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체 86만 교직원 중 학교비정규직은 약 37만 명(43%)을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들을 같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선생님’과 다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절반에 가까운 게 학교 현장의 현실이다. 정규직 교사에서부터 무기계약 회계직원, 초단시간 강사까지 학교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현대판 신분제의 실상을 미디어오늘이 들여다봤다.<편집자주>

[연속기획] - 학교 안 카스트, 우리 아이의 미래다
① 학교도서관 사서 “휴가 못가도 내년에 일할 수만 있다면”

지난 7일 오후 3시 서울 A초등학교 운동장에선 아이들 20여 명이 티볼(tee ball· T자 형의 막대기 위에 공을 놓고 방망이로 치는 종목으로 야구와 비슷한 변형 스포츠) 경기를 하고 있다. 

이날은 티볼 방과 후 프로그램이 없는 날이다. 하지만 A초교의 유일한 스포츠 강사인 송지훈(가명)씨는 오는 22일 있을 티볼 대회를 대비해 아이들의 타격 자세와 수비 위치 등을 바로잡아 주는 훈련을 진행했다. 

“원래 매주 화요일 100분 수업인데 아이들이 시합에 나가게 되면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도 개인시간을 할애해 훈련시킬 때가 많아요. 오늘은 오전에 육상대회 출장을 갔다 와서 사실 힘든데도 아이들이 원하는데 어떻게 안 하겠어요. 애들이 그러자고 하면 힘들어도 그래 하자, 그래서 해주는 거죠.”

저녁에 스포츠센터 ‘투잡’은 기본, 주말 편의점 ‘알바’까지

A초교에서 3년째 스포츠 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송씨는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주당 21시간씩 학교 정규수업에서만 5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방과 후 프로그램과 토요스포츠클럽까지 모두 혼자 전담하고 있다. 그런 그는 매년 한두 달은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는 학교비정규직이다.

송씨는 “해마다 10개월 계약을 하고 1·2월 합쳐서 150만 원 정도의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생활했는데 올해는 1개월 계약을 연장해주는 대신 예산이 없다며 동료 스포츠 강사들을 더 줄였다”며 “연말만 되면 내년엔 얼마나 뽑고 줄일지 처분만 기다릴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내년에도 볼 수 있는 거냐’며 ‘선생님 가지 말라’고 하는데 한숨밖에 안 나온다”고 말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스포츠 강사 노동자대회'를 열고 초등스포츠 강사 대량 해고 중단과 처우 개선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송씨는 정규수업 시간에 ‘협력수업’이라는 이름으로 담임교사들의 수업부담을 덜어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일주일에 체육수업 3시간 중 1시간은 혼자서 전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업 ‘보조’라는 이유로 ‘수업권’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영어회화 전문강사 등 단독수업권을 가진 강사들에 비해서도 턱없이 적은 급여를 받는다. 

송씨는 “스포츠 강사들 대부분 교원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개중에는 국가대표를 했던 사람도, 교육학 석사학위 소지자도 있는데 교육청에서는 협력수업이라고 보고 ‘보조’ 월급을 주고 있다”며 “교사들과 똑같은 대우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차별을 두더라도 실질적으로 우리도 수업을 하니까 그에 맞게끔만 처우개선을 해달라는 것인데, 그렇다고 수업보조만 시키는 것도 아니어서 굉장히 모순적”이라고 토로했다.

송씨가 바라는 것은 우선적인 고용안정이다. 지난해까지 6년간 물가 상승에도 월급이 인상은커녕 오히려 동결됐고, 연차를 못 가도 수당으로 받아본 적이 없지만 아이들과 즐겁게 생활하다 매년 헤어짐을 준비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한다.

“세금 떼고 받는 게 월 135만 원 정도여서 실제로 가정이 있는 선생님들은 저녁에 스포츠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도 있고, 주말엔 편의점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어요. 겨울방학 때 애들이 전화해서 ‘어디 아프냐’고 ‘왜 안 나오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학교생활이 즐겁다는 아이들과 헤어지는 게 가장 힘들죠”

지난해 토요스포츠클럽을 하면서 송씨의 눈에 띄어 티볼을 시작했다는 6학년 정아무개양은 “선생님이 작년에 아마 내년에는 다른 학교로 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 다행히 안 가셨다. 만약 가셨으면 티볼을 재밌어 했는데 못 하게 돼서 아쉬웠을 것 같다”고 말했다. 

A초교에는 원래 티볼 방과 후 프로그램 자체가 없었지만 송씨가 근무한 후 여름방학 무료 스포츠캠프를 경험했던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건의로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개설됐다.   

타자로 나가 안타로 치고 돌아온 5학년 김아무개군은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보다 운동장에서 야외활동을 하는 게 훨씬 낫다”며 “티볼을 하면서 형, 동생들과도 많이 친해져 학교생활이 힘들 때 도와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4학년 최아무개양도 “티볼을 할 수 있어서 학교 오는 것도 재밌고 친구들이랑 어울릴 수 있어서 좋다”며 “선생님이 운동할 때 내가 잘 안 되는 것을 잘 가르쳐 주고 체력도 길러주셔서 예전에는 감기에 많이 걸렸는데 티볼을 하면서 감기도 안 걸리고 건강해졌다”고 했다.

티볼이 컴퓨터 게임보다 훨씬 재밌고 몸도 건강해져 이제 감기도 안 걸린다고 자랑하는 아이들에게 송씨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멘토’이자 ‘아빠’같은 존재이다. 내년엔 헤어질지도 모르는 ‘아빠 선생님’의 연말은 또 다가오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