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베버가 “기하급수적인 자본을 획득한 중세의 천민 유대인이 자본이라는 수단으로 인간성을 지배하는” 퇴행적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라고 규정했듯이 뉴욕타임스(NYT)는 “중세시대 영주처럼 행동하는 임원이 부하직원이나 하청업체 직원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으로 한국사회 “gapjil”을 전 세계에 타전했다.
자연독점 공익사업은 필히 천민자본주의로 이어진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은 적자상태였던 국영기업 대한항공공사를 종합소득세 1위 조중훈 한진상사 대표(5월12일 한겨레 ‘대한항공 조씨 3대가 사는 법’ 기사 참조)에게 매각했다. 얼핏 보기엔 자수성가한 조중훈 씨가 적자 공기업을 인수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육성시킨 민영화 성공사례처럼 보이지만 정부가 1988년 아시아나항공을 허가할 때까지 독재 권력 비호 아래 조씨 일가의 “기하급수적인 자본획득”이 가능했다.
검경을 비롯한 국세청, 관세청, 출입국사무소 등 수사권을 가진 국가기구가 망라되어 조씨 일가를 조사하는 초유의 사태는 다른 말로 말단까지 뿌리 깊은 정경유착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국가가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사기업의 독점적 지위와 특혜를 보장해줬던 것인데, 이와 정반대 현상이 2013년 겨울 발생했으니 박근혜 정권 1년 차에 강행된 수서고속철도(이하 SRT) 분할 민영화가 그것이다.
동일한 선로를 이용하고 서울역(강북)을 시종착역으로 하는 KTX와 수서역(강남)을 시종착역으로 하는 SRT 사이에 과연 경쟁효과는 존재하는가? 예컨대 지방에서 서울대병원을 가야 하는 승객이 수서역(SRT)을 이용할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강남삼성병원을 가야 하는 승객이 서울역(KTX)을 이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민영항공사 경쟁 효과는 어떠한가? 괌을 여행하는 승객은 아무리 땅콩 갑질이 미워도 대한항공을 이용해야 하고 사이판은 아시아나항공만 취항한다. 재벌소유 이동통신 3사가 치열하게 경쟁한다고 해서 과연 통신요금은 인하되었는가?
철도나 항공, 이동통신 등 네트워크 산업은 운영 주체가 공기업이냐, 사기업이냐를 불문하고 자연독점적인 특성을 가진다. 특히 운수 산업의 경우 분할과 경쟁이 아니라 통합과 호환을 통한 공공성 강화가 정답이라는 사실은 수도권부터 시작된 버스 준공영제와 도시철도(지하철)와 통합 환승 체계를 통해서 이미 입증됐다.
자본주의의 폐해 건강한 노동조합으로 극복해야
그렇다면 자연독점적인 공(사)기업의 정경유착과 갑질을 어떻게 감시하고 통제할 것인가. 조씨 일가 퇴진을 요구하면서 촛불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SNS를 통해 조직됐다. 익명의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한항공노조는 어용이기 때문”이라고 SNS 개설이유를 설명했다.
조씨 일가 항공사에 “대한”을 떼야 한다는 국민 여망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하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는 법. 결국, 건강한 내부고발자 노동조합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누려야 할 노조 할 권리와 사회연대적 노동운동,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유력한 길이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