큼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운영철학이다. 

※ 본 기사는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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