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과 껄끄러운 관계만 맺었던 것은 아니었다. 부산 변호사 출신 국회의원 노무현이 ‘전국구 정치인’이 될 수 있었던 계기는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였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냈고,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당시 언론보도에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5공비리 청문회 때) 보도가 하나같이 입지전적 성공담으로 흘렀다”면서 “불우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사회구조를 변혁하고 노동자들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정치활동의 목표라고, 내가 주로 하는 일이 그것이라고 누누이 강조를 했지만 기사에는 모조리 잘려 나가고 없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언론법 파동 당시 민주당 의원 일부는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다. 당시 그들의 선택을 놓고 다양한 평가가 오갔다. 유사한 일이 1990년 방송법 날치기 사건 당시에도 있었다.

   
  ▲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처음으로 맞는 주말인 지난 2008년 3월1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며 관광객들과 함께 산책을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7월 민자당이 병역법과 방송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노무현) 이해찬 김정길 이철 네 사람이 여당의 횡포를 규탄하면서 의원직 사퇴서를 냈다. 모든 신문이 대서특필했다. 국회에서는 돌출행동이라고 욕을 들었지만 결국 야당의원 전원의 동반사퇴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노 전 대통령은 라디오 방송 진행 경험도 있다. 그는 “SBS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 진행자로 잠시 방송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잠깐이었지만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고 평가했다.

2000년 4월13일 16대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해 낙선했던 선거 당일 노 전 대통령 마음을 위로했던 책은 월간조선 별책부록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만 (낙선이) 세 번째였다. 역시 안 되는구나. 이제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이 막막했다”면서 “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월간조선 2000년 4월호 별책부록 ‘세계를 감동시킨 위대한 연설들’이었다.…링컨의 연설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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