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막강한 영향력을 부인하는 사람은 이제 드물다. 그만큼 언론민주화 없이 사회민주화가 불가능하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이 두루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창간 80년을 바라보는 동아와 조선 두 신문은 발행부수의 규모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히 크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을 터이다. 하물며 두 신문은 친일의 과거를 감추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민족지’임을 자임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 우리가 특별히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 문제를 제기하는 까닭도 이같은 문맥을 벗어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가령 최근 지자체선거를 통해 취임한 서울시 부시장이 지하철 해고노동자의 복직허용을 검토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두 신문이 앞다퉈 공세에 나섰다. 두 신문의 편집방향을 되새겨보자.

첫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각각 12일, 13일자 사설에서 똑같이 신임 서울시 부시장의 발언이 ‘인기’를 의식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것이 왜 ‘인기성 노동정책’인지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오히려 신임 부시장의 평소 의정활동이나 그의 경력으로 볼 때 그의 일관된 소신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누가보아도 타당하지 않을까.그럼에도 그것을 ‘인기성’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논쟁을 처음부터 피하려는 의도라고 할 수밖에 없을 성싶다.

둘째, 두 신문의 사설은 서울시 부시장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합법성의 테두리’를 강조하고 있다.특히 동아의 경우 합법성이 가장 절실한 과제라고 주장하고 “노동운동의 목적과 절차가 합법성을 갖추지 못하는 한 노사관계가 대립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실로 본말이 벗어난 판단이 아닐 수없다. 우리 노동법은 이미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도 논란이 일만큼 ‘독소조항’이 많아 노동계의 원성을 받고있다. 그럼에도 두 신문이 노동법 개정을 촉구하기는 커녕 현행법의 모호한 규정을 들어 “법대로”만 외마디처럼 질러대는 현실은 도대체 두 신문이 누구의 입장에 서있는 것인지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더구나 동아일보는 같은 날 사설 옆 머릿기사로 경총의 입장을 충실히 보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차제에 두 신문이 어떤 편집철학으로 신문을 만드는지 분명하게 밝혀 줄 것을 요구한다. 독자들에게 ‘민주주의’라든가 ‘불편부당’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가진자’의 논리만을 확대재생산 시키거나 특정세력 편들기를 하고있는 것은 모순일 뿐더러 도덕적으로도 정직하지 못한 태도다. 동아와 조선은 경영자의 시각만을 대변한다든가 노동자들에 적대적이고 중산층만을 옹호한다든가 하는 분명한 편집철학을 밝히는 것이 차라리 정직한 자세가 아닐까. 만일 두 신문의 사시가 진정 민주주의나 불편부당이라면 최근의 노동문제 보도는 명백히 사시 위반일 것이요, 반면 최근의 노동문제 보도가 진정 두 신문의 시각이라면 사시의 변경이 필요할 것이다.무릇 신문사의 사시란 단순한 ‘사내용’이 아니라 독자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과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두 신문의 편집철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노동문제에서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가. 두 신문 책임자의 성의있는 답변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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