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현 정부에서 왜 이런 일이 또다시 발생했을까. 다른 분야에서는 과거 정부의 국정농단이 수술대 위에 오르기도 하고, 비록 아쉬운 결과지만 논란이 되었던 신고리 원전 건설 재개 여부를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결정하는 숙의제 방식도 도입되었다. 그런데 왜 민감한 통상협상 분야에서는 과거의 장면이 재연된 것일까.
의견수렴이 아닌 요식행위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무엇보다 통상관료들의 구시대적 행태에 주목하고자 한다. 정부는 바뀌었지만 통상협상을 책임지는 관료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오히려 김현종 본부장처럼 구시대 인물이 등용되는 역주행도 벌어졌다.
통상관료들의 낡은 행태 가운데 하나가 공청회 의견수렴을 요식행위로 여긴다는 점이다. 정부가 한미FTA 재협상을 시작하려면 통상절차법이 정한 바에 따라 피해영향 평가, 의견수렴, 국회보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통상관료들은 이런 절차를 요식행위로 보고 일사천리로 강행했다. 연합뉴스TV ‘한미FTA 공청회 파행…정부 “다음 절차 가겠다”(11월10일)’, SBS ‘계란 맞은 FTA 공청회…무산? 완료?(11월10일)’에서 보듯이 통상관료들은 공청회라는 의견수렴 절차가 완료되었다면서 조만간 국회보고 후 한미FTA 재협상을 개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관료들의 낡은 행태가 문제
통상협상은 사안의 특성상 특히나 복잡하고 전문적인 분야이다. 그러다 보니 통상관료들이 엘리트의식에 젖어 국민의견이나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무시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독단과 독선에 빠져 일방통행으로 나가기 쉽다. 또한 국민의 의견을 듣거나 국민에게 알리는 것도 요식행위에 그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정부 발표만 듣는 국민이나 이해당사자들은 시시비비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 당초 문재인 정부는 한미FTA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김현종 신임통상교섭본부장도 그랬다. 서울경제 ‘[한미FTA 개정 치열한 샅바싸움] 김현종의 초강수… “공동조사 없이는 개정 협상도 없다”(8월22일)’에서 보듯이 적어도 지난 8월까지는 그런 입장이었다. 그런데 10월에 열린 공동위원회 이후 갑자기 재협상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의 입장이 그렇게 급변한 이유에 대해 자세한 설명도 없었고, 또 해명이나 사과도 없었다.
게다가 8월에 열린 공동위원회 결과를 설명할 때, SBS ‘“한미 FTA 氣싸움의 서막…사실은 미국이 더 조급하다”(8월26일)’에서 보듯이 김현종 본부장은 “미국이 구체적인 요구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며칠 후 미국의 통상전문지 ‘인사이드 US 트레이드(9월3일)’가 “미국은 한국의 농산물 관세 즉시 철폐를 요구했다.”고 보도하면서 거짓말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 부분은 오마이뉴스 ‘‘트럼프의 입’보다 더 나쁜 ‘김현종의 거짓말’(9월6일)’ 기사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이처럼 통상관료들의 낡은 행태에 그동안 속절없이 당하기만 했던 농민들이 한국일보 ‘김현종 “농업은 한미FTA 레드라인, 물러서지 않는다”(10월13일)’와 같이 농업의 추가양보가 없을 것이라는 말을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농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연합뉴스 ‘눈물로 막은 공청회(11월10일)’와 같이 항의하고 절규하는 것밖에 없지 않을까.
이번 한미FTA 재협상은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거친 막말을 쏟아내며 집요하게 압박하여 시작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략’에 당하지 않으면 대부분 전문가들은 한겨레 ‘한미 FTA 폐기? 쫄지 맙시다!(9월4일)’가 보도한 것과 같이 당당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막말에 주눅 들지 않으려면 국민의견과 여론을 등에 업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려면 요식적인 절차, 일방통행식 강행, 비밀주의 협상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통상관료들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누가 그 제동을 걸 것인가?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