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8기11중전회가 끝난 6일 뒤인 1966년 8월 18일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천안문) 광장에서 문화대혁명을 축하하는 군중대회가 백만 군중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 대규모의 군중대회의 참석자들은 대부분 베이징과 전국 각지에서 올라 온 청년학생들로 톈안먼 광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신중국 건국 이래 일찍이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마오쩌둥은 건국이후 처음으로 초록색 군복을 입고 톈안먼 성루에 올라 6시간동안 내내 서서 홍위병들의 사열을 받았다. 신화사 통신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보도했다. (주석 435)

“오늘 새벽 5시, 태양이 동쪽 지평선에서 막 떠오르면서 눈부신 햇살을 뿌리고 있었다. 마오 주석은 사람의 바다와 붉은 깃발(紅旗 홍기)이 숲을 이루는 톈안먼 광장을 뚫고 도착했다. 아침 일찍부터 사면팔방에서 이곳으로 모여든 혁명 군중들을 회견했다. 마오 주석은 초록색 군장을 갖춰 입었고, 주석의 군모에는 붉은 별이 번쩍번쩍 빛났다. 마오 주석은 톈안먼 앞 진수이챠오(金水橋 금수교)를 지나 곧바로 군중들의 대오 속으로 걸어갔다. 주위의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굳게 악수를 하고, 손을 흔들며 광장의 혁명 군중들에게 인사를 했다. 이때 광장이 들끓어 올랐다. 사람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마오 주석을 향해 펄쩍펄쩍 뛰며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많은 사람들은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환호하는 목소리로 ”마오 주석이 오셨다! 마오 주석이 우리들 사이로 오셨다!“고 외쳤다.

붉은 완장을 찬 수 만 명의 홍위병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톈안먼 성루의 동쪽에 있는 두 개의 사열대에는 홍위병의 대표들이 빽빽이 들어찼다. 사대여부중의 한 홍위병이 톈안먼 성루에 올라와 마오에게 ‘홍위병’이라 쓴 완장을 팔에 채워주었다. 마오와 이 학생 홍위병이 악수할 때 성루 위, 아래에 있던 홍위병들이 “마오 주석 만세!”를 부르며 일제히 환호했다. 흥분한 어떤 홍위병은 “마오 주석은 통솔자다, 우리들은 그의 졸병이다”라고 외쳤다. 어떤 홍위병은 “마오 주석이 우리들의 홍위병에 참가했다. 우리들을 최대로 지지하고 고무해 주었다. 마오 주석이 우리들을 후원하고 있다. 우리들은 어떠한 것도 두렵지 않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오전 10시 반. 중앙 문혁소조 조장인 천보다의 사회로 대회가 시작됐다. 린뱌오가 단상의 연단에 나와 연설했다.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자산계급 사상을 소멸하고 무산계급 사상을 수립하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을 개조하고 사람의 사상혁명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수정주의의 뿌리를 캐내 없애버리고 사회주의 제도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리들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를 타도하고, 자산계급 반동권위를 타도하고, 모든 자산계급의 보황파(保皇派 옹호세력을 말함)를 타도하고, 온갖 형태의 혁명을 억압하는 행위에 반대해 모든 마귀와 요귀를 타도하자! 우리들은 모든 착취계급의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관습을 크게 깨부수고, 모든 사회주의 경제기초의 부적합한 상층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우리들은 인간쓰레기를 쓸어버리고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자!”

대회가 끝난 뒤 백만여 명의 군중들은 시위대를 형성해 거리시위를 벌였다. 마오는 시위대의 사열을 받을 때 “이 운동의 규모가 대단히 크다. 확실하게 군중을 발동했다. 전국 인민들에 대한 사상혁명화는 대단히 큰 의의가 있다”고 기뻐했다. 신화사는 이날 행사를 보도하면서 8기11중전회에서 결정한 중앙 영도들의 서열순위와 관련해 류샤오치가 8위로 밀려난 사실을 보도했다. 이 내용은 중공중앙이 전회 공보에 실어 선포하기 전 이어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마오가 톈안먼 성루에서 홍위병을 접견한 ‘8월 18일 대회’는 문화대혁명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홍위병의 문화대혁명 운동이 폭풍처럼 거세게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전국을 석권하기 시작했다. 홍위병들은 호호탕탕한 기세로 학교를 벗어나 거리로 진출하면서 4가지 낡은 사상(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관습)을 타파한다는 4구(舊) 타파운동을 맹렬하게 펼쳐 ‘혁명조반(革命造反)’을 신속하게 전 사회에 확대시켰다.

대다수의 홍위병들은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정당한 ‘혁명행동’으로 여겼다. 정치적 의식이 미성숙한 홍위병들은 열정이  충만한 나머지 광적상태로 돌변해 무정부적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4구타파라는 미명아래 홍위병들은 거리로 나가 전통적인 유명 음식점들은 자산계급이 먹는 음식을 만들어 판다며 폐쇄시키는가 하면 톈안먼 앞을 동서로 관통하는 ‘창안졔(長安街 장안가)’ 거리를 마오의 혁명승리를 찬양하는 ‘둥방홍(東方紅 동방홍)’이란 이름으로 고치는 등 여기저기의 거리이름을 이데올로기적 이름으로 따다 붙였다. 심지어는 신호등의 정지신호인 빨간색은 혁명의 상징인데 정지신호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진행신호와 정지신호를 바꿔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황당한 사건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홍위병들은 ‘4구타파’, ‘혁명조반’의 기치아래 일반의 가택을 제멋대로 수색하고 가산을 몰수하는가 하면 ‘반동’이라는 이름아래 사람을 때려죽이는 등 법질서를 파괴하는 초법적 행위를 마구 저질렀다. 이즈음 베이징 시내에서는 ‘낙타상자(駱駝祥子)’ 등을 쓴 유명한 문인이자 지식인인 라오서(老舍 노사), 푸ㅤㄹㅙㅤ(傅雷 부뢰) 등이 홍위병들의 야만적 행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법천지의 아수라장이었다. (주석 436)

보다 못한 인민일보는 ‘용문투, 불용무투(用文鬪, 不用武鬪)’ 제목의 사설에서 “마오쩌둥 동지는 되풀이 해 우리들에게 말했다. 무산계급 문화대혁명은 사람의 영혼을 일깨우는 대혁명이다. 또 대혁명의 실현은 글로 투쟁하고 무력으로 투쟁해서는 안 된다”며 홍위병들의 폭력적 행위의 자제를 호소했다. 하지만 마오는 여전히 홍위병 주류의 대부분은 괜찮다는 태도를 보였다. 낡은 사상과 질서를 파괴하는 격렬한 행동은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데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문제가 생기면 잘 유도하고 나중에 다시 해결하도록 해야지, 그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홍위병을 억압하거나 탄압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 린뱌오는 8월 20일 열린 중앙정치국 상임위원회 확대회의에서 홍위병 문제를 놓고 토론을 벌일 때 이렇게 말했다.

“베이징이 부랑자 세상이 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좋은 사람이 항상 다수다. 나쁜 사람은 항상 소수다. 어떻게 부랑자 세상이 된다고 하는가?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그들(홍위병)이 몇 개월 동안 난리를 피워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견결하게 다수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나쁜 사람들은 백분의 몇 밖에 안 된다.”

홍위병의 문화대혁명 운동이 8월 하순에 접어들면서 홍위병들의 전국적 ‘경험교류’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베이징 지역의 학생들이 전국 각지로 돌아다니며 문화대혁명의 ‘불씨’를 뿌리고 다녔다. 지방의 홍위병들은 베이징으로 몰려들었다. 8월 28일에는 베이징에 온 지방의 홍위병들이 14만여 명에 달했다.

마오는 8월 31일 톈안먼 광장에서 2차로 홍위병들을 접견했다. 중공중앙은 ‘경험 대교류’에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기차 삯을 면제해주고 음식이나 숙박시설 등도 현지 정부가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비용은 국가재정에서 지출하도록 국무원에 통보했다.

이에 따라 ‘경험 대교류’의 물결은 봇물 터지듯 흉맹한 기세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곳곳에 홍위병들이 들끓었다. 마오는 매번 보름사이로 전국에서 몰려오는 홍위병들을 접견했다. 이런 홍위병 접견은 11월 하순이 되어서야 끝났다. 마오는 8차에 걸쳐 모두 1천1백여 만 명의 홍위병을 접견했다. 연말이 되면서 홍위병들의 ‘경험 대교류’가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홍위병들의 ‘경험 대교류’는 마치 메뚜기 떼들이 누렇게 익은 벼를 습격해 낟알을 작살내고 날아간 뒤끝과 흡사했다.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베이징에서 지방에 이르기까지 홍위병들은 당과 정부기관에 대한 공공연한 공격을 퍼붓고 당정 책임자들을 끌어 내 비판대회를 열거나 폭행해  정상적 업무가 마비되기 일쑤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과정에서 억울하게 눈을 감았다.

435) 毛澤東傳 1949-1976(下)  主編  逢先知  金冲及   中央文獻出版社
     毛澤東爲何搞 ‘文革’; 天下大亂達到天下大治  金冲及   人民網-文史頻道
436) 李雪峰; 我所知道的 ‘文革’ 發動內幕   人民網-文史頻道
     毛澤東平生全紀錄(下)  主編  柯 延   中央文獻出版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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