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시작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뜨거운 형제들’이 파업으로 주춤한 KBS <해피선데이> ‘1박2일’을 상대로 선전하고 있는 지금, SBS에서는 유재석을 재영입해 <일요일이 좋다>의 새 코너인 ‘런닝맨’을 런칭했다. MBC <무한도전>이 50회가 넘어서야 특유의 캐릭터와 프로그램 특성을 잡았고, ‘1박2일’도 자리를 잡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던 만큼 아직 초반인 ‘런닝맨’과 ‘뜨거운 형제들’의 성패에 대해 논하는 건 확실히 시기상조다.

<무한도전>과 ‘1박2일’이 만들고 뿌리내린 ‘리얼 버라이어티’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리스크도 클 뿐더러 이미 경쟁 프로그램 들이 어느 정도의 소재 확장을 끝낸 상태라 차별성을 가져가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후발 주자인 두 프로그램이 택한 전략은 ‘레이스’(경주)와 ‘아바타 시스템’이다.<무한도전>과 같은 경우 상황만 던져주면 캐릭터가 일정 수준 알아서 움직여 주기 때문에 어떤 영역으로든지 확장이 가능하다. 반대의 전략을 택한 ‘1박2일’은 여행이라는 어느 정도 ‘루틴’한 포맷 안에 남자 여럿이 함께 길을 떠났을 경우 그에 반응하는 캐릭터를 주된 재미로 하고 있다.

   
  ▲ ⓒMBC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포맷에 집중하고자 하는 ‘런닝맨’과 ‘뜨거운 형제들’의 포맷은 ‘1박2일’스럽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프로그램의 관건은 ‘1박2일’이 ‘여행’이라는 확실하고도 확장 가능한 컨셉을 활용했던 것처럼 무엇을 프로그램의 ‘시그니처’로 만들 것인가로 연결된다. ‘런닝맨’은 거대한 도시 아케이드를 밀폐된 공간으로 설정, 그곳에 플레이어들을 풀어놓고 아이템(대부분 돈)을 획득하게 한 후, 팀별 배틀을 통해 상대방이 획득한 상금을 다시 뺐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진 금액이 큰 쪽이 승리하게 된다. 아주 새로운 설정은 아니다. 돈을 쫓아 경쟁을 벌이는 것은 멀게는 NBC <어메이징 레이스>, 가깝게는 <무한도전> ‘돈가방을 들고 튀어라’에서 보였던 설정이니 말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돈가방 체이스’ 형식에 더해진 ‘런닝맨’의 이러한 설정이 마치 컴퓨터 게임을 보는 것 같다는 점이다. 넓은 필드에서 ‘노가다’를 통해 ‘아이템’과 ‘골드’를 획득하고 다른 플레이어와의 거래나 결투를 통해 아이템을 교환 혹은 탈취하는 것은 ‘리니지’ 등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의 기본 게임 방식이다. 또한 게임 스페이스 속 캐릭터가 결코 현실 세계로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런닝맨’의 공간은 밀폐되어 있다.

   
  ▲ ⓒSBS  
 
이는 ‘런닝맨’ 속 공간을 현실과 철저히 분리된 가상공간으로 만들어내는 효과로 작용하며 프로그램과 출연진의 ‘게임성’을 극대화 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캐릭터 중심 버라이어티에 비해 등장 인물들이 ‘게임판의 말’처럼 별다른 캐릭터 특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다분히 구축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캐릭터를 통한 재미보다는 스피디한 사건의 재미에 집중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MBC ‘뜨거운 형제들’의 경우 프로그램에서 밝히고 있다시피 주된 포맷은 ‘아바타 시스템’이다. ‘아바타’는 가상현실 속 자신의 시각적 분신을 뜻하는 말이다. 게임 유저들은 가끔 게임 현실 속 아바타들에게 춤을 추게 하기도 하며, 엽기적인 행동을 하도록 조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비노기’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등의 게임에서 유저들이 아바타를 통해 황당 영상이나 엽기 춤을 추게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뜨거운 형제들’의 경우 가상 현실 속 캐릭터인 ‘아바타’라는 네이밍에서 알 수 있듯, 캐릭터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경우이며, 방송 초기에 상황극을 통해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많은 시간 공을 들였다.
새롭게 런칭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각각 게임에서, 영화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모티브를 빌려왔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로 흥미롭다. 기존에는 단순한 코너나 출연진의 토크를 통해 보여졌던 다른 장르의 문화가 프로그램 ‘구조’에 영향을 미친 것이기 때문이다.

다분히 ‘하이브리드’한 이런 설정은 무한한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 TV 프로그램이라는 플랫폼이 예능을 통해 변화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전까지 코미디와 공익성을 결합시킨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같은 ‘공익 예능’이 TV 프로그램의 내부적 형태의 결합이라면 ‘뜨거운 형제들’이나 ‘런닝맨’이 보여주는 확장성은 플랫폼을 넘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이후 <무한도전>으로 시작된 버라이어티의 영역 확장은 2010년이 된 지금 패러디나 풍자 등의 텍스트 내부의 하이브리드를 넘어, 형식적 부분의 하이브리드 가능성까지 엿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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