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만나는 사람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도가니’ 이야기다. 영화를 봤냐고 묻는 사람부터 마음 여린 사람들은 보지 말라는 충고까지 도가니 사건을 모르고는 대화에 끼어들기도 어려울 정도다.
연예인의 사생활이나 TV 드라마, 예능프로그램을 대화주제로 소비하던 사람들에게 영화 도가니는 새로운 화제를 던져준 셈이다. 불편하고 복잡하기만 한 진실을 사람들의 눈앞에 직접 펼쳐 보이면서 장애아동에 대한 차별,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권력자들의 폭거에 사람들을 분노하도록 한 것이다.

2005년 인화학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피해아동과 가족들은 길고 잔인한 재판의 시간을 지나왔다. 당시 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인화학교 사건을 심층 취재하기도 하고, 이를 계기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직권조사까지 했지만 사건 가해자에 대한 재판은 가벼운 수준으로 끝났다.

뉴스는 잠잠해졌지만 문제가 해결 된 것은 아니었다. 소설가 공지영씨에 의해 사건은 재조명됐고, 2011년 오늘 영화 도가니로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이다. 그리고 영화 ‘도가니’ 위력은 판결까지 마무리 된 사건의 재조사와 관련 법안의 개정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것은 영화가 개봉된 후 불과 일주일만의 영향력이다.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지난 주 들끓던 도가니 열풍에 아니나 다를까, 정치권도 편승하기 시작했다. 여야 할 것 없이 영화 도가니 시사회에 동참하고, 도가니 가해자 처벌과 맞닿아 있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은 이전부터 줄곧 문제제기 되어왔던 것으로 새로울 것은 없다.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는 민간의존도가 매우 높다. 의료영역은 95%가, 사회복지영역도 90% 이상 국가가 할 일을 민간에 위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학법인에, 복지는 민간복지법인에, 의료는 민간의료법인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물론 민간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공영역의 사회서비스를 거의 모두 민간에 일임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민간비영리법인들을 견제할 국가적 수단이 매우 미흡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2007년,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도가니 가해자인 사회복지법인의 부정부패를 견제할 핵심적인 사항인 사회복지사업법이 발의되었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법안의 상정조차 격렬하게 막았고, 결국 이 법안들은 17대 국회의 임기만료와 함께 사장되고 말았다.

그런 한나라당에서까지 이제 도가니법을 입법하고,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정치권이 대중매체의 생산물을 긁어모아 인기 있을만한, 뉴스거리가 될 일들만 열심히 하는 것은 ‘불편한 정치행보’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에 영합하기만 하는 불편한 정치행보조차도 반가워하며 우리는 문제의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사건을 외면할 수도, 외면해서도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에게 ‘도가니’는 또 한 번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이야기 거리’에 머물 수도, 기억 속에서 지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2, 제3의 도가니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복지사업법과 형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우선 공익이사 선임 등을 통해 사회복지법인 운영을 투명하게 하고, 장애인의 '탈 시설'을 도모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사회복지법인의 견제수단인 이 법의 개정은 여러 정당에서 준비하고 있다.

더불어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형법의 개정도 필요하다. 현행 형법에는 장애인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장애인이 성폭력에 대해 ‘항거불능의 상태’를 입증해야만 피해사실이 확인된다. 특히, 장애인의 경우 항거불능을 본인이 직접 입증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조항으로 가해자의 형량이 줄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거불능조항은 반드시 삭제되어야 한다.

재판에서 법리적 해석으로 공정한 심판을 한다고는 하지만, 법조인에게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지의 여부도 재판과정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형법 개정과 더불어 법관에게 장애평등에 대한 인권교육이 시행되는 것도 좋은 대안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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