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고속도로, 곱다. 어떤 길 이름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달구벌 대구(大邱)와 빛고을 광주(光州), 그 시민들 늘 만나는 뜻 깊은 달빛동맹이 손잡고 마음 모아 지은 이름일 터다.

가슴 설레지 않는가? 일부러 가서 달려보고 싶은 달빛고속도로. 두 도시의 이미지로, 월광(月光)의 뜻으로도 새뜻하다. 다른 도로와의 구분(區分)과 같은, 이름의 기능으로도 너끈하다.

‘죽음의 도로’ 별명의 ‘88고속도로’를 넓히고 펴서 안전하고 편한, 훌륭한 시설로 새로 단장했다. 정부는 그 동안의 수고와 투자에 걸맞게 새 이름도 멋지게 지어야 했다. 정작 당국이 내민 이름은 ‘광대고속도로’다. 많은 논란이 오고 간다.

작명(作名) 원칙, 서쪽에서 동쪽, 남쪽에서 북쪽 순서로 도시 이름을 붙인단다. 그래서 ‘광주-대구 간 고속도로’이고 ‘광대고속도로’다. 설득력도 ‘별로’지만, 그 원칙 만들 때 국민들 의견 들어보았다는 얘기 들은 적 없다. 누가 언제 왜 만든 것이지? ‘원칙을 위한 원칙’ 아닌가?

‘광대가 다 뭐냐’ 하는 지적이 압도적이다. 천대받는, 그래서 어감이나 연상되는 이미지도 엉망인 그런 말을 하필 이름으로 얹을 게 뭐냐 하는 볼멘소리다. ‘끈(턱) 떨어진 광대’라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화척(禾尺) 어릿광대 삐에로, 이런 이름이 떠오른다는 자못 정서적인 이유다.

높은 분들, ‘달빛’이 감성적이어서 안 된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 감성은 일부러 찾아나서야 하는 덕성(德性) 아닌가? 그 이름에서 얼마나 많은 멋진 이야기들이 번져 나올 것인지 상상할 수 없었을까? 이야기를 찾아 창조경제 하자는 건 대통령도 강조한다. 참 메마른 사람들일세.  

또 다른 관점이 있다. 언론인들이 우리말 장단음(長短音)의 문제점을 잊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의 광주(廣州)는 장음(긴 소리) [광:주]다. 혹 경기도 광주와 대구 사이에 ‘광대고속도로’가 놓인다면 이 이름의 발음은 [광:대고속도로]일 것이다. 빛고을 광주의 발음은 단음(짧은 소리) [광주]다. 光州-대구 간 고속도로의 발음은 그래서 [광대고속도로]다.   

어릿광대의 광대는 장음 [광:대]다. 원래 그렇게 발음해오기도 했고, 언젠가부터 廣大라는 한자를 빌려 표기하기도 한 까닭인 것 같기도 하다. 넓을 廣자 쓰는 廣州처럼 廣大도 발음이 [광:대]다. [광대고속도로]와 [광:대고속도로]가 같을 수가 없는 사연이다.

많은 ‘광대고속도로 논란’ 기사 중 왜 하필 어릿광대의 광대냐 하는 그 지적 말고, 장단음의 원리를 궁리하여 그 차이를 구분한 기사를 볼 수는 없었다. 방송기자들의 ‘리포트’ 발음도 마찬가지였다. [광:대](廣大)의 어감은 싫다 하면서도 거의 모두 [광대]라고 짧게 읽는다.

이처럼 기왕의 장음도 무차별적으로 단음으로 발음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또 사전이나 관련 서적이 제시하는 장단음 기준도 들쭉날쭉, 감을 잡을 수 없다. 토막이말인 ‘자랑’이란 단어를 보자. 대개 단음인데 연세한국어사전 하나는 장음이다. 한자어도 같은 상황이다.

이렇게 장단음의 구분이 사라지면 한국어는 그만큼 ‘가난한 언어’가 된다. 언어생활과 어문정책의 새로운 이슈가 되어야 할 대목이다. 그건 그렇고, 저 멋없는 당국이 끝내 ‘광대고속도로’를 고집한다 해도, 우리 시민사회는 아름다운 ‘달빛고속도로’ 이름을 늘 부르자.

< 토/막/새/김 >
한자어에는 장단음 구분의 기준이 있다. 한자의 평상거입(平上去入) 사성(四聲)의 전통이 그것이다. 한자는 글자마다 정해진 성조(聲調)가 있다. 평상거입 중 하나인 것이다. 평평한 소리(平聲 평성), 평성보다 약간 높은 소리(上聲), 상성보다 더 높은 소리(去聲), 그리고 끝을 거두는 소리(入聲) 등이 그것이다.(국어국문학자료사전 인용)

우리는 중국에서 들여온 이 전통을 높낮이가 없는 우리말에서 장단음으로 응용했다. 즉 평성과 입성은 짧게, 상성과 거성은 길게 소리 내는 것이다. 광(光)은 평성, 광(廣)은 상성이니 장단음이 쉽게 구분되지 않는가? 웬만한 한자사전에는 다 사성표시가 있다. 혹 없다면 좋은 사전으로서의 자격 미비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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