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경영진의 ‘멘탈’이 놀라울 정도다. 이른바 백종문 녹취록이 세상을 뒤흔들어 놓고 있는데 기껏 내놓은 회사 공식 성명이 “MBC 본부장과 간부가 한 인터넷 매체 사람들과 사적 대화를 나눈 것을 녹취록이랍시고 폭로해 마치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녹취록을 공개한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겨냥해 “모 정치인의 선거 출마에 맞춰 공개된 ‘기획 이벤트’”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일단 이 녹취록은 설령 식사자리였다고는 하나 사적 대화가 아니라 언론사(폴리뷰) 관계자와 취재대상(MBC)이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였고 소훈영 전 폴리뷰 기자의 폭로 역시 감정적 보복의 성격이 있다고 하나 보도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녹취록은 세상에 나왔고 경위나 의도와 별개로 그 내용이 담고 있는 진실을 묵과할 수 없다. 녹취록은 더하거나 빼거나 아무런 편집 없이 공개됐고 그 자체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백종문 녹취록이 폭로하고 있는 사실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최승호·박성제는 아무런 사유도 없이 부당하게 해고됐다.

둘째, MBC 경영진은 “월급도 없다”는 보수 성향 인터넷 신문들과 어두운 거래를 했다.

셋째, MBC 경영진이 방송 내용과 출연 패널의 선정에 개입하고 있으며 이들 보수 신문들의 출연과 광고 청탁도 이뤄지고 있다.

넷째, 비슷한 성향의 영세한 보수 성향 인터넷 신문들이 기사 돌려막기를 하면서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

백종문 녹취록은 공영방송 MBC의 바닥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여론의 압박에 몰린 MBC 경영진은 절박하게 자신들을 지지해줄 누군가를 찾았고 보수라는 말도 아까운, 상식 이하의 논리를 쏟아내는 신문들과 손을 잡았다. 한줌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명분과 정당성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이다. 조중동 조차 바닥까지 추락한 MBC 경영진의 힘이 돼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된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MBC의 고위 간부 대부분이 김재철 라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실제로 녹취록에는 “김 전 사장이 퇴직 위로금도 받지 못했는데…”라며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장면도 담겨 있다. 김재철 전 사장이 횡령 등의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한 뒤에도 김재철의 사람들은 자리보전을 하느라 노조를 적으로 돌리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2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토론회에서는 안광한 사장과 백종문 본부장 등을 배임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까지 거론됐다. 이길 수 없는 소송이란 걸 알면서도 근거도 없이 해고를 남발한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경영진과 상식 이하 보수 인터넷 신문의 지저분한 거래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부끄러움을 안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게 이들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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