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체 86만 교직원 중 학교비정규직은 약 37만 명(43%)을 차지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들을 같은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선생님’과 다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절반에 가까운 게 학교 현장의 현실이다. 정규직 교사에서부터 무기계약 회계직원, 초단시간 강사까지 학교 안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현대판 신분제의 실상을 미디어오늘이 들여다봤다.<편집자주>

인천에 위치한 A초등학교 도서관.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에 빌렸던 책을 반납하러 온 아이들도, 읽고 있던 책의 다음 권을 찾는 아이들도, 학교 숙제에 필요한 책을 물어보는 아이들도 도서관을 찾는다.

하루에 아이들이 빌려 가는 책은 평균 500권 이상이다. 책을 빌려 가는 학생 수는 300~400명이지만 학교 도서관에 그냥 놀러 오거나 책을 보고만 가는 아이들까지 합하면 최소 5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매일 도서관을 이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대출 반납 업무를 포함해 장서 정리와 도서 관리, 독서 지도, 독서행사 준비·개최, 독서동아리 운영 등의 업무를 모두 전담하는 사서 선생님은 단 한 명뿐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많은 업무를 돕기 위해 하루 두 명의 학부모들이 돌아가며 ‘명예사서’로 도서관에서 일하지만,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릴 때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A학교에서 사서로 일하는 이현미(가명)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와서 책을 반납하고 가면 수업시간에 제자리에 놓는 기본 업무부터 신규 도서 구입과 도서관 활용과 관련한 연중 업무와 행사까지, 학부모들의 도움이 없이는 사서 한 명으로 운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학부모들이 대출·반납 업무 등 단순한 업무는 도와줄 수 있지만 학생들의 수준과 교육과정에 맞는 책을 찾아주고 추천해 주는 등 독서 교육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 경남 창원의 한 초등학교 도서실(이 사진은 기사에 언급된 학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점심시간이 돌아오자 아이들은 더 많아졌다. 책을 읽기 위해 오는 아이들도 있고, 도서관은 아이들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와 반 선생님, 친구들과의 있었던 일이나 고민을 털어놓는 ‘아지트’이기도 하다.
 
오후가 되자 학교수업을 마친 저학년 학생들로 도서관은 가득 찼다. 장서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아이들부터 학원에 가기 전에 학교 숙제를 하거나 휴대폰 게임을 하는 아이들까지, 학교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방과 후 공부방이자 놀이터가 된다. 

도서관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도 즐겨 찾는 공간이자 쉼터이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기도 하고, 엄마가 올 때까지 도서관에서 기다렸다가 엄마의 손을 잡고 책을 빌려서 가기도 한다. 

이씨의 평일 근무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7시간)이지만 대부분 30분 일찍 출근하고 오후 5시 넘어서 가는 날도 많다. 아이들이 방과 후 도서관에 있다가 학원에 가기 전에 도서관에 오면 오후 4시가 넘었어도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도서관에서 내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씨는 “근무 시간에 대한 매뉴얼이 없다 보니 사서의 근무 시간은 학교 방침이나 사정에 따라서 다르고, 토요일 도서관을 열지 않는 학교도 있지만 격주나 매주 개방하는 학교도 있다”며 “나를 포함해 많은 사서가 하루 30분에서 1시간을 ‘휴게시간’으로 빼서 토요일 근무 시간으로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면 초과 근무 수당을 줘야 하기 때문에 많은 학교에서 이 같은 편법을 쓰는 것이다. 반면 정규직 교사에겐 근무 시간 중 ‘휴게시간’을 제외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일 명예사서로 나온 학부모 박아무개씨는 “학부모를 학교 업무에 동원하면 안 되지만 부모들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이기 때문에 봉사하고 있고, 전문적으로 관리해주는 사서 선생님은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며 “학교에 사서 선생님이 없을 때도 봉사를 했는데 전문적인 사서가 없으면 학부모들도 우왕좌왕하거나 학교 교과 연계 프로젝트 수업 등에 필요한 책을 고르는 데도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독서습관과 논술지도 등을 꾸준히 관리해 줘야 하는 사서 선생님이 자주 바뀌는 것도 학생들의 교육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박씨는 “어린아이들은 돌봐주는 선생님이 자주 바뀌면 불안할 수밖에 없고, 사람이 바뀌면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꺼려진다고 한다”며 “자주 오는 아이들 이름 한 번이라도 불러주는 선생님에게 더 자주 가게 되는 것이 아이들 심리이고, 아이들의 편독(偏讀) 습관을 고쳐주고 학년과 수준에 맞는 책을 추천해 주는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사서 선생님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선생님이 권하는 책으로 아이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데 실제 교육 정책은 이런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인천 지역만 해도 도서관이 있는 초등학교만 496곳에 이르지만 이 중 사서가 1명이라도 근무하는 곳은 190곳(정규직 35명)에 불과하다. 게다가 올해까지 지자체 예산으로 사서 인건비가 지원되던 56개 학교가 ‘지자체 교육보조경비사업 예산에서 인건비를 지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교육부 감사 지적사항을 받아 내년부터 지원이 중단될 예정이다. 

인천시교육청은 예산 등의 이유로 내년부터 190개 학교 가운데 70곳만을 ‘사서 지원학교’로 선정해 직접 고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기존에도 부족했던 120명의 비정규직 사서가 대량실직 위기에 놓인 것이다.  

이씨는 “중식비 본인 부담과 있어도 쓸 수 없는 연가 등 현실적인 처우 문제도 많지만 당장 사서들은 내년 고용도 불확실해 다른 무기계약 전환 직종에서 요구하는 처우 개선 주장도 부러울 따름”이라며 “근속수당과 가족수당 등 부담으로 학교에서는 경력자나 기혼자의 고용을 꺼리고 있고, 무기계약 전환과 수당 지급을 피하려는 편법으로 10~11개월 단위로 고용계약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작년에 독서동아리에서 가르친 아이가 백일장에 나가 수상을 했는데 소감에 제 얘기를 썼어요. 그때 너무 뿌듯하고 고마웠던 기억이 나요. ‘나도 선생님이구나’라는 자부심을 느꼈어요. 내년에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서가 와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어요.”

이날도 이씨는 아이들이 모두 떠난 도서관에서 책 정리와 청소, 잡무 등을 모두 마치고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도서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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