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백종문 녹취록’ 파문 이후 4일 열린 방송문화진흥회(고영주 이사장) 정기이사회에서 녹취록 진상규명 등에 대한 결의안건이 올라왔지만, 녹취록 전문을 구하기 전에는 논의를 못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날 방문진 회의에는 임진택 MBC 감사의 업무보고 후 ‘백종문 본부장 녹취록에 기재된 사실관계에 대한 진상규명 및 향후 방문진 조치에 관한 건’이 결의사항을 올라왔다. 

회의 초반부터 안건을 제안한 야당 추천 이사들이 제안 설명을 하기도 전에 고영주 이사장을 비롯해 여당 추천 이사들은 녹취록 당사자의 사생활과 명예훼손 우려를 이유로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해 이사들 간 논쟁이 오갔다. 

이 과정에서 방문진 이사들이 회의 비공개 결정을 하지 않았음에 방청석 중계 화면이 꺼져 논란을 빚었지만, 결국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선 언급을 피하고 향후 방문진 차원의 진상규명 등 조치를 위한 절차를 논의하기로 하면서 ‘백종문 녹취록’ 관련 안건 제안 설명이 이어졌다.

‘MBC를 국민의 품으로! 공동대책위원회’는 4일 방송문화진흥회가 위치한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광한 MBC 사장 해임과 부당 해고자 복직을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안건을 제안한 유기철·이완기·최강욱 이사를 대표해 이완기 이사는 “지난달 25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굉장히 충격적이고 참담해 방문진 이사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며 “공영방송 MBC의 명예와 위상, 신뢰도가 실추됐고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줘 향후 MBC 경쟁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는 문제의 녹취록을 통해 △2012년 인사위원회에서 사원을 증거 없이 해고했다는 백종문 미래전략본부장의 자백 △폴리뷰 매체와 MBC 간부가 만나 노조 탄압을 위한 부당노동행위 공모 의혹 △회사 기밀 누설과 보안을 무너뜨린 행위 △외주 제작 선정과 편성 개입 등 직무를 벗어난 월권행위 △지역 차별과 사상검증 등 인사 원칙 위반 정황 등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는 또 “인사와 노사관계에서 무분별한 소송 남발로 소송 비용 등 방문진에서 지적한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 MBC의 커다란 손실이 입증됐다”면서 “방문진이 MBC에 대한 관리·감독을 더 철저히 했다면 이런 경영상의 손실을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쉽다”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이어 “10기 방문진 이사들 또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방문진이 우선 할 일은 지난 2012년 인사위 결정과 2014년 녹취록에 적시된 진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명명백백히 밝히고, 잘못이 드러나면 관련자에 대해 방문진이 합당한 조치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강욱 이사도 언론에 보도된 녹취록과 MBC 사측의 공식 입장 등을 근거로 당사자들을 불러 해명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당 추천 이사들이 ‘녹취록 전문을 확인하기 전에는 당사자 출석 요청을 하기는 어렵다’고 밝히면서, 우선 녹취록을 공개한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측에 녹취록 전문과 녹음 파일을 요청한 후 관련자 출석 요구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여당 추천의 유의선 이사는 “사실을 조사해봐야겠지만 언론에 나온 걸 봐선 개인적으로 매우 유감”이라며 “백 본부장 등이 어떤 맥락에서 한 얘긴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과연 회사의 조직적인 부정행위를 자백한 건지, 술 한 잔 마시고 개인적인 호기를 부린 건지 판단하려면 녹취록 전문 등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정보가 불충분한 상태에선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권혁철 이사도 “신문에 나온 발언도 앞뒤가 잘리면 왜곡될 가능성이 있어 녹취록 전문을 획득해 내용을 파악하고 나서 문제가 있어 당사자 의견을 들어봐야겠다고 판단이 들면 그때 들어보면 된다”며 “우선 전문을 입수해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내용을 얘기했는지 이사들이 알아야 그다음 논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광동 이사는 “보도된 내용도 내가 보기엔 중립·객관적이기보다 일부 편향적 의도를 가진 매체가 보도한 것”이라며 “다른 모든 이사도 이 부분을 너무 예단하거나 이미 사실인 것처럼 규정하지 말고 접근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실관계 확인을 끝내고 이 문제에 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최강욱 이사는 “기사를 왜곡과 편향으로 몰고 가려는 시각이 있는데 그러면 당사자인 회사의 반박은 더 편향되고 왜곡될 수 있다”며 “회사 측 입장을 들어보고 녹취록 전문이 있어야 논의가 가능하다는 일부 이사들의 입장은 방문진에서 시간 끌기를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날 이사회에선 방문진 사무처에서 최민희 의원실 측에 녹취록 전문과 음성 파일을 공식 요청하고, 녹취록 관련 신문기사와 사측의 반박 자료를 정리해 오는 18일 방문진 정기이사회에서 재논의하기로 결정됐다.

한편 방송통신위원회도 이날 전체회의를 열었지만 ‘MBC 노조원 불법해고 및 방송의 공적책임 저해 등에 대한 방송문화진흥회 자료제출 요구안’의 정식 안건 논의를 결정짓지 못했다. 최성준 방통위 위원장은 “추후 논의하자”며 야당 위원들이 제출한 방문진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 안건 논의조차 거부했다. (관련기사 : 방통위, ‘MBC 녹취록 사태’ 개입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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