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가 2015년 3월 ‘노동시장 개혁’ 시리즈 기사를 냈다. 3월10일자 <호봉에 기댄 기성세대‧양보 안하는 강성노조가 일자리 막아>, 3월11일자 <성과급‧임금피크 도입하면 취업자 수 17% 늘어난다> 3월13일자 <연공급→직무급 임금체계 바꿨더니 정규직 전환․신규채용 함께 늘었다> 등의 기사였다. 2015년 고용노동부 종합기획홍보(노동시장구조 개선분야) 용역계약을 따낸 홍보대행사 인포마스터가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3월 사업정산보고서’에 따르면 ‘매일경제 기획보도’ 명목으로 5500만원이 집행됐다. 정부정책을 소개하는 글이 정부 돈을 받고 버젓이 ‘기사’로 나온 것이다.

신문‧방송이 고용노동부의 돈을 받고 정부정책 홍보기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디어오늘이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2014년 상생의 노사문화 홍보 용역 최종결과 보고서’에는 정부의 홍보도구로 전락한 언론의 민낯이 있었다. 홍보대행사 메타커뮤니케이션즈가 작성한 이 문건은 고용노동부 제출용으로, 이 업체는 지난해 고용노동부로부터 턴키형식(캠페인‧광고‧협찬 등 홍보를 통으로 맡긴다는 뜻)으로 5억 원의 예산을 받아 언론사 등에 홍보비용을 집행했다.

해당 문건에 따르면 문화일보 2014년 11월20일자 <현대 오일뱅크‧신원 등 노사문화대상> 기사와 21일자 <무분규로 노사협력…“기업경쟁력 커져”> 기사의 추진예산은 1100만원이었다. 머니투데이 2014년 11월20일~11월24일 기획시리즈 <두 손 맞잡은 노사, 대중소 상생 이끈다>의 경우 총 4편의 기사에 1500만원이 집행된 것으로 나온다. 한국경제가 2014년 12월2일~12월4일 내보낸 <“노동양극화 풀려면 고용 유연성 높이고 대기업노조 과보호 깨야”>, <도요타, 비정규직으로 경기변화 탄력 대응…세계 1위 지키는 힘> 등 총 7건의 기사에는 2200만원이 집행된 것으로 나와 있다. 

   
▲ 고용노동부의 돈을 받고 생산된 것으로 드러난 주요 신문기사와 방송화면.
 

중앙일보 12월8일과 12월10일자 기사에는 추진예산으로 5500만원이 책정돼 있다. <정년 65세 일본, 호봉제 버리자 구조조정 줄었다>와 같은 기사가 개제됐다. 예산이 투여된 기사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 등 정부가 주도한 공무원 임금체계 개편을 홍보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두산인프라코어가 4년 연속 無노동쟁의로 금탑훈장을 받았다는 한국경제와 문화일보의 2014년 12월23일자 기사에 대해선 1650만원의 예산이 추진된 것으로 나온다.  

방송프로그램은 어떨까. 2014년 11월2일 방송된 채널A ‘일요다큐 기획’ 35회에선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3300만원을 집행한 것으로 나온다. 보고서에는 해당 다큐멘터리의 세부 시나리오가 첨부돼있다. 시나리오에는 “연공급적인 임금상승요인이 조기 퇴직을 하게 되는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전문가멘트와 “근속에 따라 동일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 간의 불합리한 임금격차를 유발하고 있다”는 내레이션도 나온다. 호봉제 폐지와 임금피크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들이다. 

tvN ‘곽승준의 쿨까당’ 2014년 12월21일자 방송에는 2200만원이 집행된 것으로 나온다. 보고서는 “tvN 드라마 ‘미생’과 연계해 임금체계 개편을 쉽게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진행자 곽승준씨가 “고용안정을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해 보이나”라고 질문하면 신재욱 에프엠어소시에이츠 대표가 임금피크제를 설명하고, 배우 정가은씨가 “임금체계 개편 안하면 어떻게 되나요”라고 물으면 신재욱 대표가 “청년 고용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답하는 식이었다.  

SBS ‘모닝와이드’ 2014년 12월31일자에서도 임금피크제가 등장한다. 홍보 예산은 1320만원이 소요된 것으로 나온다. ‘모닝와이드’는 조기퇴직한 중장년층이 아르바이트시장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고 소개한 뒤, 이 같은 사태를 피하려면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식의 전개를 보였다. 여기서 임금피크제‧성과급제‧직무급제가 소개되고 임금체계개편에 만족하는 사람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메타커뮤니케이션즈는 이 같은 ‘언론프로그램’으로 2014년 1억8253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와 있다.

메타커뮤니케이션즈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고용노동부의 연도별 홍보대행내역에 따르면 2014년의 경우 메타커뮤니케이션즈를 포함해 인포마스터, 이지스커뮤니케이션, 레인보우커뮤니케이션, 굿미디어 등 10여 곳의 홍보대행사가 턴키방식으로 홍보용역을 맡았다. 계약금액은 모두 61억8700만원이었다. 대형홍보기획사의 한 홍보담당자는 “정부정책홍보를 민관기관에 맡기기 시작한 시기는 10년도 더 됐다. 공무원들 입장에선 전문적 홍보를 위해 턴키를 선호한다”고 전한 뒤 “홍보대행사 중에는 정부정책만 주로 맡으며 세종시 지사까지 만든 곳도 있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의 홍보대행용역 계약금액은 2010년 49억3000만원, 2011년 67억5000만원, 2012년 64억8950만원, 2013년 53억3026만원이었다. 턴키홍보 형식으로 정부정책 홍보 기사가 등장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점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15년 현재 계약금액은 51억960만원이다. 이 같은 턴키홍보용역은 고용노동부 외에도 복지부 등 정부부처별로 일반화 된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하면 한 해 수 백 억 원의 세금이 홍보대행사에 정책홍보명목으로 들어가고, 이 중 상당수의 돈이 언론사로 흘러들어간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 고용노동부 실국별 통합 및 턴키홍보 내역 중 일부. '상생의 노사문화'를 홍보하는 매체에 지급한 홍보금액이 나온다. 단위는 천원이다.
 

고용노동부의 ‘실국별 통합 및 턴키홍보내역’(2014년~2015년 3월31일기준) 문건에 따르면 2014년 4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동아일보 ‘일가양득’ 캠페인 관련 기사에는 2억3550만원, 2014년 12월11일자 동아일보 장년고용포럼 기사에는 2640만원이 집행된 것으로 나온다. MBC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2014년11월21일자 방송에는 2200만원의 홍보예산이 집행 된 것으로 나온다. 이날 방송에선 배우 김용건‧김광규 등이 부산으로 힐링 여행을 떠나 하루를 보내며 마지막에 김용건이 고용노동부 캐치프레이즈 ‘일가양득’을 언급하며 홍보가 이뤄졌다. 

정부는 정책홍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광고가 아닌 기사 형태로 홍보에 나서는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기사에는 오로지 사실에 근거한 기자의 가치판단이 개입해야 하지만 정부자본이 개입한 경우 사실관계 파악이나 가치판단이 공정하게 이뤄지기 힘들 수밖에 없다. ‘받은 만큼’ 보도해야하기 때문이다. 보수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정부부처 자료만 그대로 받아쓰면 광고기사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껏 주요 신문의 반노동‧친기업 성향의 보도가 기업의 광고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편향보도의 한 축이 정부 주도였다는 사실은 시사점이 크다. 국민의 세금으로 비정규직 양산과 파업불가 프레임을 정당화하는 주장이 ‘객관’과 ‘불편부당성’을 가장해 언론사 기사로 등장하고, 이를 언론사의 사실에 근거한 논조로 믿게 되는 대중은 자신의 노동 불안을 ‘내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렇게 대중은 다시 세금을 내고, 다시 그 세금으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기사가 양산되는 구조가 오늘날 한국의 부조리한 언론생태계라 할 수 있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부정책에는 다양한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도가 기사에 담길 경우 정부정책에 대해 시민들이 다양한 의견을 가질 기회가 박탈될 뿐만 아니라 국민을 속이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우려했다. 김서중 교수는 “정부도 돈을 써서 정책홍보를 할 수 있지만 광고나 보도자료 같은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식 대신 비공개적인 광고형 기사로 정부정책을 찬성하게 만드는 것은 상식적인 홍보라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정책에 지지를 얻을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런 방식을 구사하는 것”이라며 “오늘의 모습은 목표달성을 위해 어떤 수단이든 합법화되는 식으로 사고가 전도되고 있다는 징조”라고 우려했다. 

정부부처는 홍보대행사를 통해 언론사에 돈을 내고, 언론사는 정부부처가 원하는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 정부가 언론을 매수해 공론의 방향을 유도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의 턴키홍보사례는 지난 8월25일자 한겨레를 통해 드러났다. 하지만 사안에 비해 이슈화가 안 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가 정부부처의 자본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3년 발표한 ‘12회 언론인의식조사’에 따르면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요인 1~3순위까지 응답률을 합산한 결과 광고주가 64.8%로 1위였다. 뒤이어 정부나 정치권력이 56.4%로 뒤를 이었다. 고용노동부의 턴키홍보는 정치권력을 가진 광고자본의 등장으로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8월25일 해명자료를 내고 “국민 생활과 밀접하거나 관심이 높은 정책 현안에 대하여 국민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하여 홍보기획사를 통하여 언론사의 취재 보도를 간접 지원했다”며 사실상 기사 발주를 인정했다. 그러나 “언론사에서는 자주적인 편집권과 취재활동으로 기사를 게재한 것이고, 고용부가 기사의 방향과 내용에 개입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가 고용노동부에게 유리한 기사였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호봉제 등 임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국민들이 잘 이해를 못하고 있어 기획사에 홍보대행을 부탁하면 기획사가 언론사를 추천하고 기자들이 취재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정부입장을 써달라고 한 적은 없다. 기사는 기자가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보수적인 곳은 보수적으로, 진보적인 곳은 진보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전하며 “우리 입장에선 이슈가 국민에게 잘 전달될 수 있게끔 간접지원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해당사자간 갈등이 첨예한 노동 분야에서 정부 부처가 설득이나 조정 절차를 무시하고 기업 등 한쪽에 치우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국민 혈세를 집행해왔다”고 지적하며 “국민들이 어떻게 정부정책과 언론보도를 믿을 수 있겠나”라고 비판했다. 한정애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용노동부의 ‘여론조작’에 대해 강하게 비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991년 9월5일을 전후로 한국에선 “6․29선언 후 처음으로 전국에 노사분규가 사라졌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언론은 “9월 3일 이후 진행 중이거나 신규로 발생한 분규가 한 건도 없어 1526일 만에 무분규일을 기록했다”는 노동부 발표를 그대로 보도했다. 하지만 오보였다. 노동부가 무분규일이라고 밝힌 3일만 해도 숭실대에서 노조원 70여명이 단체교섭 결렬로 업무거부에 들어갔다. 경남 거제에선 삼성중공업 해양사업본부, 서울 구로공단에선 백산전자 노동자들이 농성과 작업거부에 나섰다. 

기자들은 노동부의 믿기 힘든 보도 자료를 그대로 인용했다. 노동운동을 탄압하던 정부의 국면전환 노림수에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군인출신이 대통령이던 시절, 기자들은 대놓고 촌지를 받았고, 원하는 기사를 써줬다. 지금 기자들은 대놓고 촌지를 받지는 않지만, 회사로 들어오는 홍보비용을 받고 노동부가 원하는 기사를 써준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보수중앙일간지의 중견기자는 “과거에는 정부부처가 바로 언론사와 접촉해 기사 쓰고 광고를 받았지만 지금은 광고가 나가면 다른 매체에서 광고를 요구하기 때문에 양쪽 다 협찬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국회에서 기자들의 영업행위를 금지시키는 법안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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