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MBC 양대 공영방송 노조가 전 정권 하에서 임명된 현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며 총파업 중인 데 대해, 현 경영진 및 이들을 지지하는 보수 야당·언론은 KBS 이사·사장 및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에 대해 법률상 임기 규정이 있음을 들어 ‘공영방송 경영진의 임기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이들은 2000년 방송법 제정 시 대통령이 KBS 이사·사장을 ‘임명’한다고 규정(현행 방송법 제46조 제3항, 제50조 제2항)함으로써 그 전의 한국방송공사법이 ‘임면’한다고 한 것과는 달리 대통령의 KBS 이사·사장에 대한 해임(면직)권을 배제했다며, 이런 법 개정 취지는 역시 공영방송인 MBC 경영진에게까지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성 확보 수단으로서,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과거 정권에 의해 임명된 공영방송 경영진이 임기를 마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볼 때 바람직함이 사실이다. 위 방송법 문구 변경도 이런 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영방송 경영진 임기 보장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건 무조건 지켜져야만 하는 고정불변의 금과옥조라고 봄은 불합리하다. 법률을 넘어 헌법에 임기가 규정되고 국민 직접선거로 최고의 민주적 정당성을 지니는 대통령마저 법 위배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 탄핵돼 임기를 마치지 못함이 우리의 법질서이며, 바로 얼마 전 우리는 이를 실천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만약 공영방송 경영진이 방송을 사유화하고 불법행위를 자행하는 등 심각한 비위를 저질러 공영방송을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제대로 기능할 수 없는 비정상적 상태로 전락시킨다면, 이들을 퇴진시켜 소중한 사회적 자산인 공영방송을 정상화하고 살려내는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법원 역시 공영방송 경영진에 대한 임명권자의 해임권을 인정하고, 적법한 사유와 절차를 통해 이들을 해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 길환영 KBS 사장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도 ‘KBS 사장의 임기제가 공영방송의 독립성·공정성·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에서 마련된 것이어서 해임처분의 기준을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기는 하나, KBS 이사회 역시 KBS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최고의결기관이므로 사장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국가기간방송으로서 KBS의 공적 기능에 현저한 장해를 초래하는 경우에는 이사회에서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심의·의결할 수 있고, KBS 사장에 대한 임명권과 해임권을 갖는 대통령 역시 이사회의 해임제청에 따라 사장을 해임할 수 있다’고 봤다(2014구합14723 판결. 이 판결은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결국 ‘공영방송 경영진에 대해 인사권자의 해임권이 배제돼 어떤 경우에건 이들을 해임할 수 없고,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 한 이들의 임기는 절대적으로 보장된다’는 주장은 이론 및 판례 실무상 부당하되, 임기 보장론이 담고 있는 나름의 의미를 고려해 공영방송 경영진에 대한 해임권 행사는 다른 공적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엄격한 요건 하에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해임 근거 규정 법에 명시해야
향후 공영방송 경영진 임기 문제에 관한 불필요한 논란 발생 및 자의적인 해임권 행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임명권자의 해임권 존부, 해임 사유와 절차 등을 방송관계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나아가 국민의 방송이어야 할 공영방송을 어용방송으로 전락시키는 등의 비위를 저지르는 경영진이 있을 경우 국민이 직접 탄핵할 수 있도록 국민 일정 수 이상의 발의나 (현재보다 대표성을 강화한) 시청자위원회의 의결 또는 공영방송 내부 구성원들의 발의 등에 의해 해임 절차가 개시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