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피의사실 공표를 방지하기 위해 그동안 관행적으로 용인돼 오던 기자들의 구속 영장 열람 등을 금지한 데 대해 기자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집단적 대응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기자들은 영장 열람 등이 금지되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는 반면 법원은 피의사실 공표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법정신에 비춰봐서도 영장 열람 금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불편하지만 탓할 수 없어” 
                  vs
“수사 은폐 방지 위해 공개해야”
“검찰, 법원에 책임 전가”

노무현 전 대통령,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등 거물 정치인은 물론 일반 형사사건에서도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피의사실공표는 형법 126조에서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다. 현행법상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하면서 얻은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돼 있을 정도로 무거운 중죄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사기관과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분으로 그동안 공공연하게 이를 어겨왔던 게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에 이어 지난 연말부터 한 전 총리의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이 언론에 잇달아 보도되자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는 피의사실공표 문제를 주요 사안으로 다루고 있다. 여야 의원 할 것 없이 이를 질타하자, 법원은 지난 21일 그 대응책을 내놓았다. 기자들의 영장 열람과 복사를 허용하지 않고, 구두로 그 범죄사실의 요지 등을 알려주는 것도 막겠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이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리는 것이 도마 위에 오르자, 법무부가 법원도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있다며 전국 법원의 영장 열람 및 복사 현황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법원의 ‘인신구속사무의 처리에 관한 예규’가 개정됐고, 법원은 앞으로 기자들이 먼저 영장청구사실을 알고 문의하는 경우에 한해 소극적으로 영장 발부 여부를 확인해 주는 정도로 관련 공보 업무를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또한 이미 언론에 보도되어 공지된 사건이나 검찰에서 보도준칙에 따라 브리핑한 사건, 사회적으로 이목을 끄는 중요사건 등에 한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당장 법원출입기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법조기자들은 회의를 열어 정치부 기자들이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들을 만나보는 안과 법원·검찰에 기자단 의견을 모아 전달하는 안 등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장을 못 보는 데 따른 국민의 알 권리 침해 등의 폐해와, 언론의 국가기관 감시기능이 저하된다는 점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각사가 협조해 비슷한 시기에 이런 점을 강조한 기사를 내는 방안도 검토됐다. 실제로 지난 23일과 24일 전국단위언론사들은 <“피의사실 공표죄, 알 권리와 조화돼야”> 등의 제목으로 이에 부합한 한 세미나 기사를 일제히 보도했다.

   
  ▲ 이용호 기자  
 
이에 대해 한 법조기자는 “법원이 영장을 안 보여준다면 불편하겠지만 뭐라 말하긴 어려운 건 사실”이라며 “정작 검찰에서 새는 게 많은데 법원 탓 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몸통’은 제쳐둔 채 곁가지를 문제 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서울의 한 신문사 사회부장은 29일 “언론사 입장에서는 취재편의 측면, 그리고 수사 은폐에 대한 견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관행대로 영장 공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피의사실공표 문제도 중요한 문제이긴 하나 어떤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지도 공개되지 않는다면 국민 알 권리 보장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라며 “피의자 인권 등과 이해가 상충될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언론사의 몫인 만큼 언론의 취재 접근권도 어느 정도는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검찰이 이번 기회에 피의사실공표의 책임을 법원에 전가하려고 하는 모습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주로 검찰에서 문제가 돼왔는데, 엉뚱하게 법원으로 그 공이 넘어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바라보는 학계의 시각은 법원의 조치를 적극 반기는 쪽이다.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영장 열람이라는 올바르지 않은 관행을 금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알 권리가 중요하긴 하나 그 것이 한 나라에 존재하는 유일한 권리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는 것이 중요한데 판사가 결론내리기 전에 언론들이 이미 다 결론을 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행정학)는 “국민의 알 권리는 피의사실공표 금지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보장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검찰이 공공연하게, 또 편의적으로 피의사실과 수사정보를 언론에 발표하고 흘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편 이귀남 법무부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피의사실공표 금지는 검찰개혁 부분 중 하나”라며 “피의사실공표죄의 구성 요건이 굉장히 어렵게 돼있어 구성요건을 고치는 것도 검토 대상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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