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파업을 선동한 혐의로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MBC 노조 집행부입니다.

2명의 해고와 8건의 소송과 33억의 손해배상 가압류 신청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52일째(21일 기준) 싸우고 있습니다.  MBC 노조 역사상 최장기 파업 기록을 갱신했지만, 아직도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줄 모르고 하루하루 삽니다. 왜? 저는 항상 다음과 같은 자세로 인생을 삽니다.

“Expect the Worst, Hope for the Best.” 최악을 각오하고, 최고를 꿈꾼다.

어떤 일을 할 때, 두 가지만 생각합니다. 최악은 무엇이고, 최고는 무엇일까? 노조 집행부 제안이 왔을 때, 고민했죠. 해야 할까, 말아야할까? 집행부가 되었을 때, 최악과 최선은 무엇일까?

MB시대 언론인 해직은 명예

노조 집행부가 되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해고입니다.

해고가 과연 최악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존경하는 방송사 사장님들은 다 하나같이 해직 언론인 출신입니다. 김중배 MBC 전 사장님도, 정연주 KBS 전 사장님도 동아일보에서 해고된 분들이죠. 결국 MB 정권에서 해직 언론인이 된다는 것은 나 같은 딴따라 피디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 아닐까요? 

해고는 어찌 보면 내 오랜 꿈을 실천하는 최고의 기회가 될지 모릅니다. 제 꿈은, 가난한 선비가 되어 안빈낙도를 실천하는 삶이거든요. 시립 도서관에서 책 속에 파묻혀 살고, 북한산 둘레길 산책을 매일 즐기는 삶... 이건 나의 오랜 로망이 아니던가!

이렇게 생각해보니, 해고도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니더군요. 다시 최고의 결과를 생각해봤습니다.

내가 노조 집행부가 되어 꿈꾸는 최고의 결과, 딱 하나입니다. 공영방송 MBC의 정상화.

사람들을 만나면, ‘어제 피디수첩 정말 통쾌했다! 뉴스데스크를 보며, ‘역시 MBC뿐이야!’ 했다니까.’ 이런 얘기를 듣게 되는 게 노조 집행부가 되어 꿈꿀 수 있는 최선입니다. 아, 생각만 해도 몸이 찌릿찌릿해지는 황홀한 상상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에요. 불과 몇 년 전에는 늘 이런 얘기에 우쭐거렸으니까요. 돌이켜보니 참 아득한 옛날 같군요...

내가 각오한 최악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 내가 꿈꾸는 최고는 눈이 부신 미래다. 뭐가 문제입니까, 그냥 하면 되지.

항상 최악을 각오하고, 최고를 꿈꿉니다.

MBC를 사랑하는 사원인 제게, 최악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작년 가을 ‘나는 꼼수다’ FTA 반대 여의도 공연 때 5만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MBC 취재 카메라는 성난 군중에게 쫓겨났죠. 반년도 지나지 않아 지난 금요일 방송 3사 파업 콘서트에서 수만명의 시민들은 여의도 공원에 다시 모여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MBC 프리덤’을 연호했습니다. MBC인들에게 최악은 지나갔고, 최고만 남았습니다.

최악은 가고 최고만 남았다

매주 한 명씩 해고자가 나오는 싸움, MBC 역사상 가장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지만, 내 옆에는 해고도 아랑곳 않고 “MBC를 살려내자”며 싸우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내 눈에는 “역시 MBC가 최고야”라며 박수갈채를 보내는 시민들만 보입니다.

정직 3개월,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만큼,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최악은 두렵지 않고, 최고는 포기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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