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피의사실 공표죄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질 수 있는 무거운 범법 행위다. 하지만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한 형법 126조는 사실상 사문화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피의사실 공표로 피해를 입었다는 사람은 많지만, 이 때문에 처벌받은 경우는 지난 10년간 단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월23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2차 회의에서 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이귀남 법무부장관을 앞에 놓고 검찰의 피의사실공표를 질타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피의사실공표죄와 관련된 고소·고발이 202건이나 접수됐지만 단 1건도 처벌된 적이 없다는 점이 도마에 올랐다.

이날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 검찰이 40회 브리핑을 했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공소 제기 전에 21건의 기사가 났다”며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봐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된 것은 지금까지 말뿐이고 전혀 개선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의 경우 피의사실공표가 ‘무혐의’ 또는 ‘일부 죄가 안 됨’ 처분으로 종결됐다. 박 의원은 또한 “서울지검장은 3월14일 ‘번개팅브리핑’에서 기자들이 원하지도 않는데 또 브리핑을 했다”며 “피의사실 공표라든가 검찰의 언론플레이가 재판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적절하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이 장관은 “적절한 부분도 있고 좀 부적절한 부분도 있다”며 대답을 얼버무렸다. 송훈석 무소속 의원의 “결국은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봐줬기 때문이다. 직무유기가 아닌가”라는 지적에도 이 장관은 “피의사실공표죄의 구성요건이 굉장히 까다롭다”고만 답했다. 그러자 송 의원은 “200여건 중에서 범죄가 성립되는 게 거의 없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의원도 가세했다. 손범규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정권 때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관련된 피의사실을 계속 시리즈로 공표하다가 대통령선거에 치명적인 영향을 줬다. 집권당이 바뀌니까 이제는 또 검찰이 마치 한나라당의 정파적 이익을 위해 특정 정치인의 피의사실을 계속 유포하는 것으로 입장이 바뀌었다”며 “검찰권이 계속 기소독점권을 가지고 있고 동료 감싸기를 하는 한 형법 126조는 완전히 사문화 된다”고 지적했다.

손 의원은 이어 “피의사실 공표를 하는 검사나 경찰이 있으면 검사는 경찰에 의해 기소당하고 경찰은 검찰에 의해 기소당해야 한다”며 “아니면 재정신청으로 법원이 강제기소를 하든지 1건이라도 하지 않으면 피의사실 공표의 악습은 절대로 없어질 수가 없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재정신청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폐단을 막는 제도로 특정범죄사건을 검사가 불기소 처분했을 때 고등법원이 고소인이나 고발인의 신청에 따라 지법에 맡기면 공소가 제기되는 것으로 보는 절차다.

손 의원은 “검찰이 단 1건이라도 살을 깎는 아픔으로 기소를 하지 않고 계속 이렇게 가면 이 문제는 절대로 국민에게 용납될 수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의원들의 잇단 질책에도 이 장관은 “피의사실공표 부분은 여러 가지로 단속하고 있지만 아직도 좀 부족한 점이 있어 계속 노력하려 하고 있다. 다만 검찰에서는 ‘스스로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은 아니다’라고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다”고 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피의사실공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다수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지난 10년간 피의사실 공표로 처벌받은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는 의원들의 지적은 국회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석 달 뒤 ‘몸통’인 검찰은 빠진 채 ‘깃털’인 법원 영장계로 피의사실공표의 ‘불똥’이 튀었다. 그 때 침묵했던 언론들의 목소리도 무척이나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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