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숫자뽕이라는 문화현상이 있다. 이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선호하면 옳은 것이며 정의로운 존재가 되는 현상을 말한다. 반대로 지지하는 숫자가 적으면 옳은 것도 아니며 가치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숫자가 달라붙어 있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자신의 선택이 많은 사람들 속에 있다는 생각에 쾌감을 느낀다. 역시 자신의 선택은 최고이며,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뿌듯함에 후속 상품을 계속 소비한다. 이러한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태도에서 대해서는 매우 극렬한 반응을 집단적이고 발산한다. 집단적 규모는 강력한 영향력이 되어 권력자가 됨에도 오히려 약자인 것처럼 다른 이들을 오히려 못된 강자로 만들어 버린다.

문화산업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은 쉽게 목격된다. 수만 명이 동원되는 콘서트나 도서의 백만 권 판매, 천만 명이라는 숫자가 붙는 영화 관객동원이 대표적이다. 많은 숫자를 지닌 콘텐츠일수록 대세를 넘어 정의가 된다. 이러한 숫자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의 마케팅은 교묘한 상술의 경계를 넘나들기 쉽고 팬들은 여기에 휘둘린다. 무엇보다 그것은 문화적 황폐화와 밀접하다.

지난 3일 SM은 엑소의 정규 2집 앨범이 100만장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각종 언론매체는 이런 내용을 즉각적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SM의 홍보자료를 그대로 담은 듯 어디에도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언론보도를 찾을 수 없었다. 2013년 정규 1집이 7개월 만에 100만장 돌파에 이어 이번에는 2개월 만에 돌파했기 때문에 하나같이 '대단하다, 경이적인 일'이라는 맥락에서 이 같은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특히 음원으로 음악 시장의 주도권이 넘어가고 음반 판매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백만 장 돌파는 엄청난 사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2013년 정규 1집의 100만 돌파 때는 단일 앨범으로 100만장을 돌파했던 과거 10여 년 전 SG워너비 등과 비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같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엑소의 앨범은 한국판과 중국판이 나뉘어져 있고, 여기에 리패키지 앨범 등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즉 이 모든 앨범을 포괄해서 백만 장을 판매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단일 앨범을 구매하는 경우 대개 1인이 한 장을 구매하기 때문에 100만장 돌파는 백만 명이 구입했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하지만 엑소의 경우에는 한 사람이 세 개의 앨범을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 얼마든지 비판이 가능하다. 우선 열악한 음원 시장에서 이런 정도의 판매고를 보이는 것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인기를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 비등하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백만이라는 숫자가 한국에서 활용되는 마케팅 구조이다. 사실 이 같은 100만장 돌파에 대해서 옹호하는 의견이 아니라면 팬들의 집단 성토의 대상이 되기 쉽다. 질시의 감정으로 괜히 흠집을 내거나 노이즈를  일으켜 주목을 받으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팬들의 성원과 지지가 있는 상황에서 ‘거짓, 허위’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진정성이 어떻게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이용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하나의 정규 앨범을 여러 개로 만드는 분산개별화 즉, 스핀오프를 시키는 행위는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통상 비도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왜냐하면 음악자체보다는 수익이 더 목적인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똑같은 곡을 중국어(일어), 한국어 판으로 만들고 여기에 한 두곡 섞거나 다르게 리메이크해 다른 패키지 앨범을 만들어 파는 것은 지나친 상업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이 가능하다. 팬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을 사기 위해 스스로 나선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팬들이 강제적으로 구매했다거나 그들의 선택이 가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수익을 위해 대형기획사가 지나치게 우려먹는 식의 상품개발을 하는 것도 그들의 자유이다. 이미 구매하는 이들도 이를 사전에 아는 것이라면 비판의 여지가 줄어드는 듯싶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면 그뿐 아닌가.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선 엑소의 정규 2집은 백만 장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백만이라는 단어는 숫자뽕을 통한 지배력 강화용이다. 보통 '집'의 구매를 뜻하는 '장(張)'이라는 말은 하나의 개별 상품과 한 개인의 소비를 의미하고 하고 있는 단어이기에 긍정적인 평가의 기준으로 사용되어왔다. 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백만 장이라는 단어가 음악 시장 자체를 지배하는 도구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단지 대세의 차원을 뛰어넘어 선과 정의를 뜻하게 되며 다른 가수들의 위에 존재하는 이들로 만들어 버린다. 무엇보다 각종 음악 매체를 장악하고 다양한 음악이 매체를 통해 수용자들에게 접촉될 기회를 박탈하고 만다.

   
 
 

물론 엑소가 인기를 끄는 것은 다른 가수들에게서 볼 수 없는 측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매력적인 요소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대단한 테크닉으로 그러한 점은 분명 차별성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의 동학으로 움직인다. 엑소가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많은 자본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기획ㅡ선발ㅡ훈련ㅡ제작ㅡ출시ㅡ프로모션ㅡ마케팅에 많은 돈을 투입했고 이것은 웬만한 곳에서는 할 수가 없는 프로젝트다. 즉, 막대한 자본 투여의 결과물인 것이다. 무엇보다 많은 돈을 투입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뽑아내야 한다. 단지 좋은 노래만 만든다고 지배적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세몰이를 극단화해야 하고 많은 매체나 공간에 그들이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언론플레이가 필요하다. 이때 단골로 애용된 것이 바로 백만 장 판매 같은 단어이다. 우리나라에는 숫자뽕이 있으니 말이다. 백만 장이라는 단어는 단지 그들이 대세이자 우월자라는 것을 증명해 출연료나 앨범 판매고를 높이는 데만 사용되지 않는다. 그룹 엑소 자체와는 관계없는 것의 가치를 높여주는 데 사용된다. 바로 SM의 주식가격이다. 백만 장 판매라는 단어는 SM의 주식 가치를 올려주고, 그 주식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이들에게 수익을 올려준다. 앨범의 판매는 현실에서 고정되어 있다. 그것을 백만으로 표기하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따라 이득이 좌우되는 이들을 위해 프레임이 형성될 뿐이다. 더구나 그러한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엑소의 팬들이 자발적으로 알아서 융단 폭격을 가할테고, 결국 비판은커녕 찍소리도 못할 것이니 말이다. 그런 사이 다양한 음악 창작과 순환의 토대가 붕괴되는 것은 안중에 없어도 된다. 문화적 취향이 남다른 사람이라면 쉽게 대세 속에 쏠림 현상에 휩쓸리는 문화적 기호의 획일성과 편중성을 경계해야 한다. 중화권의 등장은 이런 경계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자본의 수익을 최대화하는 논리를 합리화 시켜주고 있지만, 음악적 다양성에 대한 원칙은 흔들릴 수 없다.

흔히, 자발적으로 특정 누군가를 지지해주는 것은 그것 자체로 끝난다고 여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고 지지해주는 것이 선을 실현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인식이 오히려 악의 온상지가 될 수 있다. 개인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분투와 사회적인 결과는 얼마든지 배치될 수 있으며, 그러한 역할을 얼마든지 자본의 동학으로 이용하는 이들은 포진하기 마련이다. 자본에 자본의 자본을 위한 음악은 필연적으로 언제든 팬들마저 그 과정에 이용하고 음악도 도구화하는 악순환에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 태도에 익숙하면,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것이 환상이었음을 알아도 그 자본의 동학이 새로운 희생양을 활용하고 있음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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