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전남도지사를 거쳐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가 되었을 때 내심 기대가 컸다. 취임 초기에 이 총리가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을 틈날 때마다 강조했기에 더 그랬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되는 이 총리의 최근 언행은 고개를 갸웃케 한다. ‘온건하고 합리적’이라는 그의 장점이 동시에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든다. 총리는 최근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작금의 노동 현안이 올 겨울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문재인 정부에 큰 짐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총리는 또 “노동 현안을 지금부터 지혜롭게, 때로는 과감하게 대처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다”고 강조했다. 그가 ‘과감한 대처’를 역설한 ‘노동현안’은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알려졌다.
그로부터 일주일 지나 총리는 ‘지속가능발전 기업협의회’ 소속 최고경영자들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해 점심을 함께 했다. 총리는 “여러분이 하시는 일 또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일을 듣고 정부가 뭘 도와드릴까, 생각하기 위해서 모셨다”며 “소찬이지만 드시면서 현재의 활동내용, 앞으로 해야 할 일들 이런 말씀을 많이 들려주시길 바란다”고 권했다.
새삼스럽지는 않다. 노동자들에겐 곤봉을, 대기업 회장들에겐 술잔을 건넨 권력자들은 한국 정치에 하나 둘이 아니어서 익숙한 풍경이다. 기실 그 압권은 박근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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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근혜와 이 총리는 결이 다르다고 진심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혹 그것은 정도의 차이는 아닐까라는 의문은 필요하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이 총리로선 듣그러운 말이겠지만, 그 물음이 절실한 사람은 바로 총리 자신이다. 자신의 ‘온건한 합리성’이 혹 일정한 틀(프레임)에 갇힌 것은 아닌가, 그 틀은 과연 자신이 그토록 강조해온 촛불혁명의 틀과 얼마나 부합하는가, 그 질문에 답해보아야 할 사람은 꼭 이 총리만은 아니다. 민주당의 뜻있는 정치인 모두다.
물론, 성찰하지 않아도 총리직은 계속 수행할 수 있을 터다. 다만 결과는 자명하다. 비정규직 비율, 산재사망 비율, 노동시간, 자살 비율이 세계 최고인 대한민국을 바꿔가는 일은 그만큼 더뎌진다.
나는 지금 이 총리, 더 나아가 문재인정부에 노동자 편이 되라고 촉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최소한 균형은 갖추라는 주문이다. 노동자와 민중에게 ‘공짜 점심’ 따위는 주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촛불정부라면 마땅히 물어보아야 옳지 않겠는가? “뭘 도와 드릴까요”라고. 공관에서 기업 최고경영자들과 밥 먹으며 총리가 꺼낸 바로 그 물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