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트렌드 가운데 대표 코드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른 동화’다. 어른 동화하니까 19금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새 우리 문화풍토에서는 어른, 성인하면 무조건 19금을 연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 어른의 의미가 성적 코드에만 부합할까. 미디어나 콘텐츠의 분화에 따라 여러 맥락에서 어른동화는 다양한 장르에 존재한다.

최근 KBS <개그콘서트>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햇님 달님’과 ‘시골 쥐와 서울 쥐’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를 패러디해 웃음 속에서 삶의 현실과 이면을 보여주려 한다. 질병과 폭력, 음모, 죽음 등 아동문학에서는 제거되기 쉬운 코드들이 좀 더 부각된다. <해를 품은 달>이나 <별에서 온 그대>는 사실상 어른동화나 다름없어서 마법이나 초능력, 환타지가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잔혹 동화는 어른 동화의 하나의 양상이지만 살인과 폭력 등의 하드코어 요소가 강하다.

지난 2월~3월에 걸쳐 한국관객을 찾은 <맨 오브 라만차> <오즈의 마법사> <위키드> 등은 어른 동화 뮤지컬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모험과 환상, 마법 등등 현실과 환상 사이 동화 같은 시공간을 통해서 전해주는 메시지는 유아적인 수준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근 끝난 서울시국악관현악단 공연 <어른을 위한 동화>는 아예 40~50대 관객을 겨냥해 ‘선비와 호랑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정채봉 동화를 소재 삼아 전통음악과 소리, 내레이션을 아울러 냈다.

한국에서 흔히 아동 문학으로 분류될 법한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은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곳에서 아동문학으로 분류 되지 않았다. 일반 소설로 분류되었는데, 이는 영국 출판가에서 이런 현상은 흔한 일이다. 아동과 성인의 교차 지점의 작품에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청소년 소설조차도 어른들이 본다는 문학과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성장 문학은 이러한 점에 더 부각된다. 이런 비단 아이들만 보는 작품이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삶의 성찰을 얻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많은 직장인들이 이 작품을 보고 삶을 다시 되돌아보기도 했다. 영국의 청소년 소설에서는 성인 소설에서나 등장하는 소재나 설정이 많기로 유명하다. 어른 동화 장르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 스틸컷
 
과대 포장된 감이 있었지만,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은 어린이들만이 아니라 30-40대 어른들이 보아도 충분한 작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 동반은 물론 관련 콘텐츠가 부가 판매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넛 잡>(Nut Job, 땅콩 도둑들)은 분명 어른들이 보기에는 버거운 감이 있었다. 이는 애니메이션의 흥행 공식에서 어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가 되겠다. 물론 <겨울왕국>보다는 <수상한 그녀>가 어른 동화 같은 측면이 강하다. <수상한 그녀>에도 마법과 환타지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지만, 그것의 현실성 여부를 관객들은 더 이상 따지지 않는다. 현실성의 리얼리즘이 아니라 맥락과 메타포에 관객은 열광한다.

다양성 영화의 신기원을 이루고 있다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어른 동화다. 세계 대부호 마담 D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다녀가고 난지 얼마 안 되어 피살당하고 그 범인으로 지목된 구스타브는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그 고군분투는 호텔보이 무스타파의 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는데, 무스타파와 구스타브는 현실과 비현실을 가로지르며 모험을 겪어내며 악당들의 음모를 밝혀내고, 마침내 동화 같은 해피엔딩에 이른다. 음모, 범죄, 유산 다툼, 폭력과 성애의 코드들은 어린이들에게 추천하기에는 무리가 있는지 모른다. 예컨대, 로맨티스트 구스타브는 많은 노부인들과 성관계를 맺는데, 성심을 다하는 구스타브의 태도는 세계 대부호의 유산을 상속 받게 만든다. 요컨대, 노부인들에게 진실한 성관계를 하면 해피엔딩의 결말을 맞게 되다니, 이런 얼개가 어른들을 동화에 부합하기 알맞았다.

이전에 유행한 키덜트라는 말이 있었는데, 어른동화 코드와 겹치는 느낌이 있다. 키덜트는 키드와 어덜트의 합성어로 아이 같은 어른, 유아 같은 문화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어른을 말한다. 예를 들면, 로봇 비행기 프라 모델을 수집하는 남성들을 지칭할 때 키덜트라는 말을 쓴다.

키덜트라는 말이 주체적인 개념이 강하고, 트렌드 소비 성향을 말한다면 어른 동화는 스토리텔링이나 문화콘텐츠에 좀 더 기울어진 개념이다. 또한 키덜트의 문화적 취향은 복고적 향수의 개념이 강하다. 어린 시절에 갖고 놀았던 인형이나 콘텐츠에 대한 소비를 말한다. 어른 동화 코드는 이야기 콘텐츠에 해당하며, 반드시 유아적인 코드를 강조하기 보다는 보편적인 소재나 심리 등을 좀 더 부각시킨다. 또한 삶에 주제의식에 대한 보편적인 공통점이 있고, 좀 더 쉽게 접근하는 형식적인 특징이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현실을 넘어선 보편적인 이상 탐구라는 점에서 어른 동화코드가 콘텐츠 차원의 특징을 갖는다.

어른 동화코드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 이솝이 우화를 만든 이유나 석가모니가 설법을 우화형태로 전달하는 것은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맞았기 때문인데 이 때문에 동화 컨셉은 아이들만 이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삶의 성찰을 얻게 한다. 무엇보다 질병과 폭력, 음모, 죽음 등 아동문학에서는 제거되기 쉬운 코드들이 좀 더 부각된다. 나아가 마법, 초능력, 환상 등등 리얼리즘 소설이나 공연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설정들이 많이 빈번하다. 리얼리즘이 아니라 맥락과 메타포에 관객은 열광하는 이유다. 이는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로 <해를 품은 달>이나 <별에서 온 그대>는 사실상 어른동화라서 마법이나 초능력, 환타지가 자연스러워 보였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는 음모, 범죄, 유산 다툼, 폭력과 성애의 코드도 보인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스틸컷
 
그렇다면 이 어른 동화 코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대등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성인과 아동의 구분에 대한 의미가 많이 희미해졌다. 어른과 아이에 대한 전통사회와 전근대적 관념이 많이 옅어지고 있다. 아이와 어른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본질을 은폐하는 것일 수 있다. ‘아이는 이런 것만 봐야 돼’하는 금기는 성인기의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동화를 쓰는 사람은 어른이고 동화를 골라주는 사람도 어른이다. 어떻게 보면 삶과 사회문화, 정치, 역사를 관통하는 깨달음에 도달한 이들만이 창작 할 수 있는 것이 동화이다. 가벼워져가는 문화예술이라는 평가도 있을 수 있지만, 복잡한 사회일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것이 세계적인 콘텐츠들과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이러한 점은 우리의 문학이나 한류가 많이 참고해야할 점이다. 이제 동화작가의 지향점은 단지 아동이 아니라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창작해야 하며 다른 예술분야도 이런 작업들을 적극 수용해야할 시점이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마법, 환상, 초현실, 초능력, 환타지 등은 아이들만이 아니라 인류가 꿈꾸는 이상적인 삶에 대한 갈망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형식적인 장르에 익숙한 세대들이 문화소비 주체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어른 동화 코드는 더 부각될 가능성이 많다. 이러한 점은 영국에서 큰 반응을 보이고 있는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보여주고 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같은 맥락이었다. 성인과 아동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보편적인 문화 코드에 부합 할수록 호응을 받는다. 우리 문화예술에 대한 출발은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성장은 이제 유아나 청소년만이 아니라 어른도 끊임없이 모색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저성장경제의 사회에 우리는 평생 우리는 영적 성장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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