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CPNT가 성립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지난 8일 한국방송학회 주최 ‘망중립성 정책과 전통 미디어 산업’ 토론회에서 나왔던 말이다. 콘텐츠(Contents), 플랫폼(Platform), 네트워크(Network), 단말기(Terminal) 사업자의 구분이 모호하게 된 시대가 됐다는 지적이다.

KT는 비통신 사업인 미디어 콘텐츠 사업에 나섰고, 포털 다음은 TV 단말기를 판매하며, 카카오톡은 망을 가진 통신사들의 수익을 위협하고 있다. 신문은 종합편성채널에, 지상파는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에 박차를 가하는 등 올드 미디어들도 뉴미디어 사업에 본격 나서고 있다. 옥신각신하고 있는 사이에, 구글·애플 TV 등의 국내 진출 움직임은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바야흐로 ‘미디어 춘추전국 시대’다.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은 치열해지고 시장은 급변하며 누구도 안주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각개약진’과 ‘이전투구’가 난무할 뿐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는 미디어 모델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현재 미디어 트렌드의 5가지 환상을 진단하고, 연재 형식으로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환상, 미디어의 미래가 곧 온다?

지난 2007년 미디어오늘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신문·방송 언론인 54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4.7%가 5년 뒤 지상파 위상이 낮아지고 신문의 위상에 대해서도 55.2%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반면, 뉴미디어로 분류된 대형 포털(63.9%), 인터넷 매체(62%), 통신(43.4%)에 대해서는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이 기사의 제목은 <매체 영향력 5년 후 뉴미디어↑ 신문·방송↓>이었다.
보도 당시 5년 뒤인 2012년에는 뉴미디어의 중흥기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이 같은 흐름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뉴미디어가 올드 미디어의 영향력을 넘어섰다고 현재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업계 전문가들은 드물다. 작년 10월 광고주협회가 밀워드브라운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만 명을 대상으로 대인면접조사를 한 결과, 영향력 면에서는 방송은 78%, 인터넷은 14%, 신문은 6%였다. ‘뉴스를 접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매체’는 여전히 KBS와 MBC였다.

두 번째 환상, 지상파는 곧 무너진다?

올드 미디어로 대표되는 지상파의 영향력이 하락되고 있다는 말은 흔히 회자되고 있다. 그 근거는 주로 시청률이다. AGB닐슨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KBS1 메인뉴스 시청률의 경우 2000년대 초반에 20% 이상이었지만 2000년 후반에 들어 15.8%까지 하락하는 등 감소했다.

드라마의 경우 1996년 방영된 KBS2<첫사랑>의 시청률이 65.8%로 나오는 등 2000년대 이전에는 시청률 60% 이상의 드라마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MBC<해를 품은 달> 최고시청률이 42.2%로 과거보다 대폭 감소했다.

그러나 조영신 박사(SK텔레콤 경제경영연구소)는 “지상파의 영업 이익은 감소하고 있지 않다”며 “지상파는 향후 5년 내에 더 (수익이) 좋아지지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 박사는 ‘KBS·MBC·SBS’, ‘지역방송’, ‘외주관계’, ‘콘텐츠 유통’ 등 지상파를 다양한 요소별로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혁 SBS 정책팀 차장은 “지금 지상파는 지상에서 전파를 쏘는 지상파라고 부르는 게 어색할 정도로 다양한 채널로 재송신 되고 있다”며 “인터넷 영역에서 여전히 지상파 콘텐츠가 소비되고 있지만 과거와 달리 컨트롤이 안 돼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있다”고 말했다.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시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 번째 환상, 신문도 곧 망한다?

최진순(사진) 한국경제신문 전략기획국 기자(중앙대 겸임교수)는 현재 신문의 현실을 “미디어 시장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로 여론 시장에서 남은 매체 경쟁력을 소진하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최 기자는 그 원인을 △멀티미디어 콘텐츠 및 플랫폼에 대한 투자 여력이 없고 △컨버전스 전략이 없으며 △공급과잉 구조의 개선이 어려운 실정 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e북이 뜬다고 출판 산업이 쇠락한다고 단정할 수 없듯이, 신문사별로 시대 변화에 따른 전략을 어떻게 마련하는지에 따라 쇠락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또 신문사가 망하더라도 방송보다 정보를 많이 담을 수 있는 신문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기 때문에 유통·콘텐츠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진순 기자는 △신뢰회복 △뉴스룸의 체질을 개방적이고 유연하게 개선 △과감한 인적 쇄신 △재무전략 등을 해법으로 주문했다.

네 번째 환상, 뉴미디어가 판을 뒤집는다?

새로운 서비스가 기존의 지상파를 얼마나 뛰어넘는 서비스를 과연 제공했는지도 진단이 필요하다. 해외에서는 넷플릭스, 훌루닷컴이 각광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CJ 헬로비전의 OTT 서비스인 티빙(Tving)은 오는 6월에 출시 2주년을 맞지만, 유료가입자가 현재 10만 명이 채 안 되고 있다.

IPTV는 가입자가 최근 500만 명을 돌파했지만 유무선 통신상품에 IPTV서비스를 저가할인 형식으로 끼어 팔아 가입자를 늘렸을 뿐, IPTV만의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KT와 KT스카이라이프의 결합상품 OTS가 출시 2년여 만에 120만 명 가입자(지난 2월 기준)를 돌파한 게 선방한 정도다.

또 글로벌 미디어를 목표로 한 종편의 경우 현재 의무 재송신이 사라지면 생존이 위협받는 수준이고 콘텐츠 측면에서도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카카오톡의 경우 가입자 2천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현재까지 수익 모델을 찾고 있지 못하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학술연구교수는 “뉴미디어 트렌드를 누가 빨리 읽느냐에 따라 시장 선두권이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섯번째 환상, 언론이 정보를 쥐고 있다?

케이블 업계의 한 뉴미디어 전문가는 “‘나는 언론인이니까 일반인이 모르는 정보로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현재의 콘텐츠 생산·유통 방식을 그대로 가져간다면 생존할 수 없다”며 “사람들이 원하는 취양, 기호까지도 알아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 주는 큐레이터 같은 언론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례로, 애플 TV가 음성 명령 체계를 통해 ‘스마트’하지 않은 명령을 듣고도 ‘스마트’하게 반응하는 것이 경쟁력인 것처럼, 다양한 정보가 일반인에게 유통되는 스마트 환경에서는 언론이 지금보다는 스마트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급자 위주에서 벗어나 시청자, 독자들의 수요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미디어 트렌드를 읽을 줄 아는 미디어와 언론인이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미디어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것이 언론인의 미래와도 연관돼 있는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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