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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은 4년 전 21대 총선 당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편파성·불공정성이 도를 넘었다며 조직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했으나, 관련 개정안을 한 건도 발의하지 않았다. 그래픽=이우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폐지하고, 뉴미디어위원회를 신설하겠다.”

국민의힘이 4년 전 21대 총선 때 내놓은 언론·미디어 정책이다. 국민의힘은 당시 방심위의 편파성·불공정성이 도를 넘었다며 조직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했으나, 관련 개정안을 한 건도 발의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4·10 총선을 맞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의 21대 총선 언론·미디어 공약을 확인한 결과 다수 공약이 이행되지 않았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공약에 대한 입장을 바꾸거나, 언론의 자유를 해칠 수 있는 선정적 공약을 내거나, 실현 의지가 보이지 않는 공약도 있었다.  

평가 가능 공약 23건 중 이행 완료 7건

여야가 21대 총선 당시 내놓은 미디어 공약 중 이행 평가가 가능한 공약은 23개(민주당 12개, 국민의힘 4개, 더불어시민당 4개, 열린민주당 3개)다. 이 중 공약 이행이 완료된 건 7개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공동으로 내놓은 콘텐츠 세액공제 강화 공약은 올해 이행됐다. 민주당의 방송통신발전기금을 통한 콘텐츠 제작지원 확대, 1인 크리에이터 지원, PP 및 외주제작사 제작 지원 확대, OTT 콘텐츠 수출 강화, 글로벌 콘텐츠·플랫폼 기업 개인정보 보호 책무 부과 강화 등 공약 역시 완료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방송사 지분소유 제한 규제 완화(국민의힘), 콘텐츠 대가산정 기준 마련(민주당), 글로벌 콘텐츠·플랫폼 사업자 망 이용대가 부과(민주당), 단일 미디어콘텐츠법 제정(민주당), 방송광고 판매제도 재정비(시민당) 등 공약은 이행되지 않았다.

▲국회의사당 정문. ⓒ연합뉴스
▲국회의사당 정문. ⓒ연합뉴스

여야 공수교대에 180도 달라진 공영방송법·방심위 폐지 공약 

21대 국회에서 여야의 입장이 급선회한 대표적 공약은 방심위 폐지(국민의힘)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민주당, 국민의힘)이다. 총선 당시 국민의힘은 방심위 폐지 및 뉴미디어위원회 신설을 약속했다. 국민의힘은 야당에 불리한 ‘편파방송’ 심의신청을 한 결과 대다수가 기각됐다며 “방송심의 관련 편파성 및 불공정성이 도를 넘으며, 고유기능을 못 하는 유명무실한 기관으로 전락했다”며 방송통신 심의기능을 없애거나 대폭 축소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21대 국회에서 공약 이행을 위한 개정안을 내지 않았으며, 윤석열 정부에서 여야가 바뀌자 방심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부·여당 추천 위원이 다수가 되자 방송사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국민의힘은 “편파방송으로 얼룩진 공영방송을 정상화하겠다”며 박홍근 민주당 의원이 2016년 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을 들고나왔다. 여야가 KBS·MBC·EBS 이사를 각사당 7명·6명씩 추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민주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은 공영방송 사장 선정에서 중립성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공약은 21대 국회에서 현실화되지 않았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환경 변화에 맞춘 정책 방향성이 있어야 하는데, 언제나 최우선 순위가 정치적 유불리라서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 같다”며 “국민의힘은 정치적 환경 변화에 따라 태도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대학 교수는 “방심위 폐지공약 자체도 편의적 판단이었는데, 자신들이 여당이 되니 손바닥 뒤집듯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며 “일관성도 없고 추진력도 떨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실장은 “언론노조에서 요구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정치권의 이사 추천 몫을 대폭 축소하자는 것”이라며 “정치권은 자신들이 가진 양당 체제라는 프레임 안에서 유불리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프레임은 공영방송의 역할을 정치 보도와 시사프로그램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는 정치권의 시각이 담긴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선거 앞두고 등장한 ‘언론 징벌적 손배제’

선거를 앞두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선정적 공약이 나오기도 했다.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은 ‘가짜뉴스 처벌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더불어시민당은 가짜뉴스 처벌 강화를 위해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가짜뉴스 확산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의 의무규정을 강화하도록 한 것인데, 이 경우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업자도 가짜뉴스 예방 조치를 취해야 했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열린민주당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함께 언론중재위원회 폐지·언론소비자보호원 신설과 정정보도 크기·위치를 의무화하는 공약을 냈다.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언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통해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를 규제하겠다고 했으나 “언론자유 침해”라는 언론계와 국민의힘의 반발로 무산됐고, 민주당은 법안 본회의 상정을 철회했다.

김동찬 위원장은 “조국 사태 이후 정치 양극화가 이뤄지고, 대립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언론개혁 과제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거론됐다”며 공약 추진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국민의힘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반대했는데, 윤석열 정부는 행정규제를 통해 가짜뉴스를 바로잡겠다고 나섰다”고 꼬집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CI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CI

필요한 언론·미디어 정책 많은데… “공약 책임지는 사람 없어, 이력제 필요”

전문가들은 이번 22대 총선에서 정당들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방심위 제도개선 △플랫폼 기업 책무성 강화 △언론 다양성 확보 등 공약을 내놔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원식 교수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1호 공약으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냈는데, 언론학자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며 관련 공약이 나올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홍 교수는 “현재 방심위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지만, 공정성 심의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관련 공약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김동찬 위원장은 “해외에선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플랫폼 기업들을 규제해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독립성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는데, 국내 정치권에서도 관련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며 “저널리즘 강화 전략도 나와야 한다.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소수 매체를 보호하기 위한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동원 실장은 국회 내 미디어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미디어 관련 진흥·규제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미디어혁신기구 설치·운영 △미디어 전담부서 일원화 등 언론·미디어의 정책 과제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당시 민주당은 180석을 확보했으나, 미디어 전담부서 일원화를 이뤄내지 못했다. 또 민주당은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를 꾸리고 미디어 바우처법, 포털 뉴스 편집권 폐지 등 정책을 내놨으나 특별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동원 실장은 “21대 총선 이후 언론 관련 학회와 방통위 연구반이 가칭 시청각미디어법이란 이름으로 규제 체제 개편안 논의를 충분히 진행했으나 대선 이후 정부조직 개편에서 논의되지 못했다”며 “한상혁 위원장의 5기 방통위 책임도 있다. 수많은 연구 용역과 위원회를 운영했으면서도 입법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홍원식 교수는 “21대 총선 후 민주당이 정치적 과제들에 너무 집중했다. ‘언론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정치적 힘으로 언론을 재편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진 것 같다”고 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정책 이력제’를 통해 공약 실천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사무총장은 정당 공약이 이행되지 않는 문제에 관해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당 공약의 이행책임은 비례대표 의원들에게 있다”며 “정당이 공약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비례대표 후보들이 책임을 지고, 미디어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비례대표 후보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공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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