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죽음의 상징이 되고 있다.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군 입영 거부 운동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맞아죽을지 모르는 곳에 어떻게 자식을 보낼 수 있느냐는 하소연이다.
윤 일병 사망사건이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것은 참혹한 가혹행위와 군 수뇌부의 은폐 조작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려고 간 군대에서 동료병사로부터 인간 이하 취급을 당하고 관련 사실이 드러나도 감추기에 급급한 군의 모습을 보면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퇴색되고 군 당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군 피해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군 폭력의 실상과 치부를 과감히 드러냈을 때 이에 걸맞는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한 피해자, 성소수자, 군의문사 가족, 군 가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최근 가혹행위의 여러 유형을 두루 살펴봤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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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모 씨는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지난 2010년 10월 자대 배치를 받았다. 하지만 두 달여 만인 12월 18일 자살을 시도했다. 백 씨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혼자서는 거동이 힘든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백씨는 자대 배치 후 지속적인 구타·가혹행위를 당했으며 자살을 결심했던 당일에는 온라인 상의 글 등을 이유로모욕과 비하를 당했다.

백 씨는 자살을 시도한 날 경계근무를 함께 선 김모 상병에게 100만원 상당의 온라인 게임 캐릭터 처분을 강요받았다. 곧이어 백 씨는 군대 내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이모 병장으로부터 온라인 카페에 로그인하도록 강요받았다. 이모 병장은 백 씨가 입대 전 카페에 게시한 성적인 글과 사진을 임의로 열람한 후 백 씨를 조롱했다.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낀 백 씨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후 자살을 시도했다가 발견됐다. 백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병변 장애 1급 판정을 받고 현재 재활 치료 중이다.

지난 2011년 10월 전역한 ‘가해자’ 김모 상병은 민간법원에서 폭행과 강요 등의 혐의에 대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 받았다. 이모 병장 사건 역시 국가인권위 조사 당시까지 민간법원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선임병의 온·오프라인 괴롭힘으로 인한 공상으로 보고 백씨를 비공상(업무 외 과실로 인한 심신장애)으로 처리한 상이구분을 재심사할 것을 201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게 권고했다.

   
▲ 제28사단 고 윤모 일병 사망 사건에 대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사과문을 띄운 국방부 홈페이지 화면.
 

군대 대 가혹행위가 다양한 유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구타 및 성추행, 따돌림 등의 사례가 다양하게 발생하는 것은 물론 사이버지식정보방, 개인금융정보의 과도한 제출 요구 등 인권침해 사례도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미디어오늘이 보도한 (2014년 8월 7일자 “군대가 저를 사이버 성추행범으로 만들었어요”) 사례 역시 사이버지식정보방에서 이뤄진 사이버상 개인정보 도용 사례에 속한다.

최근에는 개인금융정보의 과도한 제출도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7월 부사관의 부채 관리 등 명목으로 잘못 행해진 관행을 개선할 것을 육군 A 군사령관에게 권고했다. A군 사령관에 속한 한 교육단 주임원사는 소속 부대 부사관에게 개인 부채·저축 현황 및 개인월급통장내역서·카드사용내역서·개인대출정보조회표 등 금융정보 제출을 수차례 요구하는 등 부사관의 사생활 자유를 침해한 이유로 인권위에 진정됐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인권위에서 제출받아 발표한 연도별 군대 인권침해 사건행위별 처리 현황을 보면 ‘생명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는 가혹행위’로 인한 진정(각하 및 기각 제외) 건수는 2010년 4건에서 2011년 7건으로 증가했다. 2012년과 2013년 각각 5건이었으나 2014년 6월말 현재 12건으로 집계됐다. 최근 5년간 3배 가량 급증한 것이다.

국방부는 윤 일병 사망 후 지난 4월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현 대통령국가안보실장) 지시로 전군 구타·가혹행위 실태조사를 실시해 3919건을 적발했으나 자세한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고상만 대통령 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전 조사관은 1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윤 일병 사건과 관련해 목격자는 진술을 거부하고 있고 사망자는 말이 없다”면서 “밝혀진 가혹행위가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3월 발생한 오모 대위-노모 소령 성적 요구 자살사건을 비롯해 유명 연예인 동생의 가혹 행위로 인한 사병 자살 사건(4월), 임모 병장 총기 난사 사건(6월) 등 끊임없이 벌어지는 군대 내 사건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전 조사관은 “군에서 사망했으나 가족이 장례를 거부하고 있는 시신만 올해 2월 28일 기준으로 20기가 있고 진상규명을 못한 채 방치된 유해 160기 등 총 180기 시신유해가 최장 43년째 군에서 방치돼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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