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스캔들’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신문들이 덩 씨의 사진만을 공개한 것에 대해 전형적인 본질 흐리기가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조․중․동 대다수 신문들은 영사관과 덩 씨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도할 때, 영사관의 얼굴은 모자이크로 처리했지만 덩 씨의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둘 다 모자이크 처리했지만, 진하기 정도에서 약간 차이가 났다.

그러면서 보도의 초점도 ‘덩 씨’가 누구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특히 동아일보의 경우, 9일자 신문에서 <국군포로 송환… 中권력실세 면담… 그녀 전화 한통이면 됐다>, <“덩씨, 덩샤오핑 손녀라며 자신 소개>, <“鄧, 대통령과 밥먹었다 자랑… 직업 매번 달라져”> 등 덩 씨에 초점을 맞추었다. 중앙일보도 <중국 고위층과 친분 자랑 던싱밍…“이상득․오세훈과 위정성 만남 주선>이란 기사에서는 아예 그의 실명을 공개했다. 다른 신문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덩 씨가 누구이고, 중국 권력층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중앙일보 3월9일자 1면.
 
하지만 이번 사건의 주역 배우는 ‘덩 씨’가 아니라, 불륜을 저지르면서 국가의 중요한 정보를 유출한 허, 김, 박 아무개 ‘영사관들’이다. 중국 ‘미인계’가 문제가 아닌, 그 미인계에 걸려들어 공사구분도 하지 못한 ‘영사관’들의 자질이 문제라는 말이다. 특히 2008년 지식경제부 소속으로 2008년 상하이 총영사관에 파견된 김 아무개 영사관은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 서울 필승대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인물로, 임명 당시부터 ‘보은인사’ 논란이 있었다.

물론 피의자 신상공개에 대한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작 국익에 해를 끼친 공인은 공개하지 않고, 덩 씨의 얼굴만 공개한 것은 사건의 ‘진짜’ 문제를 가릴 수 있다. 덩 씨가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이들 영사들에게 접근했는지는 조사가 더 진행돼야 하겠지만, 문제는 덩 씨가 누구이든 덩 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국가 기밀’ 까지를 내주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들 영사들의 문제다. 그럼에도 이들 ‘문제 영사’들의 얼굴은 가리고, 덩 씨의 얼굴 사진만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언론들의 행태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예전 ‘변양균-신정아 사건’에서도 그랬다. 신정아 씨의 누드사진이 공개된 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대번에 신정아 씨 개인에게도 옮겨가 그녀의 ‘과거’가 주요 관심사가 된 바가 있다.

   
문화일보 3월9일자 3면.
 
   
동아일보 3월9일자 1면.
 
이번 스캔들의 핵심은 무엇보다 정부의 인사시스템이 합리적이지 못한다는 것이며, 영사관이 국가정보를 몇 차례나 걸쳐 타국인에게 유출하는 것을 재빨리 감지하지 못한 허술한 관리시스템에 있다. 또한, 정부는 이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을 엄단하지 않고 다른 부서로 발령내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정보가 새나가고 한국 외교가 중국 외교무대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했는데도 불구하고 대충 넘어가려 했던 셈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9일 이 사건을 다룬 한국 언론의 보도 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전하며, 덩 모씨가 스파이일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는 한국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엽기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신문은 이날 ‘외교관들이 중국 여간첩에게 당했다고 한국언론이 집중 조명했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반도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대통령의 친형이나 부인 등의 전화번호가 새나왔다는 것은 언뜻 보면 놀랄만한 일이지만 사실은 대단한 정보가 아니다”며 “한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엽기적인 요소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지적했다.

환구시보의 이 같은 지적은 중국의 입장과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된 영사들의 얼굴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하면서 덩 씨의 사진만 백일하에 공개하는 대다수 한국 언론의 보도가 ‘엽기적’이라는 이들의 비판을 그냥 흘려들을 수만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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