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또 다른 노회찬 만들 통비법 개정해야
또 다른 노회찬 만들 통비법 개정해야
[미디어초대석] 윤현식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법의 지배 혹은 법치주의라는 대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법은 보편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민주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의 법은 중립적이며 불편부당한 외관을 띠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분명히 법은 “다리 밑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그가 부자든 거지든 가리지 않고 처벌한다”는 형식적 평등주의를 천명한다. 하지만 어차피 부자가 다리 밑에서 잠을 잘 일은 없고, 결국 처벌받는 것은 부랑자나 노숙자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법이 형식적으로 보편성을 띤다고 하더라도 그 실질까지 그렇다고 단정할 수 없다. 법은 자신을 만들어낸 주인의 의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법률이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그렇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 그렇다. 정권의 밀사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받을 일은 전혀 없으며, 이건희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로 처벌될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애초에 이 법들은 그들을 규율하기 위해 만든 법이 아니라 그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법률 중 하나로 ‘통신비밀보호법’을 든다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이름 그대로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하려는 목적을 가진 법률이다. 어느 법률이나 마찬가지로, 이 법률은 그 외관상 누구라도 타인 간의 대화를 함부로 도청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법의 허용이 없이 이루어진 도청행위 혹은 이를 이용한 위법행위에 대해 엄중히 처벌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 또한 다른 법률과 마찬가지로 그 실질에 있어서 외관에 준하는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통신비밀보호법의 실질이 편파적임을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사례가 이번에 노회찬 의원의 직함 앞에 ‘전(前)’자를 붙이게 만든 소위 ‘안기부 X파일 사건’이다. 판결을 두고 세간에서는 법원의 몰상식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법살인’이라는 비판까지도 상당한 동의를 얻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분과는 별개로, 이 법이 현재의 형식과 내용을 유지하고 있는 한 앞으로도 또 다른 ‘노회찬’은 수도 없이 양산될 것이다. 공익제보자, 언론인, 정당인은 물론 누구든지 예외는 없다.

노회찬 전 의원이 안기부의 도청 내용을 공개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이든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하여 그 공개된 내용을 통해 당사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현행법 제4조의 소위 ‘독수독과’ 규정에 따라, 공개된 녹취기록만으로 수사가 개시된다면 그것 자체가 법률위반이 된다. 법원의 판단처럼, 녹취의 공개가 ‘정당행위’로 인정될 수 없다면 노회찬 의원은 법률에 의하여 당연히 처벌되어야 한다. 벌칙이 징역형이든 벌금형이든 그것은 관계없다. 결국 노회찬 전 의원의 ‘정의로운 행동’은 처음부터 오늘의 결과를 예정한 것이었다. 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작 중요한 것은 이 법을 누가 만들었는가, 누구의 이해를 만족시키는가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희대의 유행어를 낳은 초원복집사건에서 잉태된 이 법은 제정 자체의 취지가 권력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 공안기관에 의한 도청은 그 한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보장되어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통신비밀을 보호받아야 할 주체는 원천적으로 한정되어 있고, 이들의 통신비밀을 침해한 자는 누구든지 처벌받아야 하지만, 이들의 권력을 위하여 다른 이들의 통신비밀은 언제든지 침해될 수 있는 구조다. 결국 노회찬 전 의원은 권력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법률에 의거해 그 권력자들을 징계하려는 모순을 범한 것이다. 그게 노회찬 전 의원의 죄다.

   
윤현식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의장
 

지난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이번에 문제가 된 통신비밀보호법 제16조 제1항 제2호에 대한 헌법소원에 대해 이를 합헌으로 판단했다(사건번호 2009헌바42). 그런데 이 판결에서 당시 이강국 헌법재판관은 한정위헌의견을 통해 “비록 불법적으로 생성된 정보라고 할지라도 이를 “합법적으로 취득한 자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한 경우까지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 견해는 이번 노회찬 전 의원의 사건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일단의 기준이 된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단 한 줄, 도청내용 공개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 규정이 들어갈 때, 오늘 노회찬 전 의원을 죄인으로 만든 사람들은 떨게 될 것이고, 법치주의의 이상은 좀 더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안기부 X파일’과 같은, 부정한 권력으로 봉인된 부패의 증거들을 더 활발하게 공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법을 만들 수 있는 체제가 되지 않는 한, 결국 수도 없는 ‘노회찬’들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법은 자신을 만든 자들에게 복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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