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브레이크는 사라졌다.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는 설국열차가 되었다. 황폐화된 방송콘텐츠 환경 속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된 연말시상식 시스템은 이제 누구도 제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5년 연말에도 방송시상식이 열렸지만, 찬사일색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점이 없어진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예전에는 시민단체들이 연말 방송사 시상식에 대해 대차게 비판도 하고, 시상식의 부정적인 지적도 크게 부각도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런 일은 없다.

물론 그동안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가요시상식은 없어지고, 공연 형식으로 바뀐 점이 있었다. 가수들에게 주어지는 방송사의 상이 갖는 신뢰와 권위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시청자 관점에서는 획일적인 음악과 천편일률적인 그 이면에는 기획사들의 이해관계도 있었다. 연말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방송사 시상식에 출연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방송시상식에 출연하지 못하면, 당장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을 받을지 알 수가 없어서다. 한국에서 가수의 존재감을 가장 효과적이고 파급력 있게 드러내 주는 홍보수단은 방송 출연이기 때문이다. 가요프로그램에 저가로 출연하는 것만이 아니라 방송사가 주도하는 해외 공연을 마다하지 못하는 이유다.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에는 없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 가수들에게 중화권 시장의 등장은 방송사 시상식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이 때문에 가수 시상식이 유지되기 힘든 면이 생겼다. 특히 유명 아이돌 가수들은 해외 방송 행사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방송사 연말 가요프로그램은 여전히 획일적인 아이돌 중심의 음악이라 많은 시청자들에게서 외면을 받았다.

   
▲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했던 백종원 요리연구가
 

어쨌든 올해 예능과 드라마 부분에서 이뤄진 방송사 연말 시상식은 여전히 중복시상과 공동 수상의 나눠먹기가 대세였다. 또한 출석시상식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올해 논란의 중심에 있던 대종상과 비슷한 점이 많았던 것이다. 이런 대종상에 관한 내용을 다뤘지만, 방송사 시상식의 문제는 방송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2015년 대종상영화제에 출석시상식이 등장했던 것은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출석을 하면 상을 주겠다는 이른바 개근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얼토당토하지 않는 조치는 커다란 분노를 일으켰다. 물론 이런 상황은 암암리에 존재해왔다. 방송사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가수나 연기자 예능인들을 막론하고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는 참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불참을 해도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출석 개근시상식은 올해 대종상영화제에서만 확인된 것이 아니었고, 2105년 방송사 연예 대상에서 이러한 점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백종원이 있었다. 2015년 유행 코드는 ‘쿡방’이었고, 논란의 여지가 있고 찬반이 갈리기는 하지만 이 ‘쿡방’이야말로 여러 방송사에서 공통적으로 시청률 흥행요인이 되었다. 김구라와 이휘재가 연예 대상을 받았지만, 참신성과 공헌이라는 점에서 보았을 때 오랫동안 활동했거나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에게 상이 주어지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 예컨대, 1인 미디어와 지상파 방송의 결합으로 많은 화제를 낳았던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흥행 갑은 김구라가 아니라 백종원이었다. SBS ‘3대 천왕’은 아예 프로그램 제목에 백종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방송계를 주름잡은 쉐프 가운데 한 명인 백종원은 결국 아무런 수상도 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밖에 없었다. 그가 시상식에 출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자신은 방송인이 아니라 요리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가 수상을 못하자 괘씸죄에 걸렸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무엇보다 그동안 이렇게 불참 선언을 한 이는 없었다. 현재 방송프로그램의 흐름은 비방송인을 출연시켜 의외의 때 묻지 않는 즐거움을 주는 방식이다.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예능인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은 그전에도 있었지만 고정게스트로 등장하는 것은 가수나 배우를 넘어서 이제 일반인이나 전문 직업 종사자로 확장되었던 것이다. 주기적으로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지고 갈려나갔다. 싼 몸값의 비예능인들이 대거 투입된 상황이니 이런 상황 속에서 기존의 예능인들은 더욱 분발을 해야 했다. 경쟁은 격화되고, 오로지 그것밖에 밥줄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시상식에서 더욱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시상은 새로운 얼굴들에게는 전혀 다른 기쁨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베테랑이어도 신인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요리나 운동을 잘해도 상을 받고 자신의 입지에 한껏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달뜬 표정을 지어야 한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흔들리는 처지 일수록 이런 줄 세우기에 허리를 굽혀야 한다.

   
▲ 개그맨 신동엽, 가수 설현과 성시경이 2015년 12월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열린 '2015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거꾸로 백종원이 불참을 선언한 것은 자신의 물적 토대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는 요리 비즈니스업계의 대표자이므로 방송사에 신인상에 달뜬 표정을 지을 계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찬사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그렇게 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케이 팝 기획사들이 자사 소속의 가수들을 연말 가요시상식에 내보내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중화권 시장이 한국 시장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연예기획사의 파워가 커졌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이유다. 연기대상의 경우, 해외 시장이 형성되었어도 한국에서 드라마 시청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여전히 연기자들은 시상식에 신경을 써야 한다. 배우 추자현이나 김윤진처럼 독자적으로 자신이 개척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예능 프로와는 더 다르게 방송사 채널파워의 힘은 크기 때문이니 이 덕분에 연기대상도 나눠먹기가 풍족하게 이뤄졌다. 정말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라 인기 있는 작품에 출연해야 상이 주어졌다. 예능프로그램도 대부분 그렇게 시상이 이뤄졌다. 그만큼 광고와 콘텐츠 판매수익을 올려주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여전히 연말 시상식은 방송사의 물적 토대를 튼실하게 만들어준 이들이 상을 받는 것이다. 대종상 영화제도 자신들의 스폰과 흥행 이익을 위해 출석한 배우들에게만 상을 주려 했으며, 부산시도 물적 토대를 부산국제영화제에 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간섭과 방해를 했던 것이다. 상호간에 돈을 둘러싼 시상식인 것이다. 이 물적 동학의 메커니즘에서 시상식이 이뤄지는 앞으로도 한 작품이나 콘텐츠 참여자들의 ‘뛰어난 역량과 능력’이 아니라 ‘자본 증대의 공헌’을 중심으로 논공행상의 시상이 여전히 이뤄질 것이다. 이에 대한 브레이크는 전혀 없다. 시청률에 관계없이 열심히 활동하는 이들은 배제되고 황폐한 설국을 폭주 열차는 그렇게 달려가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