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출간한 ‘운명이다(돌베게-유시민 정리)’는 그의 출생부터 서거까지 인생 전체를 기록한 처음이자 마지막 자서전이다. 그가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각종 인터뷰, 구술기록 등을 토대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서전 형태로 정리했다. 자서전에는 노 전 대통령의 ‘언론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 편집자

“2009년 5월23일 아침 우리가 본 것은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아니라 ‘꿈 많았던 청년의 죽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시민 전 장관은 ‘운명이다’ 에필로그를 통해 이렇게 설명했다. 민주주의와 진보의 꿈을 잃기 싫었던 전직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한 사건은 한국 정치와 언론의 현실과 무관치 않다.

세상을 떠나자 500만 명의 조문객을 몰고 온 그는 시대의 영웅일까. 일부 언론은 그를 영웅으로 미화했고, 일부 언론은 여전한 ‘냉소’를 거두지 않았다. 검찰발 받아쓰기 보도로 그를 인격 살인했던 그 언론들은 반성 하나 없이 다시 극과 극의 행보를 보였다. 영웅 미화도, 여전한 냉소도 정치인 노무현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이다'  
 

그는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자신을 평가했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지, 어쩌면 그것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리던 그가 전하려 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노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와 검찰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라고 조롱했다”면서 “그들은 나의 실패를 진보의 실패로 만들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이었다. 언론은 그를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가두려 했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과 맞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줬다. 노 전 대통령은 “20년 정치를 하는 동안 언론과는 늘 불편한 관계였다”면서 “조선일보를 위시한 보수신문들은 특별하게 불편한 관계였다”라고 회상했다.

조선일보와 악연 그 시작은

조선일보와 정면으로 맞섰던 몇 안 되는 정치인, 비극적인 결말을 피하지 못했던 정치인, 그 ‘악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조선일보는 1991년 9월17일 정치인 노무현이 통합민주당 대변인 발령을 받았을 때 “고졸 변호사 의원직 사퇴서 제출 촌극을 빚는 등 지나치게 인기를 의식한다는 지적도. 한때 부산 요트클럽 회장으로 개인 요트를 소유하는 등 상당한 재산가”라는 인물평을 냈다. 노 전 대통령은 “참으로 야박한 인물평”이라고 평가했다.

얼마 후 주간조선은 <노무현 의원은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노 전 대통령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사가 났다”면서 “내가 조선일보와 벌였던 그 기나긴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고 자서전에서 평가했다. 조선일보가 그런 보도를 내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 지난 8일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콘서트 무대배경은 화가 임옥상 씨가 꼬박 3일 동안 매달려 완성한 작품이다. 1년 전 장례식 때 지지자들이 노란 리본에 글씨를 써서 매달았던 것을 모아 그물 위에 밀짚모자를 쓴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얼굴을 형상화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이 악연이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일보’ 지국 신문배달 소년들과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통합민주당 대변인 발령 1년쯤 전 어떤 청년이 조선일보 배달 소년들을 데리고 무작정 의원회관 사무실로 찾아온 적이 있었다. 노조 비슷한 조직을 만들어 근무조건 개선을 요구했더니 지국장이 본사 직원으로 교체되고 배달원이 모두 잘렸다는 것이었다.”

언론인의 동업자 의식에 절망감

노 전 대통령은 “당을 출입하던 조선일보 기자가 전화를 걸어 위협적인 말투로 손을 떼라고 했다”면서 “나는 기자면 기자답게 하라. 협박하지 말라고 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조선일보 보도와 관련해 법정 다툼까지 벌인 끝에 민사소송에서 이겼지만, 판결 결과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인들의 ‘동업자 의식’에 커다란 절망감을 느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조선일보와 부딪혔다. 노 전 대통령은 2001년 6월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조선일보는 독재 권력과의 야합으로 부정과 특혜를 쌓아 올린 기득권 세력”이라고 평가했다. 또 9월12일 개인성명을 통해 “조선일보는 이회창 기관지이며 조선일보와 이회창 총재가 똑같은 수구냉전 특권세력”이라고 평가했다. 11월13일에는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를 당 홈페이지에 올렸다. 조선일보의 권위를 높여 주는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았고, 조선일보의 장사거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는 이유였다.

민주주의 당면과제는 언론 제자리 찾기

노 전 대통령은 대선이 열린 2002년 12월19일 아침 조선일보 지면을 잊지 않았다. 정치적인 협력자였던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 21’ 대표는 전날 노무현 지지철회를 선언했다. 조선일보는 12월19일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는 사설을 내보냈다. 노 전 대통령은 “조선일보를 보았다. 내 속도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고 당시 심경을 밝혔다.

노 전 대통령도 거대 언론과 싸우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내심 대통령 선거 출마를 검토하고 있던 정치인으로서 거대신문의 집중 포화를 받는 것이 무섭고 겁이 나기는 했다”고 말했다. 그 두려움을 알면서도 언론과 맞선 이유는 무엇일까.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는 언론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언론의 부당한 특권, 정치권력과 언론 권력의 유착을 반드시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경고와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보수정권과 유착해 갖가지 이익을 누리고 있지만, 상황이 달라지면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을 짓밟았던 것처럼 이명박 대통령도 짓밟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출 받지 않은 권력이지만, ‘언론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진보정당 보수정당을 막론하고 언론에 잘 보이려 애쓰고,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조심하는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와 다른 길을 걸었다. 언론권력과 정면으로 맞섰던 그의 정치 인생은 대통령 국정운영 5년의 평가와는 별도의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역이다. 그가 남긴 말과 함께.

“나는 언론 앞에서 비굴하지 않은 당당한 대통령이고자 했다. 그뿐이다. …(언론권력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싸움이었다. 그렇게 믿었기에, 패배했지만 끝까지 포기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