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중의 최고 이슈의 소재는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관련이다. 일반적인 사회 정서가 이른바 대기업 오너 일가 중심의 기업 경영 행태에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던 차제에 ‘땅콩 회항’사건은 화약 심지에 불을 붙인 격이다. ‘땅콩 회항’에서 승무원들이 관련 법규정을 어기면서까지 조 전부사장의 ‘난동’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조 전부사장이 승무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오너는 ‘갑’일 수밖에 없고 나머지 구성원들은 ‘을’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오너의 말은 곧 ‘법’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도 ‘갑’과 ‘을’이 존재한다. 특출한 스타 말고는 대개 스포츠에서 협회 내지 연맹은 ‘갑’이고 선수는 ‘을’이다. 대회에 출전하여야 하는 선수 측 입장에서는 선수자격과 대회 출전 여부를 결정하는 단체에 밉보이거나 단체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을 가급적 피해야 한다. 괜히 협회에 ‘찍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처분을 받으면 법원 소송을 통해 다투더라도 최소 몇 개월 길게는 몇 년간 선수활동이 정지되는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 복싱의 유일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신종훈은 국제복싱협회(AIBA)와 계약 분쟁으로 선수 생명의 위기에 빠졌다. ⓒ 노컷뉴스
 

이러한 스포츠의 ‘갑질’과 관련하여 이상한 사건이 생겼다. 바로 인천아시안게임 복싱 남자 라이트 플라이급 금메달리스트이자 세계 톱 랭커인 신종훈 선수(인천광역시청 소속)에 대한 세계복싱협회(AIBA)의 출전금지 임시처분과 이에 따른 대한복싱협회(회장 장윤석, 이하 ‘복싱협회’)의 국내대회 출전불허와 관련한 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나는 AIBA의 제규정과 신종훈 선수가 임시처분을 받게 된 경위에 관한 자료들을 입수하여 검토하였는데, 이 사건은 AIBA 및 복싱협회의 ‘주먹갑질’이라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다. 

신종훈 선수가 2014. 10. 28.~ 11. 3. 제주도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함으로써 AIBA가 주최하는 2014 APB(AIBA Pro Boxing) 사전 예선 랭킹전 대회에 불참한 사실과 관련하여, AIBA의 APB 집행위원회(Executive Board)가 2014. 11. 11. 신종훈에 대한 AIBA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임시처분(Provisional suspension) 등을 결정(Decisions)하고 AIBA는 2014. 11. 18. 복싱협회와 신종훈에게 위 결정의 내용을 기재한 통지서를 이메일을 통하여 전달하였다. 위 결정(Decisions)에 이어서 복싱협회는 신종훈에 대하여 12. 11. ~ 16.까지 강원도 양구에서 열린 제68회 전국복싱선수권대회 겸 2015국가대표 1차 선발전 참가를 불허하였다.

AIBA 와 같은 스포츠단체인 협회(Foundation)의 의사결정과 집행은 협회의 제규정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회원, 선수 등 구성원의 신분 및 자격에 관한 징계 등 불이익한 처분 내지 결정을 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실체적·절차적 요건에 관한 규정의 준수는 더욱 엄격히 요구된다. 그런데 AIBA가 결정의 근거규정으로 밝힌 AIBA Competition Rules의 ‘Rule 1.3’은 APB 복서(신종훈이 해당된다)가 출전할 수 있는 AOB 경기에 관한 조항으로서 APB복서의 AOB 경기 출전에 관한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Competition Rules의 ‘Rule 1.3’은 신종훈에 대한 임시처분의 근거조항이 될 수 없는 것이었다.

   

▲ 세계복싱협회(AIBA)가 11월 18일 신종훈 선수에게 보낸 결정 통지서. 통지서 작성자의 서명이 누락되어 있다. 사진=장달영 변호사

 

 

한편 AIBA는 2014. 11. 5.자로 신종훈에게 보낸 서면에서 신종훈이 2014 APB 사전 예선 랭킹전 대회에 불참한 사실은 2014. 2. 10.자 신종훈-BMA-대한복싱협회 사이의 계약을 위반한 것으로 임시처분의 근거라는 취지로 기재하였다. 그러나 위 2014. 2. 10.자 신종훈-BMA-대한복싱협회 사이의 계약은 위 3자 사이에서 체결된 이른바 ‘사적 계약’으로서 AIBA의 규정(Regulations)이 아니며 BMA는 AIBA의 마케팅 에이전시에 불과하고 AIBA가 계약의 당사자도 아니다. 또한 위 계약서 어디에도 신종훈이 계약을 위반한 경우에 APB 또는AIBA의 신종훈에 대한 불이익한 처분 내지 징계를 할 수 있도록 한 조항 내지 내용이 없다. 

AIBA는 AIBA 징계규정(Disciplinary Code) ‘Article 13. 3. 5’에 의거하여 APB 집행위원회가 2014. 11. 11. 회의에서 신종훈에 대한 임시처분을 결정한 것으로 주장하는데, 위 조항은 사람(person) 또는 조직(body)이 징계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AIBA 징계위원회에 징계소청(Complaint)이 제기된 경우에 APB 집행위원회가 AIBA징계위원회 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임시처분을 할 수 있음을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신종훈에 대한 징계소청이 제기되지도 않아 APB집행위원회가 임시처분을 할 수 없음에도 임의로 임시처분 결정을 한 것이다.  

더군다나 더 이상한 점은 AIBA가 2014. 11. 18. 복싱협회와 신종훈에게 이메일을 통해 보낸 결정 통지서의 작성 명의자가 AIBA의 법률담당자(Legal Manager)로 기재되어 있는데, 서명(signature)도 되어 있지 않은 사실이다. 

복싱협회는 이처럼 APB 집행위원회의 2014. 11. 11.자 임시처분 결정이 AIBA 징계규정을 잘못 적용한 위법·무효이고 AIBA가 2014. 11. 18. 대한복싱협회와 신종훈에게 신종훈에 대한 AIBA 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임시처분의 결정 등을 통지하였으나 통지 자체도 효력이 없으므로 이를 문제 삼아 AIBA에 이의를 제기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신종훈에게 대회 출전를 불허하였다. 특히 위 결정 내용을 보면 APB 집행위원회는 신종훈에게 국가, 대륙, 세계별 AIBA 경기(AIBA Competition)에 출전을 금지토록 하여 위 결정에 따르더라도 신종훈은 AIBA경기 대회에만 출전이 금지되는 것인데, 복싱협회는 국내 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AIBA의 사무총장이 한국 사람임에도 이와 같은 신종훈 선수에 대한 어처구니 없는 출전금지 처분이 내려지고 이에 대하여 장윤석 국회의원이 회장으로 있는 복싱협회가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인천복싱협회가 복싱협회에 ‘찍혀’ 인천복싱협회 소속인 신종훈 선수가 억울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인가?

오는 22일 저녁 한국복싱 100년 기념 ‘2014 복싱인의 밤’ 행사가 복싱협회 주최로 열리는데 이 행사에서 여러 공로자에게 공로패가 수여될 예정이다. 그런데 공로패 수여자 명단에 이번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가 아닌 대표선수도 들어 있는데, 금메달리스트 신종훈 선수는 빠져 있다.

<필/자/소/개>
필자는 중학교 시절까지 운동선수였는데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의 인생을 살고 있다. 대학원에서 스포츠경영을 공부하였고 개인적‧직업적으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스포츠‧엔터테인먼트와 문화의 보편적 가치에 따른 제도적 발전을 바라고 있다. 그런 바람을 칼럼에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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