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일대 등이 최악의 물난리를 겪어 특별재난지역 지정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발의를 강행했다. 오세훈 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할 수밖에 없는 취지를 알리는 형식을 생략한 채 조용히(?) 발의했다.

서울시 행정국은 1일 “한기식․류태영 공동 청구인대표자가 지난 6.16(목) 청구한 ‘단계적 무상급식과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 중 하나를 선택하는 주민투표’에 대해 8.1(월) 발의․공고하고, 서울시선관위와 협의를 거쳐 투표일을 8.24(수)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발의한 주민투표 문구는 논란이 제기됐던 ①소득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②소득 구분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 실시 등을 그대로 채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연합뉴스
 
서울시는 해당 문구와 관련해 단계적 무상급식, 전면적 무상급식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문구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다. 무상급식 찬성, 반대 투표로 알고 있던 서울시민 입장에서는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단계적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이들 중에서고 ‘소득하위 50%’가 아닌 ‘소득하위 30%’ ‘소득하위 70%’ 등 무상급식 대상에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도 있고 전면적 무상급식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 중에서도 실시 시기에 대해서는 예산 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초등학교(2011년) 중학교(2012)년으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채택한 문구 자체가 유권자 판단에 혼란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는 논란 속에 무상급식 주민투표 발의를 강행했다. 당장 1일부터 서울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홍보에 나설 수 있게 됐다.

서울 강남구 일대 등 시내 곳곳이 최악의 물난리를 겪어 수해복구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고 오세훈 시장이 주민투표를 강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았지만, 오세훈 시장은 이를 강행했다.

이번 선택은 오세훈 시장의 ‘대선 승부수’라는 관측도 있다. 대선 존재감이 미미한 상황에서 오세훈 주민투표를 통해 한나라당 대선구도의 다크호스로 떠오르게 하는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보수성향 유권자들을 향해 ‘보수 DNA'를 확실히 각인시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독주하고 있는 대선구도를 흔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오세훈표 주민투표’는 우여곡절 끝에 강행됐지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동반하는 선택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이번 주민투표는 불법 탈법 논란으로 얼룩졌다. 투표 자체의 불법성 논란에 주목하는 이들은 이번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야당과 시민사회가 사실상 투표보이콧에 나설 경우 개표 요건인 투표율 33.3%를 넘기지 못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하면 '오세훈 주민투표'는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주민투표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오세훈 시장보다는 한나라당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성과’를 얻을 수도 있지만, 한나라당은 ‘초등학생 밥그릇을 뺏으려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떠안은 채 내년 총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박근혜 전 대표 지지층에서는 ‘오세훈표 주민투표’에 부정적인 인식을 감추지 않고 있다. 게다가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일단 주민투표는 강행하지만 결과에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언급은 피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 (올해 초에) 주민투표를 발의하며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는데 사퇴를 하면 언제쯤 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처음에 결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시동 걸기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서명운동에 나서는 분들께 동기부여가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오 시장의 말은 주민투표의 결과와 관계없이 시장을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고 해석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이러한 언급은 예산 180억 원 이상이 들어가는 주민투표를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대 속에 강행하지만, 결과에 책임을 지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주민투표 발의를 선택한 배경을 설명하고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등을 밝힐 것으로 관측됐지만,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1일 “수해를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마음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피해가 특히 컸던 서울시가, 이에 집중하지 않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강행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다. 오세훈 시장이 시민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대선출마의 발판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 ‘제몫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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