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마녀’, ‘처녀귀신’을 비롯한 괴물들과 심지어 역사 속의 ‘진성여왕’까지 ‘괴물화된 여성’은 남성으로 대표되는 대중들을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전래괴담 속에서 홀리는 대상은 아름답지만 비천한(혹은 천박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여성이며, 홀려지는 대상은 고귀한 신분의 남성들이 대부분이었다. 처녀귀신과 구미호 등 ‘여성성’으로 상징되는 전래괴담 속 공포의 대상은 가부장제 질서의 피해자였다는 점에서, 그것을 맞닥뜨리는 (남성적) 사회를 더욱 무섭게 위협했던 것이다. 이렇게 괴담은 나름의 전형성을 바탕으로 그 사회의 병적인 부분을 노출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고전 괴담, 체제전복 두려운 기득권의 공포 … 사회의 문제 노출하며 대중의 사랑 얻어

하지만 얼마 전 시작한 KBS <구미호 : 여우누이뎐>(이하 <구미호>)은 이런 전형성을 탈피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구미호’ 스토리를 선보인다. <구미호>는 구미호 구산댁(한은정)이 인간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반인반수인 딸 연이(김유정)와 함께 살아가던 중 딸 초옥(서신애)의 치료를 위해 연이가 필요한 윤두수(장현성)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 KBS 드라마 '구미호 : 여우누이뎐'  
 
<구미호>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그 이전의 이야기들과 차별성을 갖는다. 첫 번째는 구미호가 인간이 되길 간절히 원치는 않는다는 점, 두 번째는 구미호가 인간의 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구미호의 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들은 충분히 전복적이며 흥미롭다. 드라마 <구미호>는 구미호 이야기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설정을 뒤집음으로써 구미호가 가지고 있는 ‘피해자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것인데, 이성의 지배가 공고화된 현대에 이르러 더 이상 ‘구미호’라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원초적 공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우리 사회가 실제로 타자를 착취하고 배척했으면 했지, 그 타자에 의해 큰 피해나 손해를 입고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현대적으로 타당한 설정이다.

요즘 괴담에서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 공포의 원형을 구성하던 귀신의 존재가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사라지고 그 자리가 ‘실재(實在)’하는 대상으로 치환됐다는 점이다. 일례로 밤중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이코패스, 할머니와 봉고차 인신매매 등, 더 이상 전래되는 이야기에 의한 공포보다는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위험을 더욱 공포스럽게 느낀다고 볼 수 있다. <구미호>에서도 구미호가 단순히 초자연적인 괴물이라는 설정만으로는 결코 효과적으로 공포를 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설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시청자들이 맞닥뜨리는 공포는 ‘연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연이’를 위험에 빠뜨리게 만드는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근래의 괴담, 귀신 대신 실재 대상이 공포의 근원으로 … 살인마와 인신매매 등

<구미호>에서 연이가 보여주는 캐릭터는 다분히 상징적이다. 파탄난 가정의 딸이며, 혼혈이고, 미천하고, 가난하며, 어리다. 연이가 “제가 괴물인가요?”라고 묻는 질문은 그런 의미에서 <구미호>라는 드라마의 전복적인 특성을 잘 보여준다. 사실 구미호가 아니더라도 이런 계급을 가진 연이는 배척받았을 것이다. 거기다 ‘구미호’라는 괴물성으로 인해 더욱 크게 착취당할 무언가를 갖고 있는 것이다. 흡사 자본에 의해 소비되는 ‘엑조틱한 섹슈얼리티’처럼 ‘간’으로 상징되는 착취물은 그녀가 다르기 때문에 배척받다가도, 다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이용되는 한국사회의 ‘타자’ 소비패턴과 무서울 만큼 닮아 있다. 연이에게 가해지는 ‘실제적인’ 위협들은 이렇게 그녀가 연약한 소녀라는 점에서 더욱 부각된다.

윤두수로 상징되는 가부장제 안에 포섭되는 것과 그것을 벗어나는 것 모두 연이에겐 죽음  뿐이다. 구산댁 모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생존본능 덕분이기도 하지만 연이를 ‘필요’로 하는 윤두수가 구산댁 모녀를 초옥의 치료에 필요한 간을 위해 ‘먹여 살리고(feeding)’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구성이지만, ‘구미호’라는 초자연성을 갖고도 남성적 힘과 권력, 체계로 상징되는 윤두수 등을 결코 물리치지 못한다는 설정은 이제는 여성적 초자연성이, 과학적 힘과 제도를 균열내기 힘들다는 상징으로도 읽힌다.

구미호의 목숨줄 쥐고 있는 인간 … 한국사회 타자 소비패턴과 무서울 만큼 닮아 

연이의 처지는 비단 외국인 노동자나 미혼모, 최저계층 등 계급과 인종의 문제 뿐 아니라 사회적 영역에서는 강간의 위험에, 내부적으로는 가부장적 폭력에 맞닥뜨려 있는 어린 여성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거기에 ‘간’을 필요로 하는 초옥의 문제까지…. 1세계 부잣집 자식을 살리기 위해 희생되는 3세계 극빈자 자녀의 문제는 이미 인도에서는 비일비재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말이다.

연이가 처한 극심한 딜레마는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는 문제다. 인간의 질서에 포섭되어 장기를 ‘착취’ 당하고 종으로 살 것인가, 그것을 벗어나 퇴마사에게 ‘죽임’을 당할 것인가? 소비사회의 종으로 살 것인가, 저항하다 외면당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연이는 무엇을 선택하든 죽음뿐이다. 현대의 돌연변이 <구미호>가 보여주는 공포의 원형은 여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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