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혁명(passive revolution)'은 지배계급이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민중들이 정치,경제,사회제도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차단할 목적으로 국가권력을 재조직화 하는 일련의 행위를 칭하는 말이다. 쉽게 말해 체제유지와 근본적인 변혁의 예방을 위해 한 국가의 메인스트림이 선제적으로 개혁이 포함된 제도와 정책들을 시행하는 걸 '수동혁명'이라고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성공한 수동혁명의 예가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수동혁명이다. 반면 제정 러시아의 총리였던 스톨리핀이 추진했던 농지개혁 등이 포함된 수동혁명은 실패했고, 머지 않아 짜르 체제는 붕괴한다. 역사를 살펴보면 의외로 성공적인 수동혁명의 예가 드물다. 그건 어떤 체제나 국가이건 간에 메인스트림에 속한 사람들은 수동혁명에 포함되기 마련인 개혁조치들조차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협량했거나 정세판단을 그르쳤다는 의미일 것이다. 

진정으로 무서운 보수주의자는 위로부터의 수동혁명을 결단하는 자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시민의 절반 이상이 기괴한 보수주의에 포획된 나라일수록 수동혁명이 용이하고 효과도 매우 크다. 수동혁명의 안착은 한국사회의 진보개혁진영에게는 궤멸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적어도 현재의 박근혜는 수동혁명을 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순전히 가정이지만, 만약 박근혜가 전두환과 이명박을 법이 허용하는 한에서 쥐잡듯 잡고, 국정원에 대한 선제적이고 전면적인 개혁을 단행하며, 조세회피자들에 대한 형사처벌과 중과세를 시행하고, 보편적 복지의 시늉을 내며, 재벌개혁 등을 포함한 공정한 시장경제의 몇 가지 원칙들을 확립해 낸다면 당분간 야권으로의 정권교체는 무망한 기대일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에게는 그럴 식견과 능력과 의지가 없는 것 같다.

적어도 박정희는 박근혜와는 달랐다.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는 나름대로 수동혁명체제를 구축했고 이 체제를 기력이 다할 때까지 구동시켰다. 그리고 박정희가 만든 수동혁명체제는 박정희 자신을 삼키고 말았다. 어쨌든 박정희는 수동혁명체제를 만들었고 이를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이었다. 또한 박정희는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박정희는 명백한 한계는 있었으나 명석했으며 유능했고 박정희의 부하들도 대체로 유능했고 충직했다. 불행히도 박근혜는 아버지에게 권력의지와 정치적 후각만 배운 것처럼 보인다.

하긴 박근혜나 새누리당이 수동혁명을 할 필요를 강하게 못 느끼는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 굳이 수동혁명을 하지 않더라도 국가기관을 선거에 동원하면 되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자신들에게 표를 던지는 콘크리트 유권자들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지배블럭 내의 갈등과 마찰과 반발을 무릅쓰면서 굳이 수동혁명을 단행하겠는가 말이다. 수동혁명의 필요성조차 전혀 느끼지 못하는 박근혜와 새누리당, 그리고 지배블럭에게 수동혁명의 절박함조차 강제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시민들의 머리 위에 드리운 그림자가 음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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