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회의에서 사건을 추리다가, 고(故) 장자연 씨 사건을 취재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사실관계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장씨가 숨진 채 발견된 2009년 3월7일부터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된 2009년 8월19일까지 5개월간의 기록을 정리했다.
당시 이른바 ‘장자연 문건’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던 회사 선배에게 실제 문건 내용도 전달받았다. 장씨가 소속사 대표에게 상습적인 폭행과 욕설에 시달렸고, 언론사 사주와 드라마 감독 등 유력인사 6명에게 성 접대와 술 접대를 강요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경찰은 40여 명의 전담팀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통화내역 14만여 건, 계좌·카드 사용내역 955건, 조사받은 참고인만 118명에 달했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경찰은 7명만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여기에 더해 소속사 대표 2명만 재판에 넘겼다. 나머지 5명의 강요 혐의 등은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했다.
수사 기록에 등장하는 경찰과 검찰 관계자는 30여 명. 어렵사리 근무지를 파악해 전화했지만 대부분 취재를 거부했다.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는다”, “수사 책임자가 아니라서 답할 수 없다”, “자신은 수사 기록을 작성만 했고, 수사한 적은 없다”는 황당한 답변까지 있었다.
수사 선상에 올랐던 당시 소속사 대표나 유력 인사들 역시 취재를 피했다. 장씨와 여러 차례 술자리를 한 것으로 확인돼 입건됐던 한 피의자는 “여럿이 같이 어울려서 한차례 술을 마시고 놀았을 뿐, 강요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참고인과 주변 인물들도 “오래전 발생한 일이라 모르겠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일부는 수사 결과와는 상반된 의미 있는 진술을 해줬고, 취재에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퍼즐을 맞추듯 사실의 조각들을 맞춰나갔다.
마지막으로 당시 수사팀 책임자들을 어렵게 만나 몇 가지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었다. 문건 속 ‘조선일보 방 사장’에 대한 수사가 부족했던 이유와 장씨와 유족 계좌에 억대의 수표를 건넨 남성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이유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검찰 관계자도 “장씨가 문건을 쓰고 상당히 괴로워했고, 이를 후회해 돌려받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수사가 문건 내용 확인에만 집중돼 장씨에게 문건을 쓰게 한 이유와 장씨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왜 반환 요청을 했는지 등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술자리 접대 의혹도 마찬가지다. 당시 검찰은 폭행과 협박이 없었다며 접대를 받은 남성들의 강요 혐의는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하지만 2014년 민사 재판(원고 장자연 유족, 피고 김종승)에서는 장씨의 술자리 참석 등이 자유로운 의사로만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장씨가 접대를 강요받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연속보도 이후 검찰 과거사위는 지난 2일 고 장자연씨 사건을 2차 사전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했다. 9년 전 드러나지 않은 진실과 부실 수사의 실체가 규명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를 통해 더는 문화 예술계에서 장자연씨와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길 진심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