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별로 없다. 세월호 1년이 다가오면서 유가족의 상처가 깊어 가는데, 이 정부의 뻔뻔함을 목도하고 할 말을 잊는다. 오열하는 유가족들에게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린 이 정부는, 세월호 인양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저울질하며 눈치를 보고 있다. 16일 추모집회는 경찰 차벽으로 가로막겠다며, ‘국민안전다짐대회’라는 맞불 관변집회를 열겠단다. 박근혜는 그날 외국 순방을 떠난다니, 국민의 아픈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뻔뻔함이다.    

성완종 사건을 보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썩은 정부다. 게다가 돈을 받은 당사자들은 일사불란하게 거짓말을 한다. 야당을 끌어들여 적당히 물타기 하면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속셈이 벌써 보인다. 어쩌면 이렇게 철면피일 수 있는가. 이 모든 거짓말의 몸통은 박근혜다. 언론은 “성역없이 수사하라”는 그의 말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그가 성완종 메모를 ‘해괴한 소문’으로 규정했다는 점은 아무도 전하지 않았다. 면피용 수사를 하라고 가이드라인을 정해 준 거나 다름없는데, 국민들은 이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주먹질을 해 댄 그들은 성완종 메모로 드러난 썩어빠진 거짓말쟁이들과 결국 같은 사람들 아닌가. 돈 받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자들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소중히 여겨 달라고 호소하는 건 애초부터 지나친 꿈이 아니었을까 싶다. 좌절이 되풀이되면 우울증이 생긴다. 세월호 유가족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우울증에 걸릴 판이다. 블루 오션…. 우울의 바다.

   
 
 

슬픔에 할 말을 잊은 요즘, 봄은 왜 이리 아름다운지…. 지난 한주 내내 이 산천은 꽃대궐을 이뤘다. 자연은 이토록 아름다운데 인간의 슬픔은 왜 끝이 없는지…. 시를 노래하는 가수 박경하의 음반을 꺼내 듣는다. 백창우가 시를 쓰고 곡을 붙인 <꽃뫼>.

아가, 이제 눈을 뜨렴 햇살 고운 아침이구나
오랜만에 하늘 푸른 아침이구나
아가, 고운 옷 갈아입고 집을 나서자꾸나
열두 구비 고개 넘어 꽃뫼 찾아 가자꾸나

어젯밤 꿈엔 함박눈이 무척이나 많이 내리더구나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는지

아가, 이제 잠을 깨렴 활짝 개인 아침이구나
오랜만에 햇볕 따스한 아침이구나

   
 
 

 

박경하 <꽃뫼> (백창우 시/곡)                           
https://youtu.be/qtF-p9aNTfg

 

 

 

박경하의 따스한 노래가 오히려 가슴 시리다. 어제 오늘은 비가 내려서 벚꽃이 지기 시작한다. 부질없는 말을 뱉기 싫은 요즘, 음악이 있어서 숨을 쉴 수 있다. 슬픔이 슬픔을 위로하기에 이 우울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터>를 듣는다. 스타바트 마터(Stabat Mater)는 라틴말로 ‘어머니는 서 계시고’란 뜻이다. 예수는 가시 면류관을 쓴 채 피 흘리며 십자가에 매달렸다.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탄식하는 어머니의 마음, 날카로운 칼이 뚫고 지나갔네.
존귀한 어머니 애통해 하실 때 함께 울지 않을 사람 누구 있으리?
이토록 깊은 어머니의 고통에 함께 통곡하지 않을 사람 누구 있으리?
사랑의 원천이신 성모여, 내 영혼을 어루만져 당신과 함께 슬퍼하게 하소서.

   
 
 

 

페르골레지 <스타바트 마터>                           
https://youtu.be/KA4KIZ1YO_Q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사랑을 설파하는 아들이 어머니 마리아는 늘 염려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믿었다. 아들은 기득권 세력과 충돌했고, 민중에게 버림받아 십자가로 끌려 나왔다. 어머니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아들을 보며 울부짖을 수도 없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극한의 슬픔, 현실에서 체념할 수밖에 없지만 영원 속에 새겨져 빛나는 모성, 바로 성모 마리아다.    

   
 
 

‘내 육신이 죽을 때’(Quando Corpus Morietur)에 이어서, 끝 부분의 ‘아멘’이 어머니의 눈물을 조용히 닦아준다. 13세기 이탈리아 시인 야코포네 다 토디가 가사를 썼고 여러 작곡가가 이 시에 음악을 붙였는데, 특히 지오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지(1710 ~1736)의 작품이 가슴 저미도록 아름답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삽입된 곡 중 모차르트 작품이 아닌 것은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터> 단 한 곡으로, 살리에리 아버지의 장례식 장면에 나온다. 35살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보다 더 꽃다운 나이에 죽은 천재에 대한 오마주(homage)였을까? 페르골레지의 이 작품은 18세기 중반에 장례 미사곡으로 널리 연주됐다고 한다.  

페르골레지는 26살 젊은 나이에 죽은 천재 작곡가다. 그는 어려서부터 한쪽 다리를 절었다. 10대부터 천재로 이름을 날린 그는 바이올린 즉흥연주 솜씨가 사람들을 경악시킬 정도였다. 그는 <사랑에 빠진 수도승>, <콧대 높은 죄수>, <마님이 된 하녀> 등의 오페라가 성공하여 ‘오페라 부파’의 선구자로 역사에 기록됐고, 바이올린 소나타와 협주곡 등 기악곡, 오라토리오와 칸타타 등 종교음악도 많이 남겼다.

한때 귀부인 마리아 스파넬리와 열렬한 사랑을 나누는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그는, 폐결핵이 점점 악화되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나폴리 근교 포추올리의 수도원에 들어갔다. 26살 젊은 나이, 적막한 수도원에서 죽음을 예감하며 써 내려간 이 곡이 바로 그의 마지막 작품 <스타바트 마터>다. 이 곡을 쓸 때 페르골레지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어머니를 그리워했을 것만 같다.

1년 전, 침몰하는 세월호 안에서 엄마에게 “사랑해” 마지막 문자를 보낸 아이들의 맑은 넋을 생각하니 또 할 말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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