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얼마전까지만해도 ‘전·노 구속 처벌’이란 학생들의 구호는 그 요구의 역사적 정당성을 획득하기보다는 철없는 학생들의 ‘과격’한 몸짓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그리고 항상 요구해왔던 준엄한 과제로 돌변했다.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한 가차없는 질타와 찌를듯한 분노가 신문과 방송의 지면과 화면을 뒤덮고 있다. 그날의 광주, 그날의 군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TV는 긴급히 편성된 ‘보도특집’을 통해 5월의 폭력과 비극, 그리고 광주의 피와 눈물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그리고 자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매년 5월 방송사 노조가 중심이 되어 5·18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뤄줄 것을 촉구해왔음에도 끄덕도 하지 않던 방송사들이었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그들이 5월의 문제를 다루지 ‘못한’ 것은 군부의 총칼 때문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솔직히 우리는 그들의 요란스런 보도 태도에서 어떠한 진정성도 느낄 수 없다. 침묵으로 그리고 당대의 권력이 정해준 언어로만 그날을 묘사하고 해석해왔던 우리 언론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5·18을 보도하는 언론을 보고 느끼는 것은 ‘달라짐’보다는 ‘한결같음’이다.

5·18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우리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역사적 과제라는 언론들의 주장은 전두환·노태우씨의 등장 역시 ‘역사’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해준 자신들의 전과로 인해 전혀 역사적 무게를 품지 못한다.

고뇌하는 머리와 아파하는 가슴은 찾아 볼 수 없는 그저 힘만 센, 권력의 ‘머슴’같은 모습으로 우리 언론은 존재해왔다. 이것이 부당한 평가인가. 그렇지 않다.

국보위 입법위원으로 행세했던 유력 조간지의 회장이 그같은 행위를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 자신의 선택’이라고 강변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돈을 번 ‘언론자본가’의 솔직한 뻔뻔함을 읽을 수 있다. 75년과 80년에 자행됐던 언론인 대량 ‘해고’ 사태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음에도 이에 대한 원상회복의 움직임이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언론의 과거 청산이 여전히 요원하다는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신문의 지면과 화면 그 어디에도 진지하고 성찰적인 자기 반성의 본격적 고백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언론의 한없이 가벼운 기회주의적 속성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권력이 정해준 언어와 논리를 외쳐대는 앵무새같은 우리 언론의 저 도저한 ‘권력추종적’ 생리는 여전히 우리 언론을 설명하는 가장 중심적인 키워드인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생리는 현재 진행중인 5·18보도에서도 변함이 없다. 언론은 ‘역사청산’이라는 당위적 과제와 ‘권력투쟁’이라는 당대적 정치 현상이 마구 뒤엉켜 돌아가는 현실을 충분히 그리고 정확하게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다.

언론에서 부각되는 것은 ‘역사 청산의 위대한 작업’이고 은폐되고 있는 것은 ‘권력투쟁’의 적나라한 이면이다. 현집권세력의 입맛에 딱 맞아떨어지는 보도태도이다. 그리고 이것은 언론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당대 권력에 대한 변함없는 추종의 결과인 것이다.

전·노씨의 구속을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추상같은 역사 청산에 언론이 주체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기여해주기를 바라면서 하는 우리의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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