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지배구조 문제로 또 시끄럽다. 상속 다툼이야 동서고금 늘 있지만 재벌이라는 현상만큼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물론 재벌의 원조는 일본이지만 패전후 재벌 해체를 당하다보니 그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은 역시나 ‘재벌(chaebol)’의 나라 한국이다.

재벌하면 여러 계열사들로 문어발처럼 확장하는 한국적 풍경이 떠오른다. 자본주의 종주국들에도 대마불사의 대기업은 많지만 시내 간판이 온통 재벌의 로고로 덮인 풍경엔 모두 놀란다. 왜 우리 재벌과 같은 문어발 기업 확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IBM,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이나 구글 정도면 수많은 계열사로 분화가 이루어질 법도 한데 그룹이 되지는 않았다. 자회사는 가끔 보이지만 대개 지사이거나 아일랜드 법인 등 역외 절세 목적이지, 기업 그 자체의 가버넌스 전략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그들도 문어발 ‘사업’ 확장은 한다. 어찌 보면 돈이 되는 일은 다 하려 드는 기업가 정신은 재벌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굳이 핵심 역량이 아닌 분야에서 애먼 사업을 벌이지는 않는다. 무분별한 사업 확장이나 일가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꼼수를 부리는 일이 쿨하지 않다 생각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제품과 서비스를 키우는 성장 방식이 영속기업을 유지하는데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만 해도 합병을 하면 했지 한 회사가 다른 멀쩡한 회사의 주식을 약간씩 소유하는 일, 게다가 서로 교차소유하는 일은 거의 없다.

   
▲ 롯데그룹은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한다고 비판받고 있다. (왼쪽부터)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장남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 노컷뉴스
 

순환출자든 상호출자든 엄연히 다른 회사가 서로 주식을 갖는 일이란 매우 신기한 지배구조 문화를 낳는다. 그 회사의 실질적 주인이라면서도 그 회사의 주식은 별로 없고 법률적 의사 결정권은 다른 회사들에 위임된다. 하지만 이 회사들도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또 엮여 있기에 이쪽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밧줄로 엮인 돛단배 들이 항구를 차지하고 있는 그림과도 같다. 적벽대전에서 조조는 배들을 서로 묶어 덜 흔들리게 했다. 여기에 화공을 맞았으니 대패의 원인이었다. 고만고만한 그룹사끼리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모습, 바다 건너에서 보면 신기한 광경이다.

순환출자 주식은 시장에 유통되지를 않는다. 꼭 쥐고 놓지 않는 것이 전제다. 그리고 그렇게 끼리끼리 의결권을 행사하니 수 퍼센트의 지분으로도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주주총회도 이사회도 형식적이 된다.

주식회사란 모름지기 주주가 주인. 주주의 대표인 이사회가 최고경영자를 선임하고 감독하는 구조가 상식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주식회사에는 총수가 먼저 있고 이사들을 차례로 임명한다. 무언가 거꾸로 되어 있지만 너무 친근하여 의아하지도 않다. 사외이사 등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격차를 줄여 보려 하지만 거수기 교수님들이 대다수다.

순환출자(cross holding 또는 circular ownership)도 나름의 책략이다. 적대적 매수를 막거나 기업간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것. 하지만 이 강화가 지나치면 재벌 사회를 만든다.

한 바퀴만 ‘순환’하고 나면 실제로 돈이 없는데도 장부에는 기록된다. 가공 자본이다. 자본충실의 원칙이라는 상법의 대원칙과도 어긋난다. 좁은 시장에 기업들이 서로 묶여 있으니 짬짜미와 밀어주기가 없을 리가 없다. 독일, 일본 등 다른 나라에도 이 순환출자방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처럼 알차게 활용되는 곳은 드물다.

절박한 대변화의 시대, 자본주의를 잉태한 대항해시대의 정신 그대로 미지의 대양을 향해 출항하고 싶어도, 서로 묶여 엉켜 있는 돛단배만이 부두를 차지하고 있다. 이 배들에는 자리도 없다. 자리가 모자라다 보니 차별만이 벌어진다.

어린 신입만 뽑고 싶어 하는 연령차별, 육아 등을 핑계로 여성차별,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해 다르게 처우하는 신분차별까지 포괄적인 전근대적 차별이 이 출항을 멈춘 항구에 가득하다. 준비를 마친 탐험가들도 배를 못 잡아타고 있다.

끼리끼리 엮이고 엮여 잠자코 침묵하는 우호 지분이 지배하고 그 세력이 넓어진다. 이는 결국 없는 돈으로 표를 사는 행위다. 자본주의라는 ‘1주1표’의 의결 시스템이 무너진다.

경영권을 지키고 싶은 심정도 이해는 간다. 구글과 페이스북도 1주당 10표를 달라는 식의 차등의결권을 걸고 상장했다. 조건을 명시하니 차라리 투명하다. 범선을 만들 테니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비전으로 표를 사는 것이다. 어쨌거나 없는 돈으로 너도나도 표를 사는 한국기업의 지배구조 실태는 세계 기준에서 아무래도 걱정스러운 것이다.

한국의 자칭 보수 진영이 이 걱정을 반기업 정서라며 질타하는 것이야 말로 반시장적이다. 부자(父子)가 함께 모험에 나선들, 삼대를 이은 노포(老鋪)를 키워 대기업을 만든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절차가 투명하다면 말이다. 문제는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항구가 꼼수로 엮인 돛단배로 가득 차 부두 마비 상태라는 점이다. 어디서 불화살이라도 날아오면 어쩌지? 우리 사회의 답답함과 불안은 그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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