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할 일은 아니었으나, 우리 부부도 조촐히 기념의 잔을 들었다. 설치류와 변견(便犬)을 안주 삼아 씹으며 술잔이 두어 순배 돌 즈음, 아내가 처음으로 체포와 압수수색 당시 이야기를 자세히 하기 시작했다. 제작진 중 처음으로 체포된 작년 3월25일 밤, 아내는 전전반측 잠 못 들며 내 옷가지를 챙겼다고 한다.

“이춘근을 석방하라!” “언론탄압 중단하라!”

다음 날 아침 서초 경찰서에서 수갑을 찬 채 질질 끌려가던 나는 아내의 얼굴을 볼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짐짝 구겨지듯 태워진 호송차량이 사라지고도 한참 후에야 아내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고 했다. 춘삼월치고는 매서웠던 바람에 아내는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고 했다.

아내가 마포의 신혼집에 돌아와 한숨 돌리려는 찰나 초인종이 울리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단다. 혼자 있어서 걱정이 앞섰던 아내는 회사에 연락을 했고 기자들이 집에 도착한 후에야 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 검찰에 긴급체포 됐다 지난해 3월 27일 풀려난 이춘근 전 MBC PD. 이치열 기자 truth710@  
 

“기자들은 압수수색 촬영하지 마세요. 공무집행 방해입니다.” “방해 안 하고 찍을 테니 압수수색 하세요.”

집에 온 수사관들은 기자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전화 몇 통화를 하더니 압수수색을 시작했다고 한다. 수차례 이어진 아내의 요구에 수사관은 마지못해 영장을 자세히 보여줬다고 한다.

“아니 아저씨, 이 촬영금지는 기자들 촬영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아저씨들 더러 압수수색 범위 외에 촬영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아내는 이때부터 체포 이후 구속 가능성을 생각하며 뿔테안경을 준비하고, 사식은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알아보고 했단다. 전날 체포될 때에도 영장을 대충 보여주던 수사관, 변호사에게 전화하는 것도 시비 걸던 수사관에 이제는 한글로 된 공문서를 왜곡 해석한 수사관까지 참 가지가지다.

하지만 아레사 빈슨 부모의 소장을 왜곡한 정치검사의 범죄행위에 비하면 수사관들은 애교에 가깝다. 체포 중 나를 취조하던 박길배 김경수 두 검사가 몇몇 신문기사를 본 뒤 들으라는 듯 대화를 나눴다.

“검찰, 너희를 역사가 심판하리라? 역사가 우리를 심판하나?” “역사든 뭐든 심판하나 보지.”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법률가의 양심도 저버리고, 역사 의식도 없는 검사들은 과연 무엇을 마음에 새기며 공무에 임한단 말인가. 그들은 정말 살아있는 권력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충견에 불과하단 말인가.

창설 이후 최고의 숫자인 연인원 10명의 검사가 붙고도 유죄판결을 이끌어 내지 못한 검찰은 기소독점권 남용을 부끄러워 해야 할 판인데, 총장님은 국민이 불안해한다며 번지수를 잘못 찾고 계신다.

중립의무를 저버리며 정치꾼들의 앞잡이가 되는 검사들이 내부에서 스스로 개혁하기를 바라는 기대는 이제 접는 게 낳지 않을까. 지금 바로 이곳에서 심판하여 역사에 남기는 것이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에게 줄 수 있는 최후의 교훈이라 믿는다. 검찰총장 선출, 기소독점권 폐지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검찰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동료와 후배들이 대신 사과할 일을 더는 만들지 말라는 최후의 충언을 정치검사와 그 오욕의 길에 들어서려는 검사들에게 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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