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은 다분히 중의적(重義的)이다. 의미가 겹쳤다는 것이니, 여러 갈래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도 그렇겠다.

‘어떤 사람’을 정의(定義 definition)하거나 묘사하는 말도 다양하다. 본인(本人) 현인(賢人) 상인(商人) 등 ‘-인’의 형태로 쓰이는 그 말들은 다채로운 사람들의 모습을 간략하게 표시한다. 필요에 따라 나, 어진 사람, 장사꾼 등의 말로도 바뀌어 쓰인다.

언제인가 ‘지인’이란 말이 우리 생활 속으로 풍덩 들어왔다. 처음엔 낯설었으나 곧 익숙해졌다. 뛰어나게 아름다운 인기 여배우가 방송과 광고에서 이 말을 쓰면서부터 비롯된 ‘현상’이라고들 한다. 아예 이 말을 제품 이름으로 정해 이런 현상에 편승하는 시도도 있었다. 

원래 있던 말이었다. 사전에도 ‘아는 사람’이라고 올라 있다. 그러나 자주 쓰이는 말은 아니었다. 새삼스럽게 방송매체의 위력 또는 매스미디어와 연결된 상업주의 속셈의 집요함을 실감한다. 이 평범한 말을 ‘좀 더 있어 보이는’ 말로 격상시킨 뒷 세력들인 것이다.

이 ‘현상’은 또 다른 ‘현상’을 부른다. ‘아는 지인’이라는 표현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는 아는 사람’이라고 풀어야 한다. 자주 얘기되는 ‘역전앞’의 새로운 사례인 것이다.

또 있다. ‘보통 지인’ ‘그냥 아는 지인’ ‘가까운 지인’ ‘잘 아는 지인’ ‘친한 지인’ 등 ‘아는[지(知)] 사람[인(人)]’이라는 말의 뜻을 무시하는 듯한 지인(知人)의 이상한 활용이 퍼지고 있다. 지인이 ‘아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쓸 수 없는, 또는 쓰지 않을 기이한 표현이 꼬리를 무는 것이다. 

그 말의 바탕인 한자어를 생각의 틀에 넣어 두지 않은 데서 오는 말글살이의 혼란일 터다. ‘아름다운 미인(美人)’ ‘길가는 행인(行人)’ 등의 표현을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脈絡)이다. 영어로 'beautiful beauty'라고 말하면 많은 이들이 금세 ‘웃긴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우리말보다 영어에 더 익숙해진 것일까?

한국방송(KBS)이 매일 시청률 높은 시간대에 내보내는 ‘나눠 쓰자’는 캠페인 성격의 공익프로그램에 ‘다른 타인’이란 말이 나온다. 타인(他人)은 ‘다른 사람’이니 이 말 역시 ‘다른 다른 사람’인 것이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방송의 역효과 또는 부작용은 이 ‘다른 타인’을 또 어떤 괴물로 키워낼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고 있다는 것을 다만 저어할 뿐.

   
▲ 강상헌 평론가·우리글진흥원장
 

‘친한 우인(友人)’은 ‘잘 아는 지인’과 함께 ‘예능’이라고 불리는 TV의 수다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잘 쓰는 말이다. ‘친하지 않은 우인’도 있어야 그 말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 된다. 우인은 친구다.

그 ‘예능’에서 공인(公人)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일부 연예인들이 자신을 ‘공인’이라고 부른다. 또 그들의 결혼이나 연애 얘기에 오르는 상대방이 연예인이 아니면 ‘일반인’이라 부른다. 왜곡된 말글의 모습들이다. 시청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어법에 녹아든다. 그런 말들이 방송을 타는 것은 방송 종사자들 또한 그런 언어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

사람 즉 인(人)은 여러 이름을 가진다. 그 중에는 황당한 이름도 있다. 뜻이 말이 되고, 그 말이 새 뜻을 품어낸다. 뜻을 생각하는 말이라야 바른 새 뜻을 짓는다.

<토/막/새/김>

 ‘공인’은 공공(公共) 즉 국가나 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公은 사사로운 것[厶(사)]을 등진다[八(8)]는 뜻으로 푼다. 八은 원래 나눈다[분(分)]는 것, 여기서 등진다는 뜻이 생겼다. 개인적인 것 사(私)와 대비해 더 정당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공평하게) 나눈 물건[품(品)]’ 또는 ‘통로(通路)와 연결된 광장’ 등으로 고문자인 갑골문을 새기는 학설도 있다. ‘공인’ 이름 쓰고 싶은 이들은 꼭 이 뜻을 새겨야 한다. 치러야 할 이름값이 결코 헐하지 않다.

   
▲ 공(公)자의 갑골문. 서기 100년경의 ‘설문해자’(허신 著)는 사사로운 것을 배격한다는 뜻으로 풀었다. 1899년 처음 발견된 3천여년전의 갑골문 유물의 그림글자는 그 해석과 상당히 다른 뜻을 보여준다. 결론은 같지만. (사진=이락의 著 ‘한자정해’ 삽화 인용)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