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음악이여, 침을 뱉어라!
음악이여, 침을 뱉어라!
[이채훈의 힐링클래식] 저무는 2014년, 정명훈을 떠나보내며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 Op.23
http://youtu.be/5PPs0eg34hQ (피아노 정명훈, 2013, 마리아 칼라스 홀) 

정명훈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하며 읽어주시기 바란다. 슈만이 듣고 “쇼팽 곡 중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고 쇼팽 자신도 동의했던 곡, 발라드 1번 G단조다. 정명훈도 이 곡을 무척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1994년 바스티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마련한 송별회 자리에서, 2013년 음반 홍보를 위해 모인 기자들 앞에서 이 곡을 연주했으니까. 

이 연주를 좋아하시는지, 각자 판단에 맡기겠다. 시심(詩心) 가득하면서 드라마틱한 정서가 흐르는 곡인데, 나는 정명훈의 연주에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기계처럼 피아노를 두드릴 뿐인데, 그나마 전혀 매끄럽지 않아서 소음처럼 들렸다. 음악에 마음이 담겨있지 않다. 정식 연주회도 아니고, 기자들 앞에서 맛뵈기로 조금 들려준 걸 갖고 뭘 그러냐고 하시면 할 말은 없다. 다큐멘터리 PD로서 부끄러운 고백을 한다. 1996년 다큐를 만들 때 정명훈이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을 조금 넣은 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의 녹음으로 이어갔다. 아슈케나지 연주가 훨씬 더 섬세하고 시정이 넘치기 때문이었다. 그 다큐에서는 1974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장면을 최초로 입수하여 소개했는데, 다큐를 본 정명훈은 “내가 저렇게 피아노를 잘 쳤었나?” 놀랐다고 전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피아노 연주가 퇴보했다면 지휘자 생활로 바빴기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27일 예술의 전당 독주회는 가지 않았는데, 비싼 티켓을 사는 건 내겐 도박이었다. 음반 홍보하는 자리에서 들려준 성의 없는 연주보다 좀 더 나은 걸 기대할 수 있겠지만, 만에 하나 비슷한 수준의 음악을 참고 들어야 한다면 보통 낭패가 아닐 터…. 언론의 연주평이 찬양 일색인 걸 보니 “도박을 할 걸 그랬다” 싶기도 하지만, 링크한 그의 쇼팽은 “피아노는 내게 진짜 음악”이라고 강조하신 분이 들려준 ‘진짜 음악’ 치고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그의 지휘에 맞춰 열심히 연주한 서울시향의 음악가들이 “피아노야말로 진짜 음악”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지, 전혀 배려하지 않는 그의 무신경이 불쾌했다.      

이런 무신경은 최근 서울시향 논란에 뛰어든 사람들의 글에서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진중권은 “정명훈 자체가 우리한테는 사치”라며 “세종문화회관 옆을 지나는 돈 없는 서민들에게 클래식이 다 뭡니까?” 덧붙였다. 반어적인 표현이지만, ‘클래식을 좀 아는’ 사람의 오만이 묻어난다. “저렴한 지휘자 갖다 씁시다. 그 자리 노리는 자칭 지휘자들 쌔고 쌨거든요.” 이 귀절을 본 다른 지휘자들이 느꼈을 모멸감은 그의 관심 밖이었다. 정명훈 이외의 지휘자는 모두 ‘갖다 쓰는’ 메트로놈인가?   

이글루스의 블로그 <어쩌다보니>에 올라온 글도 비슷하다. ‘진보’를 자처하는 필자는 - ‘진보’가 익명 뒤로 숨은 게 좀 이상한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 하는 사람 같다 - 정명훈처럼 “피라미드 상부로 올라간 사람이 쏟아부은 노력과 치열함은 일반인의 것과는 다르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가 그들의 예술적 성취에 뭐 하나 보태준 것 있나요? 그들이 악보를 사거나 오선지 사는데 누가 십원 한장 보태준 적 있나요? 그 사람들 조국에 빚진 거 하나도 없습니다.” 승자독식을 합리화하며,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이자 책임인 정당한 비판을 봉쇄하는 독재자의 논리를 닮았다. 

게다가 틀렸다. 정명훈은 조국에 빚진 게 있다. 오랜 세월 그가 국적을 유지했던 미국에 대해서는 빚진 게 별로 없겠지만, 그를 낳아주고 사랑해 준 한국에는 빚진 게 무척 많다. 1996년 다큐 촬영할 때 프랑스 언론은 그를 “한국 출신의 미국 지휘자”라고 했다. 이태리 시에나의 지휘 매스터클래스 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조금 늦게 도착한 촬영팀을 가리키며 전세계 수십 명의 젊은 지휘자들 앞에서 정명훈은 “저게 바로 코리안 타임”(That's the Korean Time)이라고 말해서 나를 경악케 한 적이 있다. 그에게 한국은 참 편리하고 만만한 나라일 것이다. 그가 유럽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는 지휘자인 건 사실이지만, 그에게 이토록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나라가 한국밖에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김상수씨는 정명훈이 국민의 세금인 서울시향 예산을 불투명하게 사용(詐用)해 온 것을 비판해 왔는데, 익명의 필자는 그를 도가 지나치게 모욕했다. 일일이 지적할 지면도 시간도 없으니 생략하지만, 김상수씨를 가리켜 “고졸 학력과 경력미달의 자칭 예술가”라고 비아냥댄 대목을 읽으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배운 자들이 제 구실을 못 해서 나라가 이 꼴인데, 대학 안 나온 사람이 나름 올바른 원칙의 회복을 주장한다면 칭찬은 못 하더라도 그렇게 가볍게 모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학 졸업장 없이 연극, 영화, 미술에서 그가 해낸 ‘창작’은, 음악대학원 나온 사람이 쓴 ‘클래식 칼럼’보다 훨씬 나아 보인다. 

익명의 필자는 목수정씨에 대해서 “음악에 대해 뭘 모르시는 분인 것 같다”고 운을 뗐는데, 이 대목이 내겐 가장 거슬린다. 반대 입장을 펴는 사람에게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는 딱지부터 붙이는 걸 보니 클래식 음악을 아는 게 대단한 우월성의 증거라도 되는 모양이다. 나도 클래식 음악을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도록 칼럼을 쓰고 강연을 하지만, 클래식 음악만 거룩하고 고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클래식 또한 역사 속에서 태어나 진화하고 사멸하는 여러 종류의 음악 중 하나일 뿐이다. 클래식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깔보는 건 천박한 엘리트주의다.      

논리의 비약이라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클래식을 안다”며 자기만족을 내비치는 건 “음악밖에 모른다”며 순수 예술가의 아우라(aura)를 과시하는 정명훈의 태도와 상통한다. 정명훈의 피아노 연주를 하나 더 들어보자. 드뷔시의 <달빛>인데, 5분이 넘는 곡을 기자들 앞에서 2분 정도만 연주했다. 어차피 한국 기자들은 음악을 모르니 아무렇게나 연주해도 환호할 거라고 여기는 걸까? 이 연주가 맘에 드시는가?

드뷔시 <달빛>
http://youtu.be/9HEst7strDs (피아노 정명훈, 2014. 9. 25 / 명동성당 마리아홀)

   
▲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클래식 음악에는 드뷔시의 <달빛>처럼 자연의 인상을 묘사한 곡도 있지만 사랑과 동경, 실존과 고뇌, 생명의 예찬이 있고 자유를 향한 갈망, 불의에 대한 분노, 정의와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베토벤과 말러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이 모두 그러하다. 다시 인용하거니와, 드뷔시는 말했다. “당신들은 결코 훌륭한 음악가가 아니다. 당신들은 오직 음악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고, 핍박받는 동시대인의 고통을 아파할 줄 모르고, 자기 성공을 기원하며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훌륭한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엄밀한 분석이 필요한 질문이지만, 나는 아니라는 쪽에 한표 던진다.   

서울시향의 음악가들은 왜 침묵하는가? 정명훈이란 간판을 앞세우고 만들어 낸 흥행 성적*이 좋아서 그냥 안주하려는 것인가? 당신들의 자존심인 음악 역량, 어느 정도 갖춰진 운영 시스템을 갖고 스스로 일어설 의지는 없다는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자생력 없는 악단’이라는 수치스런 말을 듣는 게 아닐까?  

‘갑질’에 대해 마땅히 책임져야 할 박현정 대표는 29일 사임했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 ‘수퍼갑’ 정명훈은 재계약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피아노든 지휘든 음악을 처음 시작한 5살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초심을 되찾을 의지는 없어 보인다. 피아노가 ‘진짜 음악’이라고 말했지만, 피아니스트의 고된 삶을 시작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아, 추하다. 비겁하고 우둔하고 저열하다. 

음악이여, 침을 뱉어라! 슬프고 아팠던 2014년이여, 가라!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는 ‘정명훈의 음악적 성과’라 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흥행 성적’이라 해야 옳다. 20세기 후반부터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를 대등한 음악적 파트너로 보는 게 세계적 추세다. 어느 한쪽만 강조할 경우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악적 성과’도 물론 ‘흥행 성적’의 중요한 일부분이겠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음악이 좀 모자라도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가 있고, 음악이 훌륭한데도 흥행에 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정명훈이 연주하면 음악의 질과 관계없이 무조건 박수치는 애국자들이 너무 많다. 

이 기사를 후원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