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성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는 2014년 6월10일자 중앙일보 칼럼(‘시간제 일자리 기업에 인센티브를’)에서 “통상임금 확대와 정년 60세 도입으로 인건비 부담이 대폭 증가한 데다 청년 고용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높다”며 “본래 일자리 형태란 기업의 필요에 맞게 시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근로자 요구대로 근로시간을 결정해야 한다면 기업 인력운용의 자율성을 박탈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칼럼에 50만원을 집행했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14년 10월22일자 조선일보 칼럼(‘행복한 일자리에 관한 두 여자 이야기’)에서 아이를 셋 낳고도 단축 근무로 경력단절을 피할 수 있었던 스웨덴 여성 마리아씨 사례와 두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된 한국의 미영씨 사례를 소개했다. 안상훈 교수는 “기업에서 새로 실시한 시간 선택제 일자리 사업으로 육아로 경력이 단절됐던 미영씨가 현업복귀에 성공했다”고 전했다. 미담처럼 보이지만 이 칼럼 또한 고용노동부가 50만원을 집행했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4년 12월9일자 동아일보 칼럼(‘일하는 문화 개혁과 시간선택제’)에서 “전일제만 가능할 때 시간제를 원하는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든 불행해진다”며 “공공부문에서 시간제 전환을 제대로 정착시키자”고 주장했다. 시간제 노동이란 이름으로 인건비를 최소화하고 불안정노동을 심화시키려는 ‘자본의 의도’에 대해선 묻지 않는 칼럼이었다. 이 칼럼 역시 고용노동부가 50만원을 집행했다. 

   
▲ 고용노동부가 홍보대행사를 통해 원고료를 지급한 것으로 확인된 주요신문사의 칼럼들.
 

소위 전문가그룹이 세금을 받고 정부정책여론을 특정방향으로 호도하는 주장을 ‘칼럼’ 형태로 생산해온 정황이 또 한 번 드러났다. 미디어오늘이 새정치민주연합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정애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2014년 고용노동부 실국별 턴키홍보내역’ 보고서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조선·중앙·동아일보 칼럼 외에도 여러 칼럼들이 고용노동부와 계약을 맺은 홍보대행사로부터 돈을 받고 생산 되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칼럼은 신문사가 기고자에게 원고료를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일보 2014년 6월26일자 김종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일자리인재센터장 칼럼(‘일 중심의 근로 문화 이제 바꾸자’), 매일경제 10월14일자 김태홍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 칼럼(‘시간선택제 일자리 성공하려면’), 한국경제 2015년 3월31일자 박성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칼럼(‘과기科技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해야’), 서울신문 3월31일자 오호영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 칼럼(‘시간선택제, 혁신사회로 가는 길’)도 고용노동부가 50만원씩 집행한 칼럼이다.

고용노동부는 쉬운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을 정당화하는데 전문가 칼럼을 이용했다. 2014년 3월10일자 한국경제 ‘시간선택제 해외 우수사례’ 기사 1100만원, 2014년 3월28일~4월4일 중앙일보 ‘시간선택제 정책효과홍보’ 기사 3100여만 원 등 정책 홍보성 기사를 발주하는 한편 전문가 기고를 동원해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들 다수의 쉬운 해고를 정당화하는 여론을 선동했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의 언론기고로 특정 여론을 유도하는 전략은 과거에도 있었다. 2010년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이종걸 당시 민주당 의원은 FTA국내대책반이 전문가들에게 FTA 찬성 언론기고를 쓰게 하고 건당 20만원의 원고료를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국경제, 매일경제, 서울경제,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에서 FTA를 찬성하는 칼럼이 쏟아졌다. 소위 전문가들의 명성과 권위를 돈 구입한 정부청탁 칼럼은 오늘날 장당 5만 원 수준으로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고용노동부와 턴키홍보계약을 맺은 인포마스터가 지난 4월 제출한 '상생의 노사문화 구축' 보고서에 등장하는 원고료 집행 영수증. 그러나 해당 영수증에 등장하는 오세천씨가 쓴 칼럼은 존재하지 않는다.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의원실 제공
 

정부는 언론과 전문가를 돈으로 매수했다. 이들이 정부 돈을 받고 정부정책을 비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현 상황을 두고 “정부정책을 국민이 불신할 수밖에 없는 극명한 사례”라고 지적한 뒤 “정부는 예산은 예산대로 낭비하면서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노사관계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한정애 의원은 “고용노동부의 예산집행과 여론조작에 관해 국정감사에서 따지고 감사원 감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홍보대행사 인포마스터가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상생의 노사문화 구축’ 2015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오세천씨에게 원고료 50만원을 지급한 영수증이 나오지만 실제 오세천씨가 쓴 칼럼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정애 의원실에 따르면 인포마스터 측은 “원고가 나가지 않았다”며 사실상 예산집행 오류를 인정했다. 정부부처의 턴키홍보 예산집행에 감사가 필요한 이유다.

언론과 전문가도 문제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칼럼은 신문사가 값을 지불하는 게 맞다. 칼럼을 사고파는 대상으로 삼은 언론사는 언론으로서 자격상실”이라고 지적한 뒤 “원고료의 출처도 확인하지 않고 칼럼을 썼을 리 없다”며 ‘관제칼럼’을 쓴 전문가들 역시 비판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문제가 반복돼도 지금은 윤리적 비판 외에 제도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다”며 “지금으로선 홍보비를 받은 기사나 칼럼엔 돈을 받았다고 명시하라고 요구하는 게 전부”라고 밝혔다. 

<관련기사=고용노동부 ‘턴키 홍보’ 발주 기사 및 금액 공개…여론 설득 자신 없는 정부와 영혼 없는 언론의 결탁><관련기사=보건복지부 등 정부부처 기사 거래 만연…세금 털어 언론보도 청부, 사실상 여론조작>

 

(기사에 오세천씨의 직책이 아무개 기업의 상무로 명시돼 있으나 동명이인인 것으로 확인돼 바로잡습니다. 9월24일 11시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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