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은 멋진 복수를 했다. 그 복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복면가왕'을 무시한 사람들에게 이뤄진다. 복수의 출발은 어쩌면 배신인지도 모른다. 대개 '복면가왕'은 저게 무슨 짓(?)일까 라는 마음을 갖고 보게 된다. 괴상하기도 하다.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사람은 가면을 뒤집어 쓰고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사람이 아니라면 로봇이나 기계이어야 하는데 몸짓은 흔히 보아온 가수들의 몸집과 달라 보이지 않으므로 사람인듯 싶다. 다만 그 가면이 보통 복면이 아니라 화려하거나 개성적이라는 특색이 있어 주의를 끌 뿐이다. 그 가면은 표정이 없다. 노래를 부르는 이가 어떤 입모양과 시선 그리고 감정근육을 볼 수 없다. 또렷하게 들리는 것은 그가 부르는 노래 뿐이다. 더구나 대부분 노래를 잘 부르기 때문에 노래에 집중하기 쉽다. 그런 노래를 듣다보면 그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승부 대결을 벌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궁금증을 더하게 만든다. 잘 부른 복면 가수일수록 더 자주 화면에 등장하기 때문에 궁금함은 더할수 밖에 없다.

일단 이런 점에서 '복면가왕'은 많은 시청자들의 주의환기를 충분히 할 수 있는 매력 포인트를 지니고 있다. 애초에 그 사회적 의미와 가치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가 좋은 입소문을 형성하기도 했다. 이런 덕분인지 대부분의 매체에서 호평을 쏟아냈다. 그도그럴것이 복면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재발견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기존의 복면은 얼굴을 가리면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은폐하는 도구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항상 마주대하는 이미지 예컨대, 얼굴은 이미 왜곡되거나 편향되어 있는 사고를 규정하고 강요하는 면이 있다. '복면 가왕'은 이런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적어도 노래를 부르는 점에서는 말이다. 가수는 가수만이 부른다는 생각이나 배우는 연기만 한다고 생각에 저항하는 듯 싶다. 그런 치우친 사고를 지니고 있지 않더라도, 상상을 하지 못한다. 더구나 가수라해도 온전히 그 목소리만 들어본 적은 드물거나 먼저 목소리로 사람을 인식하는 것도 흔하지 않다. 대개 얼굴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그러한 얼굴에 대한 인식 뒤에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면가왕'은 그 사람의 얼굴을 알거나 알지 않거나 혹은 좋아하거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노래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 MBC ‘복면가면’
 

묘미는 그 사람이 경연에서 떨어지는 상황이다. 탈락된 때 복면 속의 주인공 얼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얼굴이 드러날 때 재능의 재발견이라는 면에서 사회적 가치를 확인할 수도 있다. 어떤 편견이나 왜곡된 인식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름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노래와는 관계 없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록 더욱 재발견에 따른 신선한 자극과 화제성이 강해지고는 한다.

그러나 점점 '복면가왕'은 그 좋은 평가의 지향점과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선 연예인 알아맞추기 게임이 되고 있다. 연예인들 가운데 노래를 잘 부르는 이들을 추리하는 과정이 중심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심사위원들이 알거나 연관이 있는 연예인들을 추리하는 과정이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펼쳐지는 일이 빈번하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추리과정의 관찰자가 되면서 재미를 느낀다. 연예인 재능 홍보의 마당이 되고 있다. 그것을 위해 모진 미션을 감내하고 있는 이중 고통이 있다. 더구나 그 연예인들은 알만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때로는 그들 관계를 배반하면서 의외의 재미를 주려고 한다. 그런데 알만한 사람들의 범주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선택 대상이 되지 못한다.

   
▲ MBC ‘복면가면’ 한 장면
 

그들만의 세계라는 점에서 볼 때 잠재적 가능성에 비해 좀 결핍이 느껴지는 것은 '냉장고를 부탁해'가 연예인들의 잔치로 끝나고 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다. 일반 시청자의 냉장고를 부탁할 수도 있는 데 말이다. 아마 공영 방송이라면 시민들의 냉장고를 통해 많은 내용을 사회적 공적 역할 차원에서 담아낼 수 있겠다. 요컨대, '복면가왕'은 단적으로 말해 연예인들이 얼굴을 가리고 노래 경연과정에서 그들을 알아맞추기 게임이 이뤄지는 셈이다. 이는 자칫 복면에 관한 사회적 가치를 논할 명분을 앗아간다. 또한 그들이 지속적으로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시청율을 올리게 만들고 사라지게 한다. 이런 재능도 있으니 깜짝 놀라게 만드는 효과에만 의존한다. 기계적인 판단에 따라서 승패가 갈리고 그에 대한 심도있는 평가나 재무대는 없다.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일회용 소모품처럼 보인다. 다만 그 얼굴을 노출 했을 때 눈길을 끌고 화제가 되는 순간만 화려할 뿐이다. 그의 스토리는 그때만 반짝 주목을 받는다. 그뒤는 암전이다. 나가수의 경우에는 반응이 좋았던 이들이 재발견되고, 지속성을 가지면서 활동을 할 수 있었는데 '복면가왕'은 이런 점조차 없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나가수'와 '복면가왕'의 결합이 필요해 보인다. '복면가왕'에서 새롭게 재발견한 이들이 나가수처럼 경연 무대를 갖는 것도 필요한 것이다. 다만 경연의 방식이 꼭 승패를 가리는 방식으로 탈락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어야 하는 지는 여전히 재고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복면가왕'패밀리를 형성하고 계속 그들이 새로운 음악적 실험과 시도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애초에 사회적 가치를 생각할 때, '복면가왕'의 참여자들이 꼭 연예인들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칫 연예인들의 홍보의 장이 되고 출연자들에게는 이 때문에 이중고를 낳가도 한다.  또한 꼭 알만한 연예인들이라는 좁은 범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다. 참여자의 폭을 넓히고 에피소드를 가진 참여자를 사전에 공개하고 그들을 추리해가는 방식도 좋을 수 있다. 그렇게 재발견된 이들이 지속적으로 재능과 역량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면이 갖고 있는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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