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하다’는 단어가 부적절하게 남용되고 있다.
 
저널리스트의 첫 번째 의무가 적확한 어휘 선택에 있는데, 너무 편의하게 너무 생각없이 ‘부적절한’ 단어를 남용하는 가운데 정확한 의미가 반감되거나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 네티즌들의 사이버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무시해도 되겠지만 기성 중앙언론에서까지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저널리즘의 위기로 보인다.
 
‘상하이 스캔들’로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사건을 신문과 방송은 모두 ‘한국 외교관 3 명이 중국 여성 덩모씨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파문을 낳고 있다’는 식으로 전하고 있다. 여기서 ‘부적절한 관계’가 무엇인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명쾌하다. 일부를 인용해보면 이렇다.
 

   
한겨레 3월10일자 3면.
 
“총리실, 외교부, 법무부 등에 따르면 상하이 총영사관에서 근무하던 3명의 영사는 중국 고위층에 끈이 닿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덩씨와 가깝게 지내며 비공식 창구로 활용했다. 이들 중 지경부 김모씨와 법무부 허모씨는 덩씨에 대한 치정 다툼으로 상하이 교민사회에 소문이 나 지난해 11월 본국에 소환됐다. 덩씨를 중심으로 이리저리 얽힌 부적절한 관계가 수면 위로 터졌고, 허씨의 부인도 상하이로 가서 남편의 불륜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적절한 관계는 ‘남녀의 치정문제’, 보다 구체적으로는 ‘불륜’이라고 한다. 심지어 부인이 상하이까지 가서 남편의 불륜을 확인까지 했다고 하는데, 왜 대부분 매체는 ‘부적절한 관계’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본질을 흐리는 것일까.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는 “‘불륜’에 빠진 한국 외교”라는 제목으로 관련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 보도에서도 역시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1999년, 빌 클린턴(Clinton) 전 미국 대통령이 모니카 르윈스키(Lewinsky)와의 혼외정사논란으로 탄핵의 위기에까지 몰렸을 때의 일이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불륜을 시인하게 되면 거짓말 때문에 정치생명이 끝날 위기상황에 놓였었다. 그 참모진들이 기막한 단어를 하나 골라냈다. 불륜을 암시하지만 직접적인 표현은 아닌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는 모호한 어휘선택이었다. 당시 언론은 ‘부적절한 용어’가 매우 부적절하게 사용됐다며 반기를 들었지만 그렇게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동아일보 1998년 8월18일자 보도.
 
클린턴은 훗날 당시 상황에 대해 "1994년 초에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화이트워터 스캔들 조사도 시작됐다. 이후 11월 총선에서까지 민주당이 완패하면서 난 고립감과 좌절감에 빠졌고, 르윈스키와의 정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뒤늦게서야 ‘불륜’이 있었음을 시인했지만 언론에서는 늘 ‘부적절한 관계’라는 식으로 표현했다.
 
   
 
 
상하이 스캔들에서 한국언론은 또 다시 ‘부적절하다’는 단어를 남용하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부적절하다는 것인지 독자나 시청자가 알아서 판단하라는 것인지...기사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미 불륜과 치정문제가 얽히고 섥혀있음을 정리하고 있다.
 
부적절하다는 표현이 잘못됐다기보다는 부적절하게 남용되고 있음을 적어도 언론인들은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가장 정확한 표현, 오해의 소지를 줄일 수 있는 용어선택을 위해 언론인들의 고민은 항상 깊어야 한다.
 
단순 스캔들로 끝내기에는 사안의 심각성과 조직의 무능이 너무 심각하다. 단순히 ‘부적절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치명적이고 너무 난잡하다. 한국 외교관들의 실체와 공직자들의 처신을 지적하기 위해 서도 모호한 용어로는 부족하다. 총영사관 간부들끼리 벌인 낯뜨거운 치정문제와 반복되는 비자발급에 얽힌 비리 문제는 한국외교의 참담한 몰골을 드러낸 수치스런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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