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비판기사 쓰면 후원회원 떨어진다고?
노무현 비판기사 쓰면 후원회원 떨어진다고?
[뉴스 파파라치②] 정파 저널리즘의 함정,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만든 두 명의 박근혜

뉴스과잉시대입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를 소화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넘쳐나는 뉴스에 체하지 않고 뉴스를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뉴스 읽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 파파라치는 전체 6부, 총 25회로 구성됩니다. 1부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편에서 소개할 4개의 글에서는 뉴스가 신뢰를 상실한 시대를 진단합니다. 

“자네, 한겨레21 읽지마. 너무 편향적이야”

대학을 다니던 시절 일이 있어 한 교수의 사무실을 찾은 적이 있다. 내 손에는 읽다 만 ‘한겨레21’이 들려있었다. 그걸 본 교수가 나에게 “자네, 한겨레21 읽나?”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자 교수는 “그거 읽지 마, 너무 편향적이야”라고 말했다. 교수의 책상 위에는 조선일보가 펼쳐져 있었다.

정치적인 편향성과 편파성은 언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매우 큰 요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2014년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결과, 신문사의 정치적 편파성에 대해 71.5%의 응답자가 ‘편파적이다’고 답했고 방송사의 정치적 편파성에 대해 66.7%의 응답자가 ‘편파적이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어떤 언론을 좋아하냐’는 질문은 ‘어떤 정당을 지지하냐’와 비슷한 표현이다. 서울의 한 대학교 생활도서관은 몇몇 학생들로부터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왜 시사IN, 경향만 구독하고 조선일보는 구독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진보지(紙)’ ‘보수지’를 넘어 ‘여당지’ ‘야당지’라는 말이 통용된다. 

   
▲ 미디어오늘 2012년 12월 12일자 기사.
 

조선·중앙·동아와 종편 방송사 등 보수언론의 지지자들은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를 신뢰하지 않는다. 반대로 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의 지지자들은 조선·중앙·동아를 신뢰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반대편에 의해 X선일보라 불리고, 한겨레는 반대편에 의해 ‘한걸레’라 불린다. 

각자의 진영을 배신하면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보도를 했던 TV조선의 간판 프로그램 <장성민의 시사탱크>는 한 때 보수진영 일각의 강한 비토를 받은 적이 있다. 2012년 9월 7일 ‘추적, 남한 종북 계보’편에서 진행자 장성민은 김성욱 자유연합대표와 토론하면서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연방제는 아무런 문제(위험)가 없다” “남북교류협력으로 인하여, 북한 주민들이 변해 탈북자가 많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북한에 아사자가 300만 명이라는 김 대표의 말에 팩트를 대라고 반박했다.

김 대표가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방송 후 TV조선의 시청자들은 장성민을 비난했다. 우익단체들은 성명을 냈다. “장성민씨는 전 민주당 의원이었으며, 현재 김대중 재단의 이사로 있는 인물이다. 대북 퍼주기 종북 정책을 실행하던 주인공인 것이다. 이런 인물에게 TV조선의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긴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진보언론도 자유롭지 않다. 한겨레는 지난해 2010년 지방선거 국면에서 “DJ 유훈통치와 ‘놈현’관 장사를 넘어라”는 기사 때문에 절독운동에 직면했다. 한겨레는 소설가 서해성씨가 천정배 당시 민주당 의원과 대담 중에 선거 때 노무현 정부 인사들이 ‘관 장사’를 그만해야한다고 말한 것을 제목으로 뽑았다.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에 반발해 절독을 선언했고 한겨레는 결국 사과문을 실었다. 

한 진보성향 언론사 기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친노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기사를 실으면 돈을 내는 후원회원이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든다. 그러다 노무현과 친노 정치인들에게 긍정적인 기사를 쓰면 후원회원들이 돌아온다”고 토로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민주화 이후 특정 후보를 대변하는 정파적 보도 비율을 늘려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18대 대선보도가 한창이던 2012년 11월 30일과 12월 4일 대선 관련 기사 199건을 분석한 결과 조선일보는 박근혜 후보가 34.2%의 수혜율을 기록한 반면, 한겨레는 문재인 후보가 31.6%의 수혜율을 나타냈다. 

관련기사 : <조선일보·한겨레, 20년간 보수·진보 정파보도 늘었다>

조선일보는 ‘인간 박근혜’ 한겨레는 ‘정치인 박근혜’

대한민국 보수의 아이콘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시각을 통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요한 연설을 하거나 기자회견을 한 뒤, 두 신문의 1면을 보면 두 신문은 제목부터 큰 차이를 보인다.

2015년 10월 28일 주요 신문의 1면 헤드라인은 박 대통령의 전날(10월 27일) 국회 예산안 연설이 차지했다. 박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조선일보의 1면 제목은 <역사 미화, 저부터 좌시 않겠다>였다. 국정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박 대통령의 반박을 제목으로 뽑았다.

반면 한겨레의 같은 날 1면 헤드라인은 <극우단체 불러놓고 “국론 통합” 외친 박대통령>이었다. 한겨레는 “교육계, 학계의 거센 반발이나 야당의 강력한 반대, 높아지는 부정적 여론에 개의치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선일보가 박 대통령의 반론을 중점에 뒀지만 한겨레는 박 대통령의 고집에 초점을 맞췄다.

   
▲ 10월 28일자 조선일보 1면(위쪽)과 한겨레 1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박근혜 의원에 대한 시선은 완전히 엇갈렸다. 단순히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보도한다는 뜻이 아니다. 접근법 자체가 다르다.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연구팀이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박근혜 관련 기사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차이가 나는 대목은 ‘인간적 흥미’를 강조하는 기사의 비율이었다.

조선일보에는 전체 기사 207건 중 박근혜 의원의 ‘인간적 흥미’를 강조하는 부각시키는 기사가 53건으로 25.6%를 차지한 반면 한겨레는 160건 중 12건인 7.5%에 불과했다. 조선일보는 박 의원의 일상적인 근황, 공식적 일정 중심의 에피소드나, 홈페이지 내용 등을 기사화한 경우가 많았다, “하루 평균 4~5시간의 수면과 하루 평균 5~6개의 행사에 참석하는 고단한 일정이지만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보고서와 스크랩 자료를 읽었다” 해외순방 때 박근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는 보수언론의 보도가 이전부터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의원이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는 기사의 비중도 한겨레와 조선일보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겨레는 전체 기사 중 16건인 10%가 자질이 부족하다는 기사인데, 조선일보에는 관련 기사가 4건 1.9% 밖에 되지 않는다.   

같은 사건을 다룰 때도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기사의 야마(핵심)은 완전히 다르다. 2006년 9월 5일 박근혜가 대구를 방문했을 때 조선일보의 기사 제목은 <나라가 정상적인 게 없다>, 부제는 ‘박근혜 前대표 대구 방문…거침없는 정치발언’이었다. 박근혜 의원이 “비정상적인 상태인 국가를 정상화하고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는 내용이다.

반면 한겨레의 기사 제목은 <지방 의회도 박근혜 영향권?>, 부제는 ‘대구시의회 본회의 시간 갑작스런 변경 놓고 뒷말’이다. 박근혜 의원이 갑작스럽게 대구를 방문해 지방회의 시간이 바뀌었다는 점에 집중했다.

조선일보의 ‘복지포퓰리즘’ vs 한겨레의 ‘풀뿌리 민주주의’

사회적인 쟁점을 두고도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서로 다른 프레임을 형성한다. 지금도 논란이 되는 무상급식에 대한 조선과 한겨레의 시선을 살펴보자.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야권을 중심으로 무상급식 공약이 등장하고, 지방선거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주민투표에 붙이자고 주장하다 ‘셀프탄핵’ 당하는 일이 있었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박성희씨의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석사논문에 따르면 2010년 2월 2일부터 2011년 3월 2일까지 조선일보는 169건의 무상급식 관련 기사 혹은 칼럼을 실었는데, 이 중 27.2%에 달하는 46건이 무상급식은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내용의 기사였다. 

“포퓰리즘은 '정치적 선동가'가 등장하여 다수 국민의 정서에 영합하거나 그 감성을 자극하여 사익을 추구하고 공익을 파괴하는 정치 행태이다. 국정이 이렇게 인기 영합적으로 운영되면 법과 원칙은 무시되고 국가 이익은 훼손된다. 수도(首都) 분할, 혁신 도시 건설, '부자 감세(減稅)'란 용어, 무상(無償) 급식 주장 등이 전형적 포퓰리즘이다. 국민을 우민화(愚民化)하는 이러한 포퓰리즘이 무성하면 자유화 즉 자유민주주의는 서서히 실패하게 된다”(2010년 3월 8일자 조선일보 박세일 칼럼)

반면 한겨레는 가장 많은 유형의 기사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무상급식을 보는 기사다. 2010년 6.4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내건 야당이 이겼고 지역주민들이 연대해 무상급식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에 따라야한다는 시각이다. 전체 169건의 기사 중 42.6%인 72건이 ‘풀뿌리 민주주의’ 프레임에 따른 기사였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생활의제를 쟁점화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시민단체들이 연대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지렛대 구실을 할 것이다. (중략) 친환경 무상급식 운동이 성공해 생활정치가 뿌리내리는 정치·사회의 일대 혁신을 기대한다.”(2010년 3월 17일자 한겨레 사설)

이렇게 시각이 엇갈리다보니 논쟁이 되는 사안을 두고 보수언론이 ‘큰 건’을 터트리면, 진보언론이 이에 반격하거나 그 반대되는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국정원 대선개입이 한창이던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을 지휘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게 혼외자가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한겨레는 아이의 어머니라고 밝힌 임모씨의 편지를 공개했다. “제 아이는 채동욱 총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내용이다. 임모씨가 하필 편지를 한겨레에 보낸 이유는 한겨레가 조선일보의 반대진영에 서 있는 대표언론이라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파성을 유지하되 신뢰는 높여라 

‘한국의 정파 저널리즘이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은 한 가지 한계에 직면한다. 한국의 언론지형을 고려할 때 조선일보가 대표하는 보수언론과 한겨레가 대표하는 진보언론을 동급으로 취급하기는 어렵다. 보수신문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보수성향의 방송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학자 손석춘 건국대 교수는 미디어오늘 칼럼에서 “‘조중동’과 ‘한경’을 동일 선에 놓고 ‘정파주의 언론’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중립’적 양비론은 너무나 안일하다”고 밝혔다.

   
▲ TV조선이 지난 2011년 12월 1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의원의 출연 방송분에서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TV조선 화면 갈무리.
 

손석춘 교수는 또한 지난 5월 미디어오늘 컨퍼런스에서 “한국 언론의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로 볼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조중동의 성완종 리스트 물 타기 보도와 국정원 대선개입사건 축소·은폐 보도 등, 이것을 보수언론, 보수적인 보도라고 봐야할지 의문스럽다. 이런 보도태도를 보수라고 하면 조중동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보수언론은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권력화 됐고, 진보언론은 상대적으로 권력을 비판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 보수-진보로 구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언론은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한다. 권력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정파성과 영향력을 유지하되 ‘정파 언론’이라는 인식으로 언론의 신뢰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것을 막아야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에는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특종>은 기자인 주인공이 우연히 연쇄살인범과 관련된 희대의 특종을 보도해 스타가 되지만, 이것이 오보로 밝혀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이 <특종>에는 한겨레와 조선일보가 등장한다.

한겨레는 주인공 기자가 터트린 특종을 1면에 ‘받는’ 언론사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기사를 받아쓴 한겨레를 들고 만삭의 아내를 찾아가 자랑한다. <특종>은 언론의 행태를 런닝타임 내내 비판한 뒤 마지막으로 광화문에 있는 조선일보의 전광판을 비춘다.

이 영화 속에서 한겨레는 주인공이 ‘한겨레가 받아썼다’고 자랑할 정도로 어느 정도 신뢰를 갖춘 매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른 언론과 마찬가지로 오보를 받아썼다는 오명을 벗어나진 못한다. 진보언론으로서 열심히 성과를 보여준다 해도 언론의 전반적인 신뢰하락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조선일보는 잘못된 언론의 ‘끝판왕’으로 등장한다. 

   
▲ 영화 <특종 : 량첸 살인기>의 한 장면.
 

 
결국 중요한 건 저널리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저널리즘의 본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언론이 정파성을 갖는 게 큰 문제일까? 정파성이 가리고 있는 것은 ‘저널리즘의 가치’다. 정파 저널리즘의 온갖 폐해는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하거나 보수적 가치,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데서 발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원칙 없음이다. 의도적으로 사실을 누락하거나 축소하고, 왜곡하는 등 언론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채 특정 정치세력을 옹호하는 것이 ‘정파 저널리즘’이 언론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 원인이다. 그리고 이는 언론사의 자정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뉴스 수용자가 언론이 무엇을 누락하거나 숨기고 왜곡했는지 밝혀낼 눈을 가질 때만 해결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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