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가 죽음의 상징이 되고 있다.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군 입영 거부 운동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맞아죽을지 모르는 곳에 어떻게 자식을 보낼 수 있느냐는 하소연이다.

윤 일병 사망사건이 국민의 공분을 일으킨 것은 참혹한 가혹행위와 군 수뇌부의 은폐 조작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려고 간 군대에서 동료병사로부터 인간 이하 취급을 당하고 관련 사실이 드러나도 감추기에 급급한 군의 모습을 보면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퇴색되고 군 당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군 피해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군 폭력의 실상과 치부를 과감히 드러냈을 때 이에 걸맞는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한 피해자, 성소수자, 군의문사 가족, 군 가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최근 가혹행위의 여러 유형을 두루 살펴봤다. <편집자주>

“군대에서는 가해자나 피해자나 다들 미쳐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해병대를 전역한 이씨(28)에게 군대는 ‘많이 맞고 때린’ 기억의 공간으로 남아있다. 그는 자대배치 첫날부터 ‘중대기수발’이라고 해서 중대 내 계급, 병과, 기수, 이름과 ‘해병의 긍지’라는 복무규율 등을 담은A4 4장 분량을 모두 암기하라는 강요를 받았다. 하지만 도저히 외울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선임에게 뺨을 맞고 총기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얻어맞았다. 냉동만두 5봉지를 먹이는 일명 ‘악기바리’를 당한 후 토하고 또다시 음식물을 먹어야 했다.

‘제껴’와 ‘꺾어’는 선임의 주먹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옆으로 제친 목과 위로 꺽은 울대는 선임의 타깃이 됐다. 

청소 불량을 이유로 먼지를 먹었고 컵으로 따라준 변기물을 마셨다. 아랫입술을 아랫니로 말아 올리면 선임들은 턱을 쳤고 일명 ‘하이바’(전투모)를 배로 깔고 온몸을 지탱하지 못하면 또다시 주먹이 날아왔다.

계급이 바뀌는 진급날에는 내무반을 돌면서 정수기 반통(물) 마시기, 파리, 모기 먹기 등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편안히 잘 수 있는 취침시간에도 선임들의 잠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깍지를 끼운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아야 했다. 발은 꼬아서 잤다.

외부로 부당함을 알릴 수 있는 시간과 공간도 극히 제한됐다. 자대 배치 후 허용될 수 있는 면회는 일병 5호봉(일병 진급 후 다섯 달) 아래로는 할 수 없었다. 이병과 일병이 면회를 갔다 오면 구타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를 할 경우 2인 1조로 배치돼 통화 내용이 선임에게 보고됐다.

군대에서 ‘아름다운 전통’으로 불리는 것들은 대부분 사회에선 용납될 수 없는 폭력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선임이 되고 똑같이 후임에게 ‘전통’을 물려줬다.

이씨는 “때리는 것도 위쪽의 눈치를 봤고 살아남으려면 때려야 하고 자기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내무반은 선임만의 왕국이 돼버렸다”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방법밖에 배운 게 없다. 어떻게 가르칠지 몰랐다. 오히려 때리지 않는 애들은 매장이 됐고, 많이 때리는 애들이 인정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저도 가끔 때릴 때 제가 제정신인지, 언제부터 제가 사람을 때렸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본 적도 없는 애를 제가 왜 때리고 있지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이번 28사단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 사건도 비슷한 경우다. 낮은 계급의 피해자가 높은 계급으로 진급하면서 가해자로 군림했다. 그렇게 폭력의 사슬이 이어졌다. 주범인 이모 병장은 자대 배치 후 선임들의 폭력 행위를 진술해 다른 부대로 전출됐고, 윤일병 폭행 가담자인 지모 상병과 이모 일병도 이모 병장의 구타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윤 일병이 전입해오자 구타의 가해자가 됐다. 윤 일병이 목소리가 작고 업무에 미숙하다는 이유로 이모 병장이 했던 ‘전통’의 구타를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전역한 이 씨(28)는 이들처럼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지만 “군대는 다들 미쳐가는 곳”이라며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외부의 감시가 없는 이상 ‘전통’이 대물림되고 사건이 터지더라도 ‘윗선’이 진급누락 등의 불이익을 감안해 은폐하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이씨는 ‘전통’을 지키고 가해자가 되면서 군대에서 살아남았지만 폭력의 사슬 속에서 군대 적응자와 부적응자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지난 ‘2012 군복무 부적응자 인권상황 및 관리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7.9%가 부적응 병사로 나왔고, 이들 중 군 생활이 의미있다고 답한 사람은 29.3%에 불과했다. 적응 병사의 63%와 부적응 병사의 54%가 “내가 아닌 군대 때문에 군 생활이 힘들다”라고 답변한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지난 2010년부터 올해 6월까지 최근 5년간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고 전역한 사람은 1만7801명에 이른다.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병원 정신과 진료를 받는 건수도 3만 8381건이나 됐다.  

   
▲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해병대의 일명 '꺽어'라는 가혹행위의 한 장면. 목을 들어올리면 선임이 울대를 주먹으로 때리는 가혹행위이다.
 

이 같은 통계는 군대가 바뀌지 않고서는 군 부적응자가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다. 결국은 가해자도 피해자라는 악순환 구조를 끊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해병대를 전역한 이씨는 “군대에서 제가 가한 폭력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당시 때렸던 후임병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병영인권연대 정재영 대표(52)는 “군 폭력은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면서 “공적영역의 폭력은 가해자도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피해자도 자신을 탓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은폐 조작이 이뤄지고 진상규명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하지만 사적영역의 폭력은 윤 일병 사건처럼 가해자의 폭력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집요하고 악랄하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탓하며 자살 행태로 결론을 맺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사적영역의 폭력 가해자에게 물어보면 때린 이유가 크게 없다. 단순히 때렸을 때 바보 같은 행동을 재미있어 한다”며 “단순히 인권교육 차원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여가생활은 축구공 하나밖에 없다. 전통으로 불리는 폭력도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병사들이 누리는 문화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병영악습을 폐해라고 진단하지만 간부들이 그런 것들을 만들어놓고 사병들의 시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8년 전부터 사병들의 휴대폰 소지 방안을 병영악습을 근절하는 대책으로 제시해왔던 정 대표는 “지금처럼 군대를 유지하면 제2의 윤일병 사건이 나올 때마다 국민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사회에 혼란이 온다. 어떤 방안이 이익인지 선택하면 된다”면서 “군 복무에 적합하지 않는 인원에 대해서는 개인의 특성을 반영해 대체 복무 등을 고려해야 하고, 휴대폰을 제공해 군대를 감시해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제안이 아니다. 구타 가혹행위의 원인과 과정이 어처구니가 없는데 가장 원시적인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휴대폰을 사병에 제공하는 방안은 보안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간부들이 불편한 상황이 싫을 뿐이다. 장병의 무기와 내부 시설은 이미 온라인에 모두 공개돼 있고 창군 이래 보안참사는 대부분 장교와 장군에 의해 이뤄졌다. 사적영역의 폭력은 말 그대로 범죄이고 이를 막는 방안은 어떤 방법을 제시했을 때 이익이 클지를 선택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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