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당불기(倜儻不羈)라는 말이 있다.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서 남에게 얽매이거나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글귀만 두고 보면 매력적인 글귀다. 하지만 정치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뜻도 크고 기개도 있어야 된다. 하지만 아무리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도, 소통하지 못하는 ‘불통’의 인간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한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끝내 진주의료원 폐업을 강행했다. 여당과 정부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홍 지사의 뜻과 기개를 꺾지는 못했다. 진주의료원 폐업 방침을 발표한 이후, 불과 90일만의 일이다. 그런데 홍 지사는 왜 103년 역사의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려고 하는 것인가. 279억 원에 이르는 누적적자 때문인가, 아니면 강성귀족노조 때문인가.

이번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는 지방의 한 의료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34개 공공의료기관, 나아가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체계와 문제점이 집약된 사건이다. 예전 같으면 ‘지방의 공공병원 하나 문 닫는다 카더라’ 수준으로 끝났겠지만 상황이 심상치 않다. 공공의료에 무차별적으로 가해졌던 ‘적자 프레임’이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를 계기로 ‘건강한 적자’론에 밀려 힘을 잃고 있음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여야가 6월 임시회에서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는 국민적 관심을 등에 업고 공공의료 존폐의 중대한 기로에서 전환기적 사건이 된 것이다.

변방의 공공의료기관이 이렇게 큰 국민적 관심을 받게 된 이유는 바로 홍 지사 덕분이다. 우선 홍 지사는 진주의료원이 방만 운영으로 적자를 냈다는 이유로 폐업의 명분을 쌓았다. 경남도가 당연히 부담해야 할 부채나 장부상 회계에서 나타난 수치만을 가지고 막대한 부채가 있는 냥 선전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남도는 진주의료원의 마지막 환자 3명을 강제 퇴원시키기 위해 퇴원명령도 불사했다. 게다가 퇴원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는 내용증명까지 보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건강한 적자론이 힘을 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명분이 없으니 결국 ‘강성귀족노조 카드’를 꺼내들었다.

홍 지사는 다음 명분으로 진주의료원 노조에 ‘강성’, ‘귀족’ 이미지를 덧씌우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기주의자들로 낙인찍었다. 하지만 진주의료원 노조원들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지난 2008년부터 6년간 임금동결에 합의했다. 이번 단체교섭에서도 노조는 인건비를 대폭 축소하여 고통을 분담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폐업만 부르짖으며 강경일변도로 밀어붙인 쪽은 오히려 홍 지사였다. 이러한 홍 지사의 폐업강행은 국민의 관심을 공분으로 바꾸는데 충분했다. 국민들과 지역주민, 그리고 정치인까지 나서서 홍 지사를 말리고 있지만 홍 지사가 이토록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9년 초 개각 논의가 무르익을 때쯤 한나라당 원내대표였던 홍 지사는 “법무부 장관이 되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고 한 번 돌려 보고 싶다”고. 지난 4월 6일, 진주의료원 폐업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자 홍 지사는 “안티가 가장 많은 사람이 지도자가 된다”고 말했다. 홍 지사의 거친 발언들을 유추해 보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대통령”이 되고 싶어 진주의료원을 “세탁기”에 한 번 돌려 보려고 했고 결국 “안티”가 가장 많은 도지사가 된 것이다. 이것이 홍준표식 뜻과 기개의 결과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국가의 공공성을 축소시키는 정치인을 국민들은 절대 용납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의료공공성이라는 화두가 한국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공공의료를 확대하겠다고 국민과 약속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진주의료원 폐업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공공의료 확대에 역행한 홍 지사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이번 국회에서 실시할 공공의료 정상화를 위한 국정조사는 최우선으로 홍 지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자리가 될 것이다.

2011년, 홍준표 지사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 자신의 방에 걸려 있던 ‘척당불기(倜儻不羈)’라는 액자에 오자가 발견되어 급히 액자를 내렸다. 평소 자신이 한 동안 즐겨 쓰던 말이었지만 그 자리에 ‘의로운 자가 세상을 구한다’는 뜻의 ‘의자제세(義者濟世)’라는 액자를 걸었다고 한다. 홍 지사에게 묻는다. 정치적 야욕을 버리고 진주의료원을 다시 살릴 의로운 뜻과 기개를 펴 볼 생각이 없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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